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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주간한국

“은둔 경험도 스펙”

안 무서운 회사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01 2026 12:55 PM

세상으로 나갈 힘 기르는 사회적 기업 은둔 경험자가 주축, 다른 청년들 도와 숨은 청년 53만명 “사회 너그러워져야”


이명선(33)씨가 처음 방으로 숨어들었던 건 스물일곱 살 때였다. “방에서 아르바이트 구인 앱만 들여다봤어요. 편의점, 카페, 피시방, 식당 선뜻 어디 지원해볼 생각은 못했어요. 무서웠거든요. ‘남들 취업할 나이에 알바라니 다들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하는 걱정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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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서운회사가 202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은둔고수 프로그램’. 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들을 모아 다른 은둔 청년과 가족을 돕도록 양성하는 과정이다. 안무서운회사 제공

 

명선씨는 사실 ‘은둔’과 거리가 먼 청년이었다. 서울에서 매출이 높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들던 호텔 뷔페가 첫 직장이었다. 새벽 네 시 반부터 하루 13시간씩 주 6일간 80시간 넘게 일하며 버텼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늘 말썽이던 오른쪽 손목의 인대가 완전히 끊어졌다. 그것도 요리를 제대로 배워 보겠다고 떠난 호주 땅에서. 수술 후 손목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목표가 꺾이자 재활 의지조차 사라졌다. 3년간의 은둔은 그렇게 시작됐다.

명선씨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건 이상한 이름을 가진 회사였다. ‘안무서운회사’. 친구가 소개한 곳이었다. 세상 모든 게 무서워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명선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안무서운회사는 명선씨 같은 이들을 ‘은둔고수’라 부르며 ‘은둔이 스펙이 되게 하겠다’고 했다. ‘은둔 청년’은 명선씨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이나 집 안에서만 머무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청년(만 19~34세)을 뜻한다. 2024년 기준, 전국적으로 53만7,000여 명에 달한다. 전체 청년층의 5.2%다. 현장 전문가들은 실제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본다

지난 3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 ‘안무서운회사’에서 만난 유승규(33) 대표 역시 명선씨처럼 20대의 절반을 ‘쓰레기방’ 안에서 보낸 은둔 청년이었다. 그는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일본의 비영리단체가 한국에서 철수하자 회사를 직접 만들었다. 안무서운회사는 은둔 경험을 가진 당사자가 주축이 돼 다른 은둔 청년과 가족을 돕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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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서운하우스에선 생일파티 등 입소자와 퇴소자가 함께 어울리는 모임이 주기적으로 열린다. 안무서운회사 제공

 

명칭은 회사지만 잘 뜯어보면 ‘생활 공동체’에 가깝다. 오래된 주택 두 채를 개조한 셰어하우스인 ‘안무서운하우스’에선 7~10명의 은둔청년이 모여 살며 무너진 삶을 천천히 재건한다. 망가졌던 생활습관부터 바로 세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챙겨 입고, 아침 모임에 참석해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을 말한다. 점심 식사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 먹고 청소와 빨래, 장보기 등 가사 노동은 나눠 맡는다. 사회생활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훈련이다.

유 대표는 이런 과정이 “사람 한 명을 완전히 새롭게 키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건 입소자의 일상이 충분히 회복된 이후다. 5년, 10년씩 방에서 못 나왔던 사람을 도와 간신히 취업하도록 해도 금방 그만두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은둔 청년들에게 물어봤어요.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봤냐고. 대부분 ‘취업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았다’고 대답하더라고요.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여기죠. 현실은 정반대예요. 우여곡절 끝에 취업을 했더라도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실패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전보다 더 긴 재은둔이 시작돼요. 당연한 결과예요. 5년, 10년씩 방에서 못 나왔던 사람을 가혹한 경쟁 사회에 내던지는 건 사지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거든요.”

한번 고립과 은둔을 경험했던 청년들은 명선씨처럼 여러 차례에 걸쳐 재고립을 겪을 위험이 높다. 고립 은둔 청년의 평균적인 재고립률은 45.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무서운회사가 매년 재정난 속에서도 4년째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소 1년 이상은 가족과 주거를 분리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해야 ‘자존 능력’이 자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안무서운하우스는 입주 조건으로 ‘최소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걸었다. 회복 과정을 마친 청년들은 퇴소 후 마음 맞는 이들끼리 2~3명씩 함께 살아본 뒤,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무서운회사를 거친 청년들의 재고립률은 10% 미만이다.

청년들의 재고립을 막기 위해 보다 더 중요한 건 ‘노동의 형태’다. 오랜 시간 고립 생활을 한 청년들은 체력과 지구력 등 신체적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단번에 주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근무 패턴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맞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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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서운회사 셰어하우스’ 앞에서 유승규(가운데 머리 긴남성) 대표와 직원들 그리고 셰어하우스에 거주 중인 은둔청년들 이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최주연 기자

 

 

해외에서는 의미 있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중증 신체 장애를 가진 은둔청년들이 원격 제어 로봇에 접속해 카페 서빙을 한다. 대인기피증을 가진 청년들이 얼굴을 숨긴 채 곰 발바닥 장갑을 낀 손만 내밀어 음료를 건네는 일본의 ‘구마노테(곰발바닥)카페’ 역시 좋은 예다. 2022년 안무서운회사가 이를 벤치마킹해 성수동에 ‘곰손카페’ 팝업 매장을 열었을 때 구직 경쟁률이 무려 175:1이었다.

유 대표는 은둔과 고립이 ‘대단한 실패’가 아닌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SKY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생부터 갑자기 직장을 잃은 중년 실직자, 출산과 육아에 지친 경력단절 여성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은둔은 더 이상 특별한 실패 서사가 아니에요. 숨 가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흔한 국면이죠.”

유 대표 말처럼 은둔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삶의 한 장면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에겐, 잠깐 주저앉은 이들이 마침내 홀로 설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려줄 너그러움’이 필요해요.”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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