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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교통’ 룩셈부르크

버스·열차 탑승 늘어도 ‘자동차 이용’ 줄지 않아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16 2025 09:40 PM

룩셈부르크 2020년 전면 무료화 외국인·관광객까지 발권 없이 이용 GDP 1위 부자 국가, 조세로 충당 정책 시행 후 이용 30% 이상 증가 에스토니아 탈린은 주민만 무료 등록 인구 늘며 세수로 손실 보전 시설 투자 미미 이용객 되레 줄어 룩셈부르크 차량 의존 계속 높아 “보행 수요, 대중교통 옮겨갔을 뿐 지속적 재정 확보·목표 설정 중요”


”룩셈부르크에선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입니다. 표를 살 필요 없어요.”

지난달 28일, 룩셈부르크 핀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큼지막하게 쓰인 이 문구가 눈에 띄었다. 해외여행을 가면 가장 먼저 현지 대중교통 애플리케이션을 깔거나 티켓 발매기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표를 사는 게 보통이다. 룩셈부르크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2020년 3월부터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에서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화했기 때문. 버스와 트램은 물론 기차도 1등석 외 공짜다. 벨기에, 프랑스, 독일에서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하는 20만 명의 외국인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무료로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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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룩셈부르크 중앙역에서 승객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룩셈부크르에선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버스와 트램, 기차(1등석 제외)가 모두 무료다. 룩셈부르크=정승임 특파원

 

공항 안내소에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노선 말고 시내에서의 이동도 공짜냐”고 물었더니 “전국 어디든 공짜”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대적 홍보 문구처럼 무상 대중교통은 이곳의 자부심인 듯했다. 교통카드가 필요 없으니 버스나 트램에 단말기가 있을 리 없다. 검표원도, 발매기도 없었다. 룩셈부르크 중앙 기차역에 드문드문 보이는 발매기는 1등석 혹은 룩셈부르크를 벗어나 프랑스, 벨기에, 독일까지 이동하는 승객을 위한 것이었다.

무료 대중교통은 한국 지자체에서도 주요 관심사다. 2023년 1월부터 경북 청송군이 연령과 소득, 주소지에 상관없이 누구나 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정 계층을 겨냥한 정책도 있다. 부산은 2023년 하반기부터 만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제주도는 올해 하반기부터 만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무료화를 시행 중이다. 물론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논쟁에서 보듯 논란도 여전하다.

우리보다 앞서 20여 년 전부터 무상 대중교통 실험을 해온 유럽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고 무슨 결론을 내렸을까. 현재 유럽에서 대중교통이 무료인 도시 혹은 국가는 10여 곳이다. 이 가운데 룩셈부르크와 에스토니아 탈린을 찾았다. 탈린은 2013년 유럽 수도 가운데 처음으로, 룩셈부르크는 2020년 국가 단위에서 최초로 무료화를 실시했다.

 

룩셈부르크 누구나, 탈린은 거주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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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 관광안내소 직원이 비거주자용 교통카드를 발매하고 있다. 탈린 거주자는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지만 타 지역 거주자나 관광객은 요금을 내야 한다. 탈린=정승임 특파원

 

전 국민 대상인 룩셈부르크와 달리 탈린은 주소지를 둔 주민에 한해 무료다. 탈린 시민은 3유로짜리 교통카드를 구매한 뒤 주민등록 여부를 증명하면 요금을 충전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9월 교통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찾은 탈린 관광안내소의 직원은 “아쉽게도 당신은 탈린 시민이 아니라 무료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통카드를 구매하는 것이 이득”이라며 “일반 신용카드는 1회에 2유로지만 교통카드를 구입하면 하루 종일 5.5유로로 무제한 이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금 충전이 가능한 가판대를 알려줬다.

유럽 현지에서 룩셈부르크와 탈린 사례가 주목받는 건 지속성 때문이다. 5년 이상 정책을 유지하는 데다 도시(국가) 규모도 작지 않다. 장기적으로 시행한다는 건 재정적으로 큰 무리가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들은 어떻게 재원을 마련했을까.

 

룩셈부르크 ‘세금 저항’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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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핀델 공항에 내리자마자 "대중교통이 무료라 티켓이 필요 없다"는 문구가 보인다. 룩셈부르크=정승임 특파원

 

전면 무료화로 티켓 수입이 없어지면 세금으로 채워야 한다. 한국의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에서 보듯 납세자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현지인들 반응은 달랐다. 중앙역에서 퇴근길에 만난 마리아(49)는 “대중교통 무료화에 100% 만족한다”고 말했다. ‘당신 세금으로 외국인 교통비까지 부담하는 것에 불만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우리 세금이 쓰인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다. (세금이) 과거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4년 기준 13만 달러 수준으로 세계 1위에 인구가 60만 명에 불과한 이 부자 나라는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 전환에 큰 비용을 쓰지 않았다. 룩셈부르크 대중교통 정책을 연구한 멀린 질라드 룩셈부르크 사회경제연구소(LISER) 연구원은 한국일보에 “룩셈부르크는 애초에 교통요금이 저렴해 전체 대중교통 운영비에서 요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했다”며 “이는 연간 약 4,000만 유로(약 660억 원)에 해당하는데 전체 국가 예산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고, 정부는 이를 일반 조세로 충당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료화로 인한 재정 손실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비용 절감 효과도 있었다. 인건비가 비싼 룩셈부르크에서 티켓 발급이나 검표 인력을 더 이상 고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데드 카츠 델프트공대 교통계획학과 교수는 “외국인이나 관광객에 요금을 부과하면 검표, 단속을 위한 인원을 계속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어 비합리적”이라며 “룩셈부르크의 전면 무료화는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관광객도 무료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선심성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의미다.

 

 

탈린 ‘주민등록 이전 유도’ 세수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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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 트램 내부 모습. 출근 시간대에도 탈린의 트램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탈린=정승임 특파원

 

탈린은 무료화 이후 세수가 더 많이 확보된 케이스다. 애초 정책의 시행 목적 중 하나가 탈린에 사는 외지인들의 거주지 등록을 유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탈린 교통정책을 중점 연구한 카츠 교수는 “탈린에서 무료 대중교통이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주민등록 인구가 늘어 지자체로 귀속되는 소득세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탈린에 살면서도 실제 거주지를 옮기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주민에게만 무료 혜택을 주자 특히 젊은 층이 탈린으로 주민등록을 옮겼고, 세수가 늘면서 교통요금 손실분을 보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중교통 이용은 룩셈부르크만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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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트램 내부 모습. 2020년 3월부터 대중교통 무료화를 시작한 룩셈부르크는 차량도 모두 최신식으로 교체했다. 룩셈부르크=정승임 특파원

 

정책 시행 결과 룩셈부르크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30% 이상 증가한 반면 탈린에선 그렇지 않았다. 질라드 연구원은 “룩셈부르크는 무료 대중교통 도입과 함께 노선망을 전면 재설계하고 신규 차량 등 인프라에 투자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 주민 아드리엥(44)도 “무료지만 차량이 신식이고 깨끗한 것을 볼 수 있지 않느냐”며 “정확도도 처음보다 많이 개선됐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면 정시에 출발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탈린은 늘어난 세수를 노선 확충 등 인프라 개선에 쓰지 않았다. 이용객 증가세도 멈췄다. 에스토니아 통계청은 2020년 보고서에서 “2019년 탈린의 직장인 20.6%가 출퇴근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이는 2014년보다 2%포인트 감소한 수치”라며 “이용자들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을 여전히 불편해했다”고 밝혔다. 이듬해 에스토니아 감사원 보고서 역시 “출퇴근하는 직장인 절반 이상이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선호한다는 징후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중교통 이용 증가≠차량 이용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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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과 룩셈부르크의 무료 대중교통을 연구한 오데드 카츠(왼쪽) 델프트공대 교통계획학과 교수와 멀린 질라드 룩셈부르크 사회경제연구소(LISER) 연구원. 본인 및 LISER 제공

 

주목할 것은 대중교통 이용 증가가 자동차 이용 감소로 귀결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질라드 연구원은 “룩셈부르크는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경우 자동차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카츠 교수도 “안타깝게도 무료화로 인해 자동차 이용 감소나 대기질 개선과 같은 효과는 (무료화를 실시한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 적이 없다”며 “오히려 기존에 짧은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느는 효과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보행 수요가 대중교통으로 옮겨갔을 뿐, 자동차 이용 감소 효과가 명확히 확인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입안자들은 무엇을 유념해야 할까. 질라드 연구원은 “지속 가능한 재원을 마련하려는 정책적 의지와 결단”을 강조했다. 실제 1997년 심각한 교통혼잡에 시달리던 벨기에 하셀트는 무상버스를 도입해 첫해에만 승객수가 13배 증가하는 등 한때 성공 사례로 꼽혔지만 지속적인 재정 확보에 실패하면서 2013년 무료화를 중단했다.

“무엇을 달성하려는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카츠 교수의 조언은 전면 무료화를 검토하는 지자체장들을 다소 맥 빠지게 만들 수 있다. 그는 “목표가 자동차 이용 감소라면 대중교통 무료화에 쓸 예산으로 품질을 개선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운전자들은 요금보다는 품질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운전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인하려면 요금을 없애는 것보다 노선을 촘촘히 해 접근성을 높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어 “목표가 사회적 약자 지원이라면 학생이나 노인 등 특정 집단에 한정해 무료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목표 모두에서 전면 무료화는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물론 요금을 없애고 동시에 품질 향상에 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1인당 GDP 1위인 룩셈부르크가 그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자동차 이용을 줄이진 못했다.

룩셈부르크·탈린=글·사진 정승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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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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