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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주간한국

미식의 출발은 쌀

취향 따라 ‘쌀 품종’ 따져 먹는 시대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14 2025 10:24 PM


직장인 신푸른(40)씨 집 앞엔 2주마다 갓 도정한 쌀 4㎏이 도착한다. 일명 쌀 구독 서비스. 쌀 품종은 물론, 분도(쌀 도정 정도를 1~10으로 나눈 것)까지 설정해 고를 수 있다. 미식가인 신씨는 쌀이 다르면 밥 지을 때 나는 냄새부터 다르다고 했다. “어떤 쌀은 밥 지을 때 누룽지 향기가 나고, 어떤 쌀은 꽃 향기가 난다”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3인 가구인 신씨는 “예전에 쌀 10㎏을 사서 오래 두고 먹다 보면 마지막엔 냄새가 나고 맛이 없더라”며 “가격은 조금 더 비싸지만 계속 다양하고 맛있는 쌀을 먹겠다”고 했다.
 


요리 따라 적합한 쌀 품종, 그때그때 달라요

 

h1212a020a30.jpeg토종쌀 전문 판매점 ‘탁월한 밥맛’의 백웅재 대표가 토종쌀 자광도로 갓 지은 밥을 보여주고 있다. 자광도는 황제의 색인 자색을 띠고 밥맛이 좋아 예로부터 진상미로 쓰였으나 대가 얇아 잘 쓰러지는 탓에 재배가 어렵다. 백 대표는 “한국은 쌀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며 “커피나 와인처럼 쌀도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식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예진 기자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다. 주식이라서, 널리고 널려서 하찮게 취급하던 밥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매일, 많이 먹으니까 그 중요함을 뒤늦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미쉐린 셰프를 중심으로 가정집 부엌까지 점점 더 많은 인구가 쌀의 품종까지 따져먹는 미식 문화가 자리 잡는 추세다. 커피나 와인, 위스키와 같은 기호식품처럼, 고두밥(된밥), 진밥을 넘어 쌀도 품종 따지며 먹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작은 식재료 맛에 예민한 셰프들이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 중 40위에 오른 돼지곰탕집 ‘옥동식’의 옥동식 셰프는 국물에 말아 먹는 밥맛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뉴욕에서도 한국산 ‘십리향’ 품종의 ‘벼꽃향미’를 공수해 요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NYT에서도 ‘옥동식’을 소개하며 “그릇마다 고슬고슬한 흰 쌀밥과 아주 얇게 썬 돼지고기가 담겨 나온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밥맛이 전체 요리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해서다. 벼꽃향미는 밥을 지으면 구수하고 고소한 누룽지, 팝콘 향이 난다. 또 쌀알이 맑고 찰기가 좋아 국에 말아도 밥알의 식감이 잘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뉴욕 미쉐린 3스타인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는 ‘골든퀸’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요리에 따라 어울리는 쌀이 따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예를 들어 쌀알이 일반 품종보다 1.2배 크고 단단한 식감과 담백한 단맛이 도는 ‘신동진 쌀’은 볶음밥이나 김밥용에 적합하다. 반면 쌀알이 작고 보들보들한 ‘삼광’은 보통 김치찌개, 생선구이, 제육볶음과 같은 곁들임 반찬에 잘 어울리는 품종이다. 이외에도 새청무, 참드림, 하이아미, 영호진미, 일품 등 밥의 맛과 향은 쌀 품종만큼 가지각색이다.

한국은 밥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쌀을 홀대했다. 반면 우리와 같이 자포니카 계열의 쌀을 주식으로 하는 옆나라 일본은 진작부터 쌀과 관련된 미식 문화가 발달했다. 사케를 위해 이에 맞는 쌀 품종을 개발한다든지 스시에 적합한 쌀 품종을 골라 요리해 왔다. 일본 취반협회에서 주관하는 밥의 맛을 정확히 평가하는 ‘밥 소믈리에’ 자격증이 있을 정도다. 밥 소믈리에이자 국내 쌀 편집숍 ‘동네정미소’의 김동규 대표는 “일본은 쌀 브랜드 ‘세계최고미’의 경우 1㎏에 10만 원을 할 정도로 고급화된 쌀 시장이 있고, 쌀 편집숍 ‘아코메야(AKOMEYA)’의 일부 매장에선 직접 고른 쌀로 지은 밥을 먹어볼 수 있게 할 정도로 취향에 따른 쌀 소비 문화가 발달했다”며 “한국도 일본처럼 점점 밥맛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쌀도 입맛 따라 섞어 먹는다, ‘블렌딩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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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편집숍 ‘동네정미소’의 김동규 대표가 8일 토종 쌀 귀도를 소쿠리에 붓고 있다. 강예진 기자

 

쌀을 입맛 따라 섞어 먹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종의 블렌딩 쌀로, 품종마다 각기 다른 윤기, 단맛, 향, 식감, 찰기를 섞어, 먹는 사람이 원하는 조화로운 비율을 찾는 것이다. 블렌딩 쌀의 황금 비율은 쌀 품종과 입맛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토종쌀 전문 판매점 ‘탁월한 밥맛’의 백웅재 대표가 블렌딩한 ‘옥돼지쌀’도 옥경도(멥쌀)와 멧돼지찰(찹쌀)을 섞은 쌀이다. “고두밥과 진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화해할 수 없는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블렌딩 쌀로, 따뜻할 땐 부드럽고 조금 식으면 식감이 생겨나는 게 특징이다. 백 대표는 “쌀도 신선 식품이라 갓 도정한 쌀, 갓 지은 밥이 제일 맛있다”며 “어떤 쌀로 술을 만드는지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일 정도로 쌀도 다른 식재료처럼 품종이 중요한데, 우리는 쌀이 주식이면서도 쌀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토종쌀만 해도 귀도, 화도, 이세히카리, 불도, 자광도 등 품종이 다양하다. 백 대표는 쌀 품종을 주기적으로 바꿔 제공하고, 고객이 밥의 익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쌀 중심, 밥맛 중심의 식당을 준비 중이다.

쌀을 구매할 때 고려 대상이 가격에서 맛으로 바뀌는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고품질·기능성 쌀에 10~20% 추가 지불할 의향이 있는 응답자는 2021년 17.3%에서 지난해 27.2%로 늘었다. 쓱닷컴에 따르면 일반 쌀보다 40~80% 더 비싼 프리미엄 쌀(블렌딩 쌀 포함)의 올해(11월 기준) 매출구성비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0%포인트 늘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30년 전(1994년 120.5㎏)에 비해 반토막(55.8㎏, 통계청 ‘2024 양곡 소비량 조사’)났지만, 반대로 고급 쌀에 대한 선호는 더 늘어난 셈이다.
 


용도와 취향 따라 세분화되는 식문화

 

ㅁㄴㅊㅍㄴㅍ.jpeg일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쌀 편집숍 ‘아코메야’의 모습. 아코메야 홈페이지

 

식재료의 품종을 따지며 소비하는 행태는 쌀에만 국한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엔 원산지를 밝히는 데서 끝났지만 요즘 소비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딸기를 하나 사 먹더라도 비타베리, 설향, 장희 등 새콤한 맛과 단맛의 비중, 단단함과 무른 정도 등 품종에 따른 차이를 따져 고르는 식이다. 2만 원 안팎의 돈가스를 하나 먹어도, 10여 가지의 돼지 품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당이 등장했을 정도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이를 “가성비 대신 용도와 취향에 따라 구매하는 ‘세련된 소비자(Sophisticated Buyer)’가 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했다. 문 교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배를 채우려고 먹지 않고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하면서 음식에 대한 관여도가 올라가고 있다”며 “이런 세련된 소비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서 고소한 원두와 산미 있는 원두를 고르듯이 조만간 식당 메뉴판에서 ‘삼광과 골든퀸을 5 대 5로 섞은 밥’을 선택하는 게 익숙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ㅊㅈㄴㅊ.jpeg돼지곰탕집 ‘옥동식’은 미국 뉴욕 지점에서도 국내산 ‘벼꽃향미’ 브랜드로만 밥 짓기를 고수한다. 옥동식 인스타그램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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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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