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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

줄리언 반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8 2026 04:41 PM

화자는 암에 걸린 노년의 작가 반스 픽션·논픽션·자서전의 경계 휘저어 대학 시절 연인이 된 두 명의 친구 헤어짐과 재회, 그리고 어긋난 기억 맨부커상 수상한 ‘예감은···’ 떠올라 떠남과 삶의 태도 묵직하게 다가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재미 선사


“오랜 세월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기쁘게 여겼기를 바란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ㅡ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ㅡ 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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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직접 언급한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전 세계 18개국에서 동시 출간한 영국 대표 소설가 줄리언 반스. ⓒJo Metson Scott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80)는 이렇게 끝맺는 신작 소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로 작별을 고한다. 40여 년 작품 세계의 종착역인 이 소설은, 가장 반스다운 방식의 퇴장이라 할 만하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

‘떠난 것은...’은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의 경계를 휘젓는 작품. 화자는 2022~2025년 영국 런던에 머물며 혈액암 판정을 받은 노년의 소설가 ‘줄리언 반스’다. 실제 반스도 2020년 초 관리 가능하나 완치는 힘든 희소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그에게 작가적 명성을 처음 안긴 세 번째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부터 시도해온 ‘하이브리드’글쓰기가 여기서도 이어진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 문학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밝혀온 반스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설의 문을 연다. 홍차에 적셔 맛보는 순간, 과거 어느 시점의 경험을 불러오는 프루스트의 마들렌을 통해 기억과 진실이라는 주제를 띄우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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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지음·정영목 옮김·다산북스 발행·272쪽

 

본격적인 이야기는 2장부터다. 화자의 기억은 1964~1968년 영국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친구였던 스티븐과 진은 줄리언의 소개로 연인이 된다. 하지만 “결혼하거나 아니면 헤어져야 할 지점에 이른” 두 사람은 이별을 택하고, 셋의 인연도 끊긴다. 그로부터 40년 후, 소설가로 자리 잡은 줄리언은 스티븐의 편지를 받는다. 한 차례 결혼 실패를 맛본 스티븐이 진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 사랑과 이별과 재회, 그리고 어긋나는 기억은 반스의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떠올리게 한다.

반스 스스로 끝을 의식하고 써내려간 작품인 만큼 떠남과 삶에 대한 태도가 한층 묵직하게 다가온다. 뇌종양을 앓던 아내를 떠나보낸 고통 속에서 그는 “우주가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 안정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번 작품에서도 마음에 깊숙이 박히는 문장은 이런 것이다. 오래 살고 싶다고 하는 대신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계속 사물을 관찰하고 싶다”는 말. 작가의 페르소나 줄리언은 병환에 대해서도 유쾌한 태도로 일관한다.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관리는 가능하다’ 이건 꼭... 삶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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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펴내며 한국 독자에게 띄운 편지에서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나는 세계의 저쪽 반대편에 있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곤 합니다. 여기와 거기, 그 중간쯤에서 우리의 마음이 만난다고 생각하지요. 당신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썼다. ©Urszula Soltys

 

서사적 즐거움보다는 죽음과 노화, 기억과 진실에 대한 성찰과 사유가 돋보이는 소설인데도 반스는 특유의 시니컬한 영국식 유머를 발휘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럼에도 처음 반스를 접하는 독자라면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예감은...’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참에 천천히 반스를 음미해보길. 한국 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책이 아직 스무 권 이상 있으니 이게 마지막이라는 게 크게 아쉽지는 않을 겁니다.”

1980년 ‘메트로랜드’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반스는 주요 문학상을 휩쓴 현대 영국 문학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예감은...’으로 맨부커상을 탔을 때 문학적 위상에 비해 수상이 너무 늦었다는 여론이 일 정도였다. 국내에서만 13만 부가 팔린 이 작품을 비롯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등 반스의 한국어판 작품은 문장형 제목으로도 친숙하다. ‘떠남’이라는 뜻의 원제 ‘Departure(s)’가 ‘떠난 것은...’으로, ‘이별의 예감’쯤으로 해석될 ‘The Sense of an Ending’이 ‘우연은...’으로 옮겨졌다. 반스의 책 11종을 출간한 다산북스는 작가의 허가를 얻어 한국 독자 정서에 맞춘 문장형 제목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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