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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에만 있는 '유령 코인'의 실체는?
이벤트로 줄 62만 원이 비트코인 62만 개로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8 2026 04:10 PM
한때 빗썸 내 유통량 66만 개, 전체 비트코인 3% 거래소 내 거래는 '장부거래' 형태, 외부 검증 부재 "거래소 장부-지갑, 제3의 기관이 검증해야" 일정 금액 이상 승인 금지 등 통제 장치 제안도

가상자산(디지털자산) 거래소 빗썸이 6일 이벤트 보상 과정에서 비트코인(BTC) 총 62만 개를 잘못 지급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삼성점. 뉴스1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60조 원에 가까운 비트코인 62만 개를 잘못 지급하면서 가상자산 거래소의 '오프체인' 거래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이용자의 거래를 임시로 '장부'에만 기재하는 방식으로 관리한 결과, 실제 보유한 물량의 10배가 넘는 수량의 비트코인이 지급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빗썸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사고는 빗썸이 6일 오후 7시 '랜덤박스' 이벤트 참여자 695명을 대상으로 보상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1인당 2,000~5만 원을 지급하는 이벤트였는데, 직원 실수로 이 중 249명에게 2,000~5만 비트코인이 입력됐다. 당첨자들에게 총 62만 원을 지급하려던 것을 62만 비트코인을 지급한 것이다. 금융당국 환산 기준으로 1인당 약 1,970억 원어치가 지급됐다.
문제는 지급된 비트코인 수량이 지난해 9월 말 빗썸이 보유했다고 밝힌 비트코인 전체 수량의 15배에 가깝다는 점이다. 빗썸은 지난해 3분기 말 보고서에서 고객이 위탁해 보관하고 있는 비트코인 4만2,619개와 회사 소유의 175개 등 총 4만2,794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빗썸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비트코인 유통량은 한때 66만 개를 넘었다. 전 세계 비트코인 총 발행량(2,100만 개)의 3%가 넘는 수준으로, 약 70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유령 코인의 실체, 장부에만 기재되는 숫자
'유령 코인'이 가능했던 것은 빗썸 등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가 거래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하지 않고, 거래소 내부에서 별도로 관리하는 오프체인 방식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내부에서의 거래는 실제 가상자산이 이동하지 않은 채 장부에서 숫자만 바뀌고, 다른 거래소나 개인 지갑으로 가상자산을 옮길 때 비로소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록이 남는다.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거래 속도가 느리고, 거래마다 수수료를 내야 해 이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거래소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런 오프체인 거래 방식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거래소 내에서 누군가가 고의로 장부에 가상자산을 생성해 유통해도 투자자들이 이를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거래소와 별개로 실제 발행주식량을 검증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이 있지만, 현재의 가상자산 거래소는 외부 검증 시스템이 전무하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거래는 거래소 내부 데이터베이스에서만 숫자가 움직이는 구조"라며 "거래소의 내부 장부와 실제 온체인 지갑 보유량을 제3의 기관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부 통제의 허점도 고스란히 드러나
더욱 큰 문제는 하루 1조 원 안팎의 돈이 거래되는 국내 2위 거래소에서 사고 전후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 빗썸은 오지급 발생 40분 뒤인 7시 40분 전체 이벤트 참여자 695명에 대한 거래·출금 차단을 마쳤고, 이들의 계정에 남아있던 61만8,212비트코인을 바로 회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트코인 중 일부가 현금화돼 거래소 밖으로 유출되고, 거래소 내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도 이상 거래로 분류되지 않아 지급 정지나 거래 차단 등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빗썸은 이용자들의 비트코인 1회 거래 한도를 50개로 제한하고 있지만, 정작 자체 이상 거래를 막는 장치는 없었던 셈이다. 그사이 거래를 통해 매매가 체결된 비트코인은 1,788개에 달했다. 이 중 빗썸이 회수한 것은 약 93%로, 아직 125비트코인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은 우선 회사가 이벤트 등을 통해 당첨자나 투자자에게 가상자산을 지급할 때 검증을 강화하고, 두 차례 이상 결재를 거치도록 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비정상적인 거래를 감지하는 시스템도 가동하고, 외부 시스템 진단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유 수량 이상의 가상자산 발행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 교수는 "이번 사고처럼 회사가 가진 자산을 모두 팔아도 대응할 수 없는 큰 규모의 거래는 일선 담당자 한 명이 바로 실행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증권사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위험한 거래를 할 때는 승인버튼이 눌러지지 않는 것처럼, 가상자산 거래소에도 이런 리스크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연속 긴급회의를 열어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위는 현재 논의중인 가상자산2단계법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에 금융회사 수준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부과하고, 외부 기관으로부터 주기적으로 가상자산 보유현황을 점검받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가상자산 거래소 내부통제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난 만큼, 모든 거래소의 내부통제 전반에 대해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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