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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노동하면서 경치를 즐겨요"

착취 외면한 ‘현실 역주행’ 선전물에 분노한 민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17 2026 12:08 PM

CCTV·배달 플랫폼, 홍보 영상에 “비참한 노동현실 미화” 비난 폭주 中 배달시장 200조원··· 경쟁 치열 업체 소속된 종사자만 1300만명 하루 14시간··· 월급 120만원 수준 갑질·벌금 등 사회적 차별 다반사 당국, 배달원 집단행동에 경계심 연맹 조직한 리더 ‘질서 교란’ 체포 개선책 내놨지만 실효성은 미지수


“배달 일을 하면 길가의 경치를 언제나 즐길 수 있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펼쳐지는 중국 윈난성의 소도시 다리. 중국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과 중국의 최대 배달 플랫폼인 ‘메이퇀’이 공동 제작한 3분짜리 홍보 영상 ‘길 위의 새로운 인생’의 주인공인 30세 여성 아란은 그래픽디자이너 일을 그만두고, 노란 유니폼을 입고 배달 노동을 시작한다. 단조로운 사무실 일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며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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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과 함께 제작한 선전 영상 '길 위의 새로운 인생'의 한 장면. 사무직을 그만둔 30세 여성이 배달 노동을 통해서 자아를 찾아간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바이두 캡처

 

영상은 내내 밝은 필터를 덧씌워 희망 차고 활기찬 연출을 한다. 아란은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배달을 하면서도, 여행객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네 강아지들과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아란은 이 일이 단순히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라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을 준다고 설명한다. 배달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1만4,400위안(약 300만 원)이나 되는 일본산 고급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달 상자에 담긴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사진전을 열어 진짜 ‘자아실현’을 이루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메이퇀 배달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엔딩 크레디트에 뭇 대중이 큰 감동을 받을 법도 한데, 지난해 11월 28일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온라인 공간에는 영상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폭주했다. 심지어 다음 날인 29일 곧바로 삭제돼 ‘CCTV 사상 가장 빨리 삭제된 선전물’이라는 오명이 붙었을 정도다. 중국 네티즌들은 무엇에 그리 분노한 걸까. 

현직 배달원들과 네티즌들은 이 영상이 고된 노동 환경과 현실의 착취 구조를 왜곡하는 완전히 조작된 허구라고 비판했다. 도시를 조금만 걷다보면 쉴 곳도 찾지 못해 오토바이 위에서 쪽잠을 자는 배달원을 발견하기 일쑤인데, 풍경을 즐길 새가 어딨냐는 거다. 세 달 만에 고급 카메라를 구매한 것도 허황되긴 마찬가지다. 산둥성 린이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싱빈 교수가 2022년 배달원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발표한 글에 따르면, 하루 12~14시간씩 한 달에 26~28일 일하면 평균 6,000위안(약 120만 원)을 벌 수 있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의 한 게시물 댓글이, 평범한 중국인 노동자들이 왜 이 선전 영상을 ‘위선적’으로 느끼는지 제대로 꼬집는다. “그래요. 배달원은 경치를 즐기기 위해 음식을 배달하고, 건설 노동자는 몸을 단련하기 위해 벽돌을 나르고, 거리의 청소부는 아침 햇살을 느끼기 위해 일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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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과 함께 제작한 선전 영상 '길 위의 새로운 인생'의 한 장면. 사무직을 그만둔 30세 여성이 배달 노동을 통해서 자아를 찾아간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바이두 캡처

 

벌금에 쫓기고 무릎 꿇는 배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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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중국 항저우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한 여성배달원이 무릎을 꿇고 경비원에게 사과하고 있다. 엑스 캡처

 

시선을 현실로 돌리면 이 영상에 왜 이리 분노가 들불처럼 일었는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지난 연말 후난성 창사에서는 배달 노동자 등 ‘유연 고용 노동자’들이 권익 보호를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아파트 단지 경비원과의 불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 배달 노동자가 자전거를 타고 단지 안으로 진입하다가 경비원의 제재를 받았다. 도보로만 다니라는 요구를 받은 배달원은 강하게 항의했다. 단지 내 주민의 오토바이 주행은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기에 ‘차별적 대우’라는 것이었다. 

갈등은 SNS를 통해 확산하며 순식간에 대규모 거리 항의로 번졌다. 밤이 되자 인근 지역에서 불만을 품은 배달원 수백 명이 해당 아파트로 집결해 단지를 포위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밤부터 23일 아침까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리며 욕설을 쏟아내는 시위로 번지자, 공안 경력도 배치됐다.

배달원의 집단 항의는 처음이 아니다. 2024년 8월 저장성 항저우시에서는 빌딩 경비원이 배달원의 무릎을 꿇리는 일이 발생해, 동료 배달원들이 집단 시위를 벌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대생이 건물 화단을 밟았다는 이유로, 빌딩 경비원은 벌금 200위안(약 4만 원)을 요구했다. 플랫폼에 의한 배달 지각 벌금이 매겨질까 겁이 났던 배달원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고, 이 사진이 배달원들에게 퍼지면서 수백 명이 관리실로 몰려가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두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배달원과 경비원 간 ‘개인 대 개인’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깊숙이 들여다 보면 중국 사회의 더 큰 구조적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국에서도 배달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 배달 노동자를 비롯한 ‘유연 고용 노동자(긱 워커)’가 등장하면서 실업자들을 대거 흡수했다. 하지만 정규 노동이 아니기에 보호받을 곳 없는 이들은 사회적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2등 시민으로 쉽게 전락했다. 고객들은 부당한 요구를 하기 일쑤였고, 플랫폼 사업자는 각종 제도를 동원해 배달원 착취에 앞장섰다.

최근 제도 개선 조짐을 보이지만,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배달원들은 플랫폼에 표시된 예상 시각보다 늦을 경우 ‘지각 벌금’을 내야 했다. 고객으로부터 ‘평점 테러’를 받은 배달원은 주문 할당에서부터 수수료 책정까지 불이익을 받기에, 쓰레기를 버려 달라는 고객의 부당한 요구도 거절하기 어려웠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아파트 단지 밖에 세우고 걸어 들어가는 몇 분 때문에 배달원은 받을 수 있는 주문을 놓치고, 하루 수입이 많게는 100위안(약 2만 원)씩 줄어들었다. 대형 배달 앱들 사이에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저가 배달’과 ‘번개(초고속) 배달’ 같은 형태의 서비스가 일상화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배달원 시위가 발생한 창사 아파트 단지 채팅방에서 입주민들이 “자전거 진입 금지는 안전을 위한 당연한 권리”, “시위는 일부 없는 자들의 선동”이라는 의견을 개진하며 시위를 비방한 것이 알려지면서, 배달원은 물론이고 온라인 네티즌들의 분노는 더욱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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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틱톡)에 올라온 지난해 연말 창사 배달원 시위. 더우인 캡처

 

 

중국 내 배달원 1300만 명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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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번화가 산리툰 거리에서 노란 메이퇀 유니폼을 입은 배달부들이 잠시 휴식을 갖고 있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중국에서 이제 ‘배달 경제’는 전체 경제를 떠받드는 거대한 요소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3년 전인 2023년 기준으로 배달원 수가 1,300만 명을 넘어섰다. 그것도 플랫폼에 소속된 정규 배달원만 집계한 결과로, 비공식적으로는 8,000만 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경제 데이터 분석업체 윈드에 따르면 중국의 배달 시장 규모는 1조 위안(약 200조 원) 규모를 이미 넘어섰으며,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내 배달앱 이용자는 거의 6억 명에 육박한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산업 구조 변화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24년까지 지난 20년간 중국의 취업인구 중 3차(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31.4%에서 48.8%까지 17.4%포인트 증가했지만, 2차(제조업)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23.8%에서 27.9%로 고작 4.1%포인트 성장하는 데 그쳤다. 제조업 취업 비율은 2012년 30.3%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전통적인 블루칼라’ 고용을 창출해내던 제조업이 노동 인구를 흡수하지 못하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2020년대에 들어 ‘유연 고용 노동자’들이 서비스업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이다. 지난 연말 기준 중국 인력사회보장부는 중국의 유연 고용 규모가 2억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라진 리더··· 당국은 ‘당근’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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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중심으로 배달원들을 자발적으로 조직하던 '배달원 연맹' 리더 천궈장. 중국 내 메신저 단체 채팅방으로 배달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동영상 플랫폼에 배달 노동의 현실을 폭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2021년 체포된 이후 현재까지 소식이 알려지지 않는다. X 캡처

중국 당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고용 창출이야 반가운 일이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진 존재’였던 배달원들의 누적된 불만으로 스스로 ‘계급의식’을 갖고 집단 행동에 나설까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 배달원들의 자생적인 결집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배달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배달원 천궈장은 2021년 돌연 종적을 감췄다. 그는 2019년부터 중국의 국민 메신저인 위챗에서 배달 노동자 1만여 명이 모인 단체 그룹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배달원 연맹’을 조직해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해온 인물. 몇 주 후 공안당국은 그를 ‘사회질서 교란죄’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배달원들은 천궈장의 석방을 위해 같은 해 3월 8일 전국적인 파업을 조직했으나, 당국의 방해로 무산됐고 그의 소식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는다.

언제까지 분노를 내려 찍을 수만은 없는 일. 배달원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판단에, 당국은 급히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연말 중국 국무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한국의 국회 격)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신고용 형태의 노동자 권익 보장 방법을 조속히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또, 중국공산당 지부는 플랫폼기업과 지역커뮤니티, 부동산 업체 등과 협의해 건물 출입·승강기 이용·주차·충전 문제 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이미 내놨다.

하지만 대중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 미화된 선전물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대중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CCTV ‘길 위의 새로운 인생’ 영상 사건 이후 SNS 더우인(틱톡) 사용자들은 ‘진짜’ 길 위의 배달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3만 개 이상 ‘좋아요’를 받은 이 영상에는 실제 현실을 보여주는 이 같은 댓글이 달렸다. “잠깐 경치를 쳐다봤을 뿐인데 주문이 세 건이나 밀려 있었다. (신호등) 빨간불조차 보기 싫은데, 경치라니.”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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