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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단상(斷想)
김외숙의 문학카페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Mar 02 2026 09:05 PM
나이아가라의 긴 겨울을 피해 서울에 온 지 두 달째다.
서울은 졸업 시즌을 보내고 입학의 때를 맞았다.
내 거처 앞의 성균관 대학교 교정은 단과대학 별 졸업식으로 며칠간 꽃을 안은 사각모들로 붐볐었다. 사람이 꽃 같고 꽃이 사람 같던 교정에서 나도 한 아름 꽃을 안고 싶었는데, 마침 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어 꽃 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연합뉴스
졸업식은 정말 꽃 같은 아이들을 위한 꽃 잔치였다. 아이들은 분홍 빨강, 노랑, 보랏빛 고운 꽃이었고, 축하하러 온 어른들 또한 오늘만큼은 꽃을 든 어른이었다.
그 꽃 속에서 나는 몇 가지 생경한 현실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먼저 눈에 띄던 것이 졸업생의 차림이었다. 아이들은 평상복이 아닌, 사각 모와 가운 차림의 모습이었다. 이제 초등학생을 벗는 앳된 사각모의 손녀를 보며 나는, 몇 년 후에 다시 사각모를 쓸, 여대생 손녀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눈에 띄던 또 하나는 여학생이 훨씬 많은 현상이었다. 졸업생 중 여학생이 95명이었고 남학생은 42명이었으니 남학생은 여학생의 반도 되지 않던 숫자였다.
그날 졸업식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여성이었고, 졸업생 담임 여섯 분 중 한 분만 남자 선생님이었다.
‘늘 숫자로 압도하고, 왕성한 에너지로 교실의 분위기를 휘어잡던 그 남학생들은 다 어디 간 것일까?’
한쪽이 다른 한쪽을 숫자로 누르면서 보이던 불균형은 생경함을 넘어 우려를 안겼다.
숫자로 늘 높던 우리나라의 남아 출산율이 여아 출산율보다 낮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 초반부터라는 통계가 있었다. 이후 통계는 여아 출산율의 꾸준한 상승을 보여주었는데 마침내 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그 구체적인 통계의 실현을 내가 본 것이다. 문득, 지금의 95와 42란 숫자가 머지않은 미래 어느 해엔 42와 10의 숫자로 졸업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낯선 현실을 내 눈으로 목도하면서 문득 아마조네스란 단어를 떠올렸다.
흔히 여성 전사 부족의 상징으로 쓰이는 아마조네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주체적이고 도전적이며 고정관념을 벗고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는 강인한 여성상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으니, 95대 42란 숫자가 아마조네스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남자 졸업생을 숫자 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소녀들이 성장해 국방의 의무를 주도적으로 하면서 나라를 지킬 것이고, 국회와 법과 행정에서 주도적으로 나라를 이끌 것이며, 주도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건물을 짓고 농사를 지을 것이며, 가르치는 현장과 가정에서는 이미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엔가 새로 출범한 스페인 사회당이 장관직 17개 중 11개에 여성 장관을 발탁함으로써 아마조네스 내각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이것은 스페인 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아마조네스 화라는, 파격적인 변화를 불러올 남녀 성 비율도 출산이 전제될 때의 얘기다. 지금은 세계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 절벽의 위기 속에 있고, 우리나라는 그 위기의 중심에 있다.
이제 곧 입학식이 있다.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컴퓨터 속의 통계보다, 초등학교 졸업식과 입학식 현장에 가보라고 하고 싶다. 저출산으로 인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시작된 인구 감소의 심각한 현실을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일과 양육의 어려움을 이유로 결혼 기피, 자녀 기피가 부른 잿빛 현실은 개인의 책임인 동시에 사회적, 국가적 책임이다.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빈 교실, 고령화의 잿빛 사회, 잿빛 나라를 빨강, 보라, 분홍, 노랑의 꽃으로 다시 채워야 한다. 비록 숫자는 불균형을 이룰지라도 사각모 아이들의 꽃처럼 화사한 졸업과 입학이 이어지도록, 정부는 햇빛이며 거름이며 물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낌없이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그 꽃들이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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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