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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과의 동거
수필이 있는 뜨락(12)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20 2025 11:14 AM
어느 늦가을 날 이었다. 분주했던 하루를 희석시키는 잠결에 기대고 있을 무렵, 천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숨을 죽였다. 같이 누우려던 온 몸의 세포가 일제히 일어나 한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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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살던 집, 더그매는 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달리기 시합을 하는지, 잔치를 벌이는지 밤이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고양이 '묘'(描)자를 붓으로 써서 천장에 붙여 놓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있고, 길 고양이 들도 들락거렸지만, 역량 발휘를 못하니 생각해 낸 대안이었던 것 같다. 살아있는 고양이도 힘을 못쓰는 판에 종이 고양이에게 아랑곳할 리 없는 서생원들의 극성은 그칠 줄 몰랐다. 가끔 부엌에서 몸집이 제법 큰 쥐가 쏜살같이 숨어버리는 걸 보았을 때는 서있는 채로 얼어붙었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쥐가 제일 무섭고 징그럽다.
천장 위에서 움직이는 건 분명 쥐는 아니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꼬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라쿤 임에 틀림없었다. 나무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라쿤과 같이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덩치 큰 놈이 걸어 다니다가 천장이 무너져 방으로 떨어지는 건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누군가 라쿤이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한다고 말해준 기억이 났다. 주파수를 아무데나 맞추고 잡음이 나도록 한 라디오를 보꾹으로 통하는 문을 살짝 열고 들여민 채 얼른 닫아버렸다. 라쿤과 동거하고 있다는 생각과 라디오 잡음에까지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다음날 아침, 라쿤 퇴치 전문업체에 빨리 와달라고 전화했다. 두 남자가 천장 위로 올라갔을 때 이미 큰 놈들은 벌써 달아났고, 핏덩이 새끼들만 네 마리 데리고 내려와 뒷마당에 부려놓았다. 날이 쌀쌀한데 얼어 죽을까 봐 걱정했더니 어디선가 어미가 지켜보고 있다가 데려가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들은 전문인답게 라쿤이 들어온 구멍을 단단히 막고 떠났다. 몇 시간 후에 내다본 뒷마당엔 그들이 말한대로 새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을씨년스런 바람만 불고 있었다.
나의 내면에도 오래 전에 들어온 불청객이 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슬며시 와서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나로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문장이 불쑥 들어와 연신 메아리처럼 울리며 나를 흔들었다.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갱년기 때 쯤이었으니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굳이 시간적으로 경계선을 긋는 이유는 가랑비에 옷 젖듯 내가 그 때부터 서서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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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나'는 없고 '우리'만이 존재했던 대가족 속에서 남에게 기준을 맞추며 그게 당연한 듯이 살아왔다. 체면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내가 배제되어 있는 삶에 불만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치중하며 살고있는 내 모습이 영 마땅치 않았다. 나를 찾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정직하고 싶었다. 오고 가는 포장된 말과 행동이 허물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에게서 부정적인 요소가 느껴져도 침 한번 꿀꺽 삼키고 넘기곤 했었다. 그런데 마음에 담은 것을 내어놓지 않으면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상대가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 좋았고, 의견을 명확하게 서로 나눠야 좋은 관계가 되는 거라고 자신을 얼렀다.
방어를 씨줄로, 보호를 날줄로 엮은 울타리를 두르기 시작했다. 정신세계를 지키고 싶은 이기심인지도 몰랐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겉도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낼 때 에너지가 방전되는 걸 경험한 뒤로는, 텅 빈 마음으로 돌아오는 모임엔 되도록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게 침잠하는 시간은 늘어나고 삶의 영역은 자연스레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면에는 심리적인 포만감이 쌓여갔다. 그 맛 때문에 십 년 전쯤 불쑥 찾아온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을 자분자분 풀어놓자 지인의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아직 덜 외로워서 그래..."
내면의 불청객과의 동거,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의 흐름 속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느닷없이 침입한 라쿤을 몰아낸 것처럼, 까칠해져 가는 모습을 버리고 예전처럼 허물도 섞어가며 너그럽게 사는 게 좋을지, 아니면 자신을 단속하며 진정성을 지키고 사는 게 좋을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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