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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신춘문예 수필 입선
오수진 '유유자적, 그 계절의 아름다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an 08 2026 08:33 AM
사진에 담은 그 순간의 계절 한인문인협회 주최, 한국일보 후원

언젠가부터 캐나다의 자연을 사진에 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사진 오수진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캐나다의 사계절이 지닌 뚜렷한 결이 내 삶에 스며든다. 겨울이면 얼음 같은 바람이 살을 에이고, 봄이 오면 녹아 내린 눈 사이로 흙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여름의 짙은 녹음은 생명의 활력을 품고, 가을엔 단풍잎 흩날리는 바삭한 바람이 온 대지를 휩쓴다.
이 자연이 주는 고요함과 치유, 그리고 위로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처음 이곳에 와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았던 날, 나이아가라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 앞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은 잊을 수 없는 캐나다의 첫 감동이었다.
언젠가부터 캐나다의 자연을 사진에 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찬란했던 날들이 떠오르면 그때의 사진을 꺼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시선에 머물던 따스함과 고유한 결을 다 담을 순 없었지만, 잃고 싶지 않은 순간을 붙잡기 위한 기록이었다. 사진을 보면 그날의 공기와 소리, 마음의 온도가 다시 나를 데려가는 듯했다. 사진은 결국 나에게 하나의 추억이었다.
매일 셔터를 누르는 일상, 그 시선은 언제나 자연으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 연한 하늘색이 끝까지 펼쳐지는 아침, 그리고 회색 빛이 스며들며 하루를 내려놓게 하는 저녁 빛까지.
하늘의 색과 구름의 모양이 같은 날이 없듯, 나의 하루 또한 언제나 다른 결을 지녔다. 햇살이 유난히 밝아 마음까지 환해졌던 날에는 길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비에 신발이 젖어 눅눅했던 날엔 문득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목소리가 그리워 괜히 전화를 눌렀다가 끊고, 홀로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바람이 차가워 볼이 새빨개진 날도 있었고, 산들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던 날의 가벼운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지나간 날들은 모두 삶이라는 잔재로 깊숙이 남았다.
계절의 옷을 매번 다르게 입는 자연 속에서, 나는 특히 가을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캐나다의 가을은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차가운 바람으로 바꾸고, 나무들은 초록빛에서 주황빛으로 천천히 물든다. 흔들리는 나뭇잎, 달라진 바람, 아침마다 오렌지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태양. 지는 해는 하루를 더 깊고 고요하게 잠재운다.
그 중에서도 나지막한 어느 오후, 호숫가에 흩뿌려진 윤슬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바람의 향도, 소리도, 빛도 은은하게 머물렀고, 그 반짝임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이런 찬란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아빠가 생생한 단풍을 바라보던 뒷모습, 타국 생활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가족들의 잔잔한 웃음소리가 호수 어딘가에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따스한 빛에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순간 앞에 펼쳐진 풍경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무들은 거대한 팔레트처럼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잔잔한 호수에 자신을 비춰보고 있었다.
천천히 카누에 몸을 싣고 앞으로 나아가자, 햇빛에 잘게 부서지는 물 비늘과 붉고 노란 나뭇잎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서 꿈결처럼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마음속으로 번져 들어왔다.
숲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은 다람쥐도 그날의 풍경을 완성해 주었다. 도토리를 잔뜩 머금은 두 볼, 두려움 대신 호기심이 담긴 눈빛. 햇빛 아래 비친 그 작은 생명은 가을빛을 품은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사진 속에 머문 순간은 결국 또 다른 이야기가 되고, 삶의 기록이 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사진 속의 그 순간만은 멈춰 서서 기다려 준다. 그래서 오늘도 눈앞에 펼쳐진 계절과 하늘, 그리고 작은 풍경들을 담는다. 언젠가 다시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순간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수진
한국에서 시각디자인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2012년 이민. 토론토 거주. 현재 매거진 그래픽 디자이너.
당선 소감
매일 셔터를 누르며 캐나다의 사계절을 기록해 왔습니다. 렌즈에 다 담기지 않는 삶의 결들을 문장으로 빚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는, 무채색이었던 타국 생활을 찬란하게 물들여 주었고,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필을 쓰는 일은 호숫가의 윤슬을 바라보는 일과 닮았습니다. 찰나의 반짝임을 붙잡는 과정이 제게는 큰 위로였습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김영수)
입선작 오수진님의 ‘유유자적, 그 계절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계절 속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화자는 자연과 삶을 따듯하게 연계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글 속의 표현은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까지
움직이지요. 그뿐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과 멈춰선 시간을 대비하며 사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사진 속의 순간은 이야기가 되고 또 다른 삶의 기록이 된다는 문장의 여운이 깁니다.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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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