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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기사

독일 청년들 “총알받이 되지 않겠다”

징병제 부활 조짐에 반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10 2026 08:38 AM

유럽 징병제 부활과 독일의 혼란 2011년 징병제 사실상 폐지한 獨 ‘자원 복무 미달 땐 징병제로 전환’ 새 병역법 지난달 연방의회 통과 청년들 90여개 지역서 반발 시위 ‘軍 복무 명예’ 북유럽 국가와 달리 독일 사회 ‘병역 거부감’ 유독 심해 나토 獨 계획 전력 46만명 기대 발 빼려는 美는 지휘권 넘기려 해 獨, 100% 자원자 충원이 최선 신병 월급도 442만원으로 인상


“총알받이로 희생되지 않겠다.”

“인생의 반년을 막사에 갇혀 보내고 싶지 않다.”

징병제 부활을 예고하는 새 병역법이 독일 연방의회를 통과한 지난달 5일, 전국의 10대 청소년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수도 베를린에서만 3,000여 명이 모였다. 비슷한 시간 뮌헨, 함부르크, 쾰른을 비롯한 총 90여 개 지역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군대에 끌려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필기구 대신 ‘Nein zur Wehrpflicht(징병제 반대)’ 플래카드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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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징병제 부활을 예고하는 새 병역법이 독일 연방의회를 통과하자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이 베를린에서 열린 반대집회에 참석, '징병제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이들 가운데 올해 18세가 되는 2008년생들은 당장 생일이 지나면 군 당국으로부터 설문지를 받게 된다. 군 복무 의사와 체력, 건강 정보를 묻는 문항에 반드시 답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거나 허위 정보를 제공하면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듬해 7월부턴 신체검사가 의무다. 물론 설문지를 받았다고 무조건 입대하는 건 아니다. 새 병역법은 군복무 자원자가 목표치에 미달할 경우에만 법률 개정을 거쳐 징병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기 때문이다. 2025년 기준 18만1,556명인 독일 연방군 병력을 2035년까지 26만~27만 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국방부 목표다.

다만 설문에 응한다는 건 국가 비상사태 또는 징병제 재개 시 징집 대상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군 당국이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복무 관련 정보를 수집·활용하는 것도 2011년 징병제 중단 이후 처음이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입영통지서나 다름없다. 하루아침에 계획에 없던 군 복무를 할지도 모르는 이들에겐 청천벽력이다.

그 충격파 때문일까. 이날 시위엔 당사자인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도 교사도,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모들도 보였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시위에 참가한 16세 테오와 저스틴은 “부모님도 이 시위를 지지한다”며 “학교에 제출한 병가 진단서도 부모님 서명을 받은 것”이라고 독일 일간 벨트에 밝혔다. “징병제가 다시 시행되면 부모님은 이민을 가실 것”(클라리사 노이페르트·18)이라는 격앙된 반응도 나왔다. 일부 교사협회는 이들에게 지지를 보낸 반면, 또 다른 교사단체는 “무단 결석한 시위 참가자들은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혼란이 일기도 했다.

 

왜 독일은 스웨덴 같은 애국심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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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군 신병들이 지난해 9월 뒤셀도르프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회 앞에서 열린 선서식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2029년 유럽 침공설’ 등 러시아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징병제로 전환했거나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유독 독일 사회가 겪는 반발과 혼란이 크다. 이날 시위에서 청소년들의 병역 거부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군 복무를 명예로 여기는 북유럽 국가와 대비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최근 새 병역법을 주제로 열린 베를린 주재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도 상당수 참석자들은 “스웨덴 청년들에게 깃든 ‘군 복무는 명예’라는 정신이 독일에선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독일인들도 인정한다. 징병제와 군 인력 수급 정책을 중점 연구한 독일경제연구소(IW)의 알렉산더 부르슈테데 수석연구원은 한국일보에 “강제 징집 없이 자원입대자로 병력을 늘려온 스웨덴과 핀란드에선 사회를 위한 군 복무를 당연히 여기는 매우 독특한 문화가 있다”며 “독일에선 그런 의무감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은 2010년 폐지했던 징병제를 8년 뒤 재도입했는데 저항보다는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독일의 유일한 군사사(軍事史) 정규 교수인 쇤케 나이첼 포츠담대 군사학과 교수는 “독일에는 군 복무를 명예로 여기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1968년생인 우리 세대는 징병을 거부하지 않고 연방군에서 복무했다”고 강조했다. 

 

“독일만 지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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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징병제 부활을 예고하는 새 병역법이 독일 연방의회를 통과하자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이 베를린에서 열린 반대집회에 참석, '징병제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단순히 독일 청년들의 애국심을 저평가할 일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군대를 해체한 독일(서독)이 징병제를 재도입한 건 1956년. 당시 독일군 임무의 90%는 자국 영토 방어였다. 냉전 당시 독일이 최전선에 있었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어 전략도 독일에 집중됐다. 독일을 지키는 것이 곧 나토를 지키는 것이었다. 나이첼 교수가 복무하던 시기도 마찬가지. 청년들은 “조국을 지킨다”는 애국심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조만간 징병 대상이 될 2008년생들은 독일이 아닌 이웃나라가 침공당해도 총을 들어야 한다. 부르슈테데 수석연구원은 “러시아가 당장 발트 3국이나 폴란드를 침공해도 독일군 개입이 불가피해진다”고 말했다.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 방어한다’는 나토 헌장 5조가 즉각 발동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토에서 독일군의 임무가 달라졌다. 현재 독일군 역할 중 하나가 ‘폴란드와 발트 3국 지원’임을 감안하면 징집된 청년들도 순환배치 형식으로 나토 전방에 투입될 수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무인기(드론) 공격이 잦아졌고 리투아니아는 최근 러시아와의 무력 충돌에 대비, 접경 지역 교량에 폭발물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독일 청년들의 파병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나토가 독일에 기대하는 계획 전력(현역+예비군)도 46만 명으로 프랑스(30만~35만 명), 영국(25만~30만 명)에 비해 훨씬 많다. “왜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를 지키는 데 우리가 희생돼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나이첼 교수는 “징병제 여론조사에서 ‘독일을 위해 싸울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으면 찬성 비율은 34%로 늘어난다”며 “이는 실제 필요 병력보다 많은 수치”라고 말했다.

 

강제징집, 35년 전부터 이미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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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 재임 시절인 2011년 징병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다만 기본법(헌법)에 ‘국가가 비상사태 시 18세 이상 남성을 강제 징집할 수 있다’는 조항은 그대로 남아 ‘완전 폐지’로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청년들의 저항이 거센 건 ‘징병제를 모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다. 징병제가 2011년 공식 폐지됐다고 하지만 실제 강제 징집이 중단된 건 베를린 장벽 붕괴로 탈냉전 조짐이 보였던 1990년부터다. 이는 독일 연방군 병력 규모 변화로도 확인된다. 1990년 47만6,288명에 달했던 연방군 병력은 1995년 34만 명대로 급감했고 2010년엔 24만 명대였다.

통일과 탈냉전으로 모든 청년을 징집할 필요가 없어진 군 당국은 소수만 선별 징집했다. 대학 진학 등으로 군 면제를 받는 경우가 흔했고 신체검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적격 판정도 크게 줄었다. 현재 독일 40대 남성 중에선 복무를 안 한 경우가 훨씬 많다. 부르슈테데 수석연구원은 “점차 유명무실해진 징병제가 결국 폐지된 건 비용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35년간 누려온 평화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기본 인프라마저 유지하지 않은 건 패착으로 꼽힌다. 나이첼 교수는 “군 당국이 지역 병무청도 폐지해 병력 증원에 어려움이 생겼다”고 꼬집었다. 부르슈테데 수석연구원도 “당시 징병제 폐지는 옳은 접근이었지만 최소한의 훈련 역량이라도 유지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미국의 나토 공백 채울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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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부르슈테데(왼쪽) 독일경제연구소(IW) 수석연구원과 쇤케 나이첼 포츠담대 군사학과 교수. IW, 포츠담대 홈페이지

 

이러한 혼란은 나토에서 발 빼려는 미국의 공백을 독일이 채울 수 있느냐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매슈 휘태커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최근 “독일이 유럽동맹 최고사령관(SACEUR)직을 맡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미군 장성이 75년간 도맡았던 나토 지휘권을 하루빨리 독일에 넘기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다.

전문가들은 새 병역법이 독일군 역량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고 지적한다. 자원병력 미달 시 의무 징집조항을 법에 못 박지 않은 걸 문제 삼는 것이다. 나이첼 교수는 “독일이 나토 방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만큼 위기 시 병력을 빨리 투입해야 하는데 새 병역법은 자원 병력이 모자라면 그제서야 법률을 개정해 징집하겠다는 것”이라며 “적들은 우리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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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지난달 5일 베를린에서 열린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방 의회는 이날 징병제 도입을 예고하는 새 병역법을 통과시켰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이중국적자 문제도 골칫거리다. 독일은 이중국적자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우는데 2008년생 남성 34만589명 가운데 이중국적자는 16.6%나 된다. 특히 적국으로 의심받을 만한 러시아 이중국적자는 3,691명으로 네 번째로 많다. “이중국적자를 징집하면 충성심과 군사 보안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현지 언론의 우려다.

결국 최선의 방법은 100% 자원자로 필요 병력을 채우는 것.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이 “자발적 복무를 지지한다”며 “징병제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군 당국은 병역의 매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병 월급을 현재보다 450유로 인상한 2,600유로(약442만 원)로 책정한 것이 대표적. 최근 징병제 부활을 선언한 프랑스(월 800유로, 약 136만 원)는 물론 한국 이등병(75만 원, 군 적금 가입 시 130만 원)보다도 훨씬 많다.

군 복무기간은 최소 6개월로 연장 가능한데 1년 이상 복무 시 운전면허 취득 비용도 지원한다. 부르슈테데 수석연구원은 “독일은 2차 대전 전범국 오명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군 복무를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복무 자체도 매력적이라면 병력 증강은 성공 가능하다”고 말했다.

베를린=정승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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