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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처럼 각색···

연쇄살인마 이춘재 다룬 ‘괴물의 시간’ 무엇을 놓쳤나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25 2025 05:54 PM

넷플릭스 ‘괴물의 시간’과 범죄 다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넷플릭스 공개를 염두에 두고 만든 4부작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은 지난달 1일 공개 직후, 이춘재의 실제 목소리와 진술을 토대로 구성된 인공지능(AI) 목소리와 범행 당시의 상황과 수법을 자세히 다루는 재연 장면들로 인해 가해자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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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 SBS 제공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가장 문제라고 여긴 대목은 이춘재의 범행을 사계절에 빗댄 1부 ‘이춘재의 사계’다. 카메라는 홀로 걷고 있는 이춘재의 대역을 따라 들녘 길을 걷는다. 따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곳은 그가 수많은 강간과 살인을 저질렀던 장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성우의 내레이션. 

“춘재의 기억은 들녘의 모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때의 날씨와 바람은 물론 그 시절 내딛던 땅의 질퍽함과 손끝을 스치던 촉감까지. 춘재는 온 몸으로 화성을 추억한다.” ‘순간 내가 이춘재가 된 줄 알았다’ 하는 후기에서 알 수 있듯, 시청자들은 ‘괴물의 시간’이 취하고 있는 ‘악인의 내면으로부터 악인을 재현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피해자가 있는 실제 범죄 사건의 각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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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 SBS 제공

 

공교롭게도 이러한 비판은 넷플릭스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킨 실화 기반의 범죄 다큐 시리즈 ‘트루 크라임(True Crime)’에 가해지는 여론이기도 하다. 2015년 ‘살인자 만들기’의 흥행에서 시작된 이 장르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일어난 범죄 사건을 한 편의 스릴러 영화처럼 각색하는 것에 있다. 범죄 행각을 집요하게 재현하고, ‘가해자가 왜 악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그의 성장 환경과 주변인들에게서 찾아 ‘프로파일링’하는 기법은 시청자에게 한 편의 수사극을 보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동시에 ‘범죄자’에 대해 가지는 인간의 원초적 흥미를 정의감으로 변환시키며 장르적 쾌감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악인의 일대기를 좇으며 실제 범죄 사건을 스릴러로 만드는 이러한 다큐의 문법은 제작자들에게는 더욱 자극적인 방식의 연출을 택하게 만들고, 시청자에게는 악인과 시점을 공유하고, 나아가 그 악행을 오락적으로 수용하는 부작용을 만들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의 윤리는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것에서 비롯되기에, ‘악인’을 알고자 하는 탐구적 태도는 종종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과 부딪힌다. ‘괴물의 시간’에서 등장한 이춘재 전 아내의 인터뷰는 이춘재의 실체를 파악하는 핵심적인 증언이지만, 작품은 그가 받은 학대에 대한 고통스러운 증언을 정성스럽게 각색하여 이춘재에 대한 흥미와 공포심을 높이는 데에 사용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그로 인해 파괴된 피해자와 생존자의 삶을 소비하게 만든다. 생존자의 떨리는 목소리 위로 클로즈업된 이춘재의 몽타주는 관객의 시선을 피해자의 고통이 아닌 가해자의 분위기에 집중시키고, 이는 피해자가 용기 내어 증언한 진실을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한 해설로 기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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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다큐멘터리 '괴물의 시간'. SBS 제공

 

우리는 ‘크라임 콘텐츠’의 위험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 장르에 매력을 느낀다.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쪽에 이입해도 고통스럽기만 한 지옥이지만 우리는 이 지옥 속에서 악을 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괴물의 시간’ 안에서 괴물을 마주하고 공포를 느끼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음으로써 그 안에서 고통받는 피해자와 함께할 수 있다. 악인에 대한 탐구와 악인을 재현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채로울 수 있으나, 그것이 ‘실존하는 고통’에 힘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실패에 대한 처절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괴물의 시간’이 범죄 다큐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의 결과이기보다, OTT 문법에 따른 ‘스타일’을 시도하는 데 의의를 둔 작품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성찰의 결여를 시청자들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을 탐구한다는 명분은 더 이상 타인의 고통을 전시하는 구실이 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다큐멘터리는 ‘악인의 서사’를 다룬다는 그 충격적인 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악인에 대한 실험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의 악을 경계하고, 끝없이 윤리적인 것을 탐구하게 하는 작품. 무척 이상적이지만, ‘괴물의 시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그런 작품과의 만남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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