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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기사

‘독가스’에서 출발한 항암제, 80년간의 진화 역사

2차 대전 때 화학무기 ‘겨자 가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16 2025 09:31 PM

1946년 본격 항암제로 깜짝 등장 연구 거듭 끝 ‘생명 연장’ 희망으로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수술과 방사선, 그리고 항암제 치료다. 이 중 항암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새로운 항암제도 등장했고, 기존 항암제와는 아예 개념이 다른 약물도 개발됐다. 같은 항암제라도 환자 개개인 상태에 맞춰 개별 처방하는 용법의 발전도 있었다. 특히 항암제 부작용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꾸준히 쌓인 점도 암대응법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항암제가 ‘치료제’로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암을 약으로 치료한다’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절, 암치료가 ‘잘라내는 것(수술)’뿐이었을 시절은 어땠을까. 아주 초기에 발견해야 수술로 완치가 가능할텐데, 조기 발견 자체가 힘들었으니 림프절로 전이(임파선 전이)만 되어도 완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약학의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약초나 중금속 같은 생약에 의존했다. 하지만 약효를 내는 성분의 양 자체가 적어 효과가 적을 뿐더러, 불순물이 많고 부작용은 훨씬 컸다.
 


겨자 가스, 항암제 씨앗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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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초의 항암제는 무엇이고, 어떤 암에 사용됐을까. 항암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1939년 미국의 찰스 허긴스 박사는 남성 호르몬을 차단하거나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암의 성장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 업적으로 196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다만, 효과는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이 치료는 암세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성장을 늦추는’ 수준에 불과했고, 적용 가능한 암 종류도 너무 한정적이었다.

본격적인 항암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우연히 등장했다. 이보다 앞선 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대규모 화학 무기가 사용됐는데, 그 중 ‘겨자가스’가 있었다. 피부에 노출되면, 발작과 물집 잡힘 증상이 발생하고 감염으로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가스였다. 그래서 1차 대전이 끝난 후 1925년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가 체결됐다.

그런데 1943년, 이탈리아 바리 항구에 보관 중이던 미군의 ‘겨자 가스’가 독일군 폭격으로 유출됐다. 유출량은 100여톤이나 됐다. 겨자가스에 노출된 병사들은 피가 잘 멎지 않고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즉, 골수 기능과 림프 조직이 억제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예일대의 루이스 굿맨과 알프레드 길먼 등은 겨자가스 파생물인 ‘질소 머스타드’를 림프종을 앓는 쥐에게 투여했고, 종양이 퇴행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이어 실제 환자에게도 실험했는데, 중증 기도 폐쇄를 겪는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의 증상이 현저히 개선됐다. 이 연구 결과가 1946년 발표되면서 ‘항암제 시대’를 열었다.
 


‘독약’이란 오명을 벗기까지

그러나 막상 질소 머스타드를 다시 재현해 보니, 암세포를 죽이는 것 같긴 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 짧고 또 불완전했다. 1950년대 들어 환자에게 꾸준히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딱히 눈에 띄는 생명 연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사망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왔다. 물론, 좌절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국가 차원의 투자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티오퓨린, 5-플루오로우라실(5-FU), 메토트렉세이트 등의 약이 발견됐는데, 요즘에도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알맞은 용법이 확립되기 전까지 신약들조차 별 효과를 보이지 못했고 부작용은 심각했다.

이런 약들에 대한 초기 인식은 ‘독’이었고, 비관론은 팽배해졌다. 실제로 당시 항암제를 투여하는 병원을 ‘도살장’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또 미국의 한 의대에서는 의대생들이 “독을 투여하는 사람들과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항의, 교수 및 전공의들이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약은 있었지만, 사용법 등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었고, 그 사이 환자들은 죽어가면서 항암제에 대한 인식은 ‘최악’을 찍고 있었다.

이 시기 서던리서치 연구소의 하워드 스키퍼 박사는 항암제 연구의 방향을 바꿔놓은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전까지는 “약의 용량이 많을수록 일정한 수의 암세포를 더 많이 죽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스키퍼 박사는 항암제가 죽이는 것은 ‘암세포의 수’가 아니라 ‘암세포의 비율’이라는, 이른바 세포 사멸 가설을 내놓았다(물론, 세포 사멸가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내용이다).

즉 암이 작다고 해서 양의 용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 용량 이상의 항암제를 투여해서 마지막 암세포까지 모두 죽여야한다는 것이었다. 또 단일제재가 아닌, 여러 약물을 병용하는 복합항암요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낸다. 스키퍼 박사는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1964년 실험쥐에서 백혈병을 완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소아 백혈병 환자에게 빈크리스틴, 아메토프테린, 머캄토퓨린, 프레드니손 등을 병용 투여하는 항암용법을 시도했고, 1960년대 말 관해율(치료 후 증상·징후가 감소·소실된 환자 비율)이 60%까지 올랐다. 또 진행성 호지킨병의 관해율도 0%에서 80%로 급상승했다. ‘암도 완치 가능한 병’이란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항암제는 표적 항암제, 면역 항암제, 카-티 세포 등 혁신적 치료제로 발전했다. 또 환자 맞춤형 치료와 부작용 관리법도 크게 진전됐다. 물론, 항암제의 역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정복’은 멀었지만, 80여년 전 겨자가스 독성에서 출발한 항암제가 이제는 ‘생명 연장’의 희망으로 자리잡았으니, 그 발전이 참으로 눈부시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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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imes.net/기획기사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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