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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같지 않은 스산한 날에
황로사(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05 2026 11:57 AM
수필이 있는 뜨락(27)
올 봄 날씨가 심상치 않다. 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지난 달 서둘러 모종판에 씨를 뿌리고, 빅토리아 데이가 지나면 땅에 옮겨 심으려고 준비해 놓고 있는 참이다. 이제나 저제나 기온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며 매일 들여다 보아도, 싹은 고개조차 내밀지를 않는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5월이 이상 저온으로 잔뜩 움츠리고 있다. 60년 만에 찾아온 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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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사온 집은 정원을 가꿀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땅이 척박했다. 잡초가 무성한 앞마당엔 유난히 자갈돌이 많았다. 작년에 햇볕이 좋은 공간을 골라 잡초만 대충 뽑아내고, 벽돌로 경계를 지어 상토와 비료 섞인 흙을 사서 부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엄마가 좋아했던 꽃들을 기억에서 소환해내어 모종을 사오거나, 지인들이 준 씨를 뿌리고 밭을 만들었다. 꽃 농사에 미숙한 주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꽃들은 스스로 폭풍 성장하며 봉우리를 피워 올렸다. 분꽃, 채송화, 작약, 장미, 수국이 소박하나마 화단을 아름답게 지켜주었는데....
서늘한 비가 바람에 흩날리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주인을 기다리는 텅 빈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잡초들만 앞다퉈 공간을 채우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작년에 채워넣은 흙은 땅 속으로 사이사이 들어가고 돌들이 드러나있었다. 땅이라도 미리 부드럽게 해놓으려고 호미로 땅을 조금 파보았다. 축축한 땅 속을 뚫고 들어간 호미의 날 옆에 자갈이 층층이 박혀있는 게 보였다. 돌을 골라내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았다. 끝도 없이 돌이 나왔다. 이 정도로 많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작년에 나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꽃들은 어떻게 여기에 뿌리를 박고 자라났던 건가. 아마도 전에 살던 사람이 앞마당을 돌로 포장하려고 했다가 미완성 상태로 우리가 이사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른 날이 계속 되면 땅이 쩍쩍 갈라졌었구나'.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속은 거친 돌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 보슬보슬한 흙을 덮고 식물을 심었으니 뿌리 내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러하지 않을까. 속에 안 좋은 감정이나 하지 못한 말을 담은 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좋은 척하며 포장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마른 땅처럼 관계는 메마르고 틈이 생겨 소원해지기 쉬울 터.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사는 동안 반려 존재가 되어줄 꽃들과 오랫동안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는 돌을 골라내고, 비옥한 땅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겉으로만 허울좋게 꾸밀 게 아니라, 땅 속도 기름지게 만드는 일이 쉬운 건 아니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후회할 일은 아닐 게다. 인간 관계도 좋은 감정과 신뢰가 내면에 쌓여 거름이 되면 묵묵히 삶을 지켜주는 동반자로 영글어 가지 않던가.
퍼내고 퍼내도 끝이 없이 나오는 자갈돌. 막상 시작하고 나니 보통 일이 아니다. 힘은 들어도 이왕 시작한 일, 중간에 그만 둘 수는 없다. 나는 물만 줄 뿐인데 그들에게는 생명의 피로 수혈되어 날마다 기쁨을 안겨주는 반려 식물을 위해 이 정도는 해주어야 마땅하다. 자연을 가꾼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정신적인 안정과 마음의 평화를 자연에게서 얻는 게 인간이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사람보다 자연에게 가까이 하고 싶은 건 나 뿐만이 아니리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삶의 깨달음을 주는 자연 앞에서 나는 다시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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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저온은 당분간 계속될 거라고 한다. 나의 돌 고르기 작업도 5월의 정상 기온으로 회복될 때까지 계속하게 될 것이다. 비옥한 땅의 면적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걸 보니 뿌듯하다. '거친 돌을 피해가며 힘들게 뿌리를 내리지 말고 푹신한 흙 속으로 쭈욱 펼치며 마음껏 자라거라.' 호미질을 하며 최면처럼 몇 번 중얼거리니 꽃들이 내 마음 속에서 미리 피어 오른다.
오래 구부리고 있었더니, 얼마 전 고생했던 허리 디스크 통증이 뭉근한 느낌으로 신호를 보낸다. 멀리 바라보고 시작한 일이니 급하게 하지 말고, 오늘은 그만 쉬라는 음성으로 듣고 일어나 허리를 편다. 저 멀리 석양이 내려와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하루의 문을 닫는 노을 빛은 고즈넉한 평안을 선물로 준다.
기어들어온 침대 속이 유난히 포근하다. 피곤의 농도와 침대의 가치는 정비례 하는 모양이다. 이 시간 무엇이 더 필요하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대로 꿈결 속으로 녹아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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