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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선 이상 없다는데 왜 이리 아플까

‘골든 타임’ 놓치는 여성의 심장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21 2025 05:42 PM

‘가슴 쥐어짜는 흉통’ 남성과 달리 체한 듯 소화 안 되고 이유 없이 피로 여성은 증상 모호해 ‘화병’ 오진도 폐경 후 에스트로겐 줄어 위험도↑ 유방암·임신성 당뇨 앓았다면 주의 70대 이후 운동 통해 근감소 막아야


심혈관질환은 오랫동안 ‘남성의 병’으로 여겨져 왔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중년 남성의 장면이 워낙 익숙해서다. 그러나 통계를 들여다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다. 암을 제외하면 단일 질환으로 여성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심장질환이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심장질환 진단·치료 기준이 대부분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마련돼왔다는 점이다. 증상의 양상부터 발병 기전, 위험 인자까지 남녀 간 차이가 뚜렷함에도, 여성의 심장은 오랫동안 ‘작은 남성의 심장’으로 간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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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만난 박성미 로제타홀 여성심장센터장이 여성 심혈관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그 결과 여성 환자는 ‘검사에선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거나, 화병이나 신경성 질환으로 오진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진단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흔했다. 여성 심장질환의 특성을 연구하며 ‘성차(性差)의학’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박성미 고려대 안암병원 로제타홀 여성심장센터장을 9일 서울 성북구 병원에서 만났다.

-여성의 심장을 별도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심혈관질환의 원인, 증상, 진단, 치료, 예후까지 거의 모든 단계에서 남녀는 달라요. 주된 발병 시기 역시 여성은 70대 이후로, 남성보다 약 10년 이상 늦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축적된 심장학 연구의 상당수가 50~60대 남성을 대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에 약물 용량이나 스텐트 기구의 크기, 진단 기준도 남성 데이터에 기반한 경우가 많아요. 남성 기준의 검사 틀에 여성을 끼워 맞추면, 환자는 분명 아픈데 병을 찾아내지 못하는 ‘진단의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여성 심장질환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려면 성차의학 관점이 필수란 얘기예요.”

-증상도 남녀가 다릅니까.

“흔히 알려진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흉통’은 남성의 전형적인 증상, 즉 ‘남성형 패턴’이에요. 남성은 주로 운동하거나 계단을 오를 때, 심장에 부하가 걸릴 때 통증이 나타납니다. 반면 여성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을 못 잤을 때처럼 가만히 있을 때 증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통증 양상도 모호합니다. 체한 것 같고, 소화가 안 되고, 이유 없는 피로감이 나타나는 식이죠. 턱·목·등·팔로 퍼지는 방사통도 여성에게서 더 흔합니다. 이런 증상이 몇 분이 아니라 수십 분~한 시간가량 은근히 지속되는 경우도 있어, 스스로 심장질환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내과·정형외과를 전전하다 늦게 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검사를 받아도 진단이 늦는 일이 잦다고 들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혈관이 막히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성은 큰 관상동맥의 특정 구간에 죽상경화반(기름때)이 뭉쳐서 끼고, 그것이 터져 혈관을 급격히 막는 형태가 흔합니다. 혈관조영술을 하면 막힌 부위가 툭 튀어나와 있어 비교적 명확하게 보이죠. 반면 여성은 노폐물이 혈관 벽 전체에 얇고 넓게 퍼져 쌓이는 형태가 많습니다. 특정 부위만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혈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으로 좁아지는 식입니다. 이러면 영상 검사에서는 마치 원래 가는 혈관인 것처럼 보여 병변을 놓치기 쉽습니다. 또한 혈관 안쪽 벽(내피세포)에 만성 염증이 생겨 혈관이 딱딱해지거나, 수축과 이완을 조절하는 기능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심장 근육 속 미세혈관의 기능 이상으로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흉통이 생기는 ‘미세혈관 협심증’이 여성에게 더 많이 생기는 이유죠. 그런데 이 미세혈관은 아주 가늘고, 조영술 검사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큰 혈관은 멀쩡하다 보니 ‘정상’ 또는 ‘신경성’으로 오진되기 쉽습니다.”

-혈관이 막히지 않은 심근경색(MINOCA)도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MINOCA는 관상동맥 촬영에서는 막힌 부분이 없는데, 심장 근육 괴사를 뜻하는 심장 효소 수치가 상승하고 심장 기능이 떨어져 있는 상태를 말해요. 남성보다 여성, 특히 비교적 젊은 여성에게서 더 많이 보고됩니다. 젊은 여성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위험 인자가 없어도 혈관 벽이 파열되는 ‘자발성 관상동맥 박리(SCAD)’로 발병할 수 있어요. 또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여성도 혈관 염증에 따른 심혈관질환 위험이 더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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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be Stock

 

-폐경을 기점으로 위험도가 달라집니까.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혈관을 확장하고 안정시키는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해요. 그래서 폐경 전 50대까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심장병 위험이 낮습니다. 하지만 폐경이 오면 이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이 동시에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좋은 콜레스테롤(HDL) 수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고, 대사증후군 위험은 증가합니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그렇겠지’ 하고 넘기지 말고, 폐경 전후 1~2년은 반드시 혈압·혈당·지질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아요.”

-특히 주의해야 할 여성 환자군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유방암 생존자입니다. 일부 항암제나 항호르몬제가 심장 독성을 일으키거나 조기 폐경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암은 완치됐는데 에스트로겐이 줄다 보니 심장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생겨요. 다낭성 난소증후군 환자, 임신성 고혈압·당뇨병을 앓았던 여성, 자궁·난소를 절제한 여성도 향후 심혈관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입니다.”

-평소 어떤 점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할까요.

“운동입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근육량이 남성보다 적습니다. 나이가 들며 근육이 빠지는 근감소증이 오면 심혈관 예후가 급격히 나빠져요. 여성은 남성보다 심혈관질환 발병이 10년 늦고, 수명은 평균 10년 더 깁니다. 그만큼 노년기 심혈관 관리의 비중이 크다는 뜻이에요. ‘소화가 안 된다’,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애매한 증상이라도 반복되거나 오래 가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의대 교육에 성차의학을 도입해 남녀 환자에게 다른 진단·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요.”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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