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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이 중요한 시대

점점 작아지는 오스카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4 2026 11:56 AM

대중과 멀어지는 시상식


곧 미국 오스카 시상식이 열린다. 3월 15일이다. 어떤 영화가 승자가 될까. 예측부터 한번 해보자. 가장 강력한 후보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라이언 쿠글러의 ‘씨너스: 죄인들’, 조시 사프디의 ‘마티 슈프림’, 클로이 자오의 ‘햄넷’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원 배틀 애프너 어나더’가 상을 휩쓸 거라 다들 예측했다. 오스카 시즌이 다가오자 ‘씨너스: 죄인들’이 치고 나오는 중이다. 내 생각에 결국 작품상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갈 확률이 높다. 존경받는 작가지만 상복이 없었던 폴 토머스 앤더슨에게 오스카 회원들은 뭐라도 주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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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동상. AFP 연합뉴스

 

언제나 예측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씨너스: 죄인들’ 역시 상징적인 영화다. 흑인 영화인들이 흑인 아이덴티티를 가득 담아 만든 이 뱀파이어 영화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기대 이상의 엄청난 성적을 거뒀다. 오스카는 의외로 박스오피스에서 빛을 발한 영화를 좋아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사실상 흥행에서 실패한 것은 큰 단점이다. 게다가 오스카는 고고하거나 고답적이던 태도에서 벗어나 인종, 국가적 다양성을 품으려 노력해 왔다. 지난 세기에는 후보에도 잘 올리지 않던 장르의 영화에 대한 지원도 크게 상승했다. 천대받던 호러영화도 여러 부문 후보에 오르기 시작했다. 재능 있는 흑인 영화인이 뭉쳐 만든 호러영화 ‘씨너스: 죄인들’이 오스카를 휩쓴다고 해도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문제가 하나 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받든 ‘씨너스: 죄인들’이 받든 독자 여러분은 딱히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솔직히 말하자. 여러분은 오스카에 대한 관심이 이젠 별로 없다. 영화광 독자는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여러분은 지난해 작품상 수상작이 ‘아노라’이며, 지지난해 수상작이 ‘오펜하이머’이며, 지지지난해 수상작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지지지난해 수상작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애플TV 플러스 영화 ‘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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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지난달 22일 영국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제79회 영국 아카데미영화상(BAFTA) 시상식에서 감독상·촬영상·각색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오스카 시청률은 매년 떨어진다. 가끔 상승했다가도 엊그제 코스피 떨어지듯 떨어진다. 사람들이 더는 시상식을 생방송으로 보지 않는 탓도 있다. 사실 뭔가를 생방송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는 거의 사라졌다. 오스카는 2029년부터 유튜브 단독 생중계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방송사 ABC와의 50년 파트너십이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튜브 생중계 시청률이 치솟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냥 사람들은 더는 거대 시상식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다.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모두가 시상식을 봤다. 모두가 수상작을 봤다. 수상작을 기억했다. 당시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은 무엇을 의미했나.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 대작을 의미했다. 스타들이 등장하는 대중적인 영화들이 상을 쓸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트렌드가 바뀌기 시작했다. 예술적인 작은 인디 영화들이 오스카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어쩌면 그게 함정이 된 걸지도 모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주요 작품상 수상작들을 보자. ‘쉰들러 리스트’, ‘포레스트 검프’, ‘타이타닉’, ‘글래디에이터’…. 압도적인 대중적 성공을 거둔 대작들이다. 제목만 말해도 모두가 기억하는 영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수상작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티스트’, ‘버드맨’, ‘노매드랜드’. 좋은 영화들이다. 훌륭한 예술 영화들이다. 대중적인 대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안긴 ‘기생충’은 오스카 작품상 역사상 첫 외국어 영화였다. 대단한 선택이었다. 대담한 변화였다. 많은 미국인은 당황했다. 본 적도 없는 외국어 영화가 시상식을 휩쓸 때 ‘역시 오스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벤허’ 같은 영화지’라고 생각하던 미국 중부 소도시 중년 남자의 표정을 상상해 보시라.

오스카는 지난 20년간 변화를 추구해 왔다. 달라져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해 왔다. 진짜 예술적인 작은 영화가 아니라 대중적인 대작에 트로피를 안겨 왔던 고집을 바꿔왔다. 2000년대 이후 인디 영화의 힘이 커지자 그런 트렌드 역시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나는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믿는다. 올바른 방향이 항상 시상식의 대중적인 인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적은 관객이 본 작은 영화가 후보에 오르는 순간 시상식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옅어진다. 게다가 영화를 보는 플랫폼도 지나치게 다양해졌다. OTT 영화들이 주요 부문에 오르고 수상하기 시작하자 관심은 파편화됐다. 극장과 DVD라는 단순한 플랫폼으로 모든 영화를 접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2020년대의 모든 문화가 그렇다. 더는 압도적인 범대중적 히트작은 잘 없다. 그해를 상징할 만한 히트곡이나 영화 숫자도 점점 줄어든다. 음악을 생각해 보자. 이제 그래미 수상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독자 여러분 각자의 유튜브 뮤직이나 스포티파이 연말 결산 리스트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모든 문화의 중심은 ‘나의 것’이 됐다. 나의 것이 제일 중요해졌다. 작품상 수상작을 봐야만 대화에 동참할 수 있던 시대는 이제 거의 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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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베이커 감독이 지난해 3월 열린 제9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아노라'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을 받은 후 트로피 4개를 품고선 환히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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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액터어워즈에서 최고상인 캐스트상을 수상한 영화 '씨너스: 죄인들' 출연진. AFP 연합뉴스

 

1994년 ‘쉰들러 리스트’를 본 사람들은 동네에서 대화를 나눴다. 옆집 아저씨도 앞집 아줌마도 대화를 나눴다. 2025년 ‘아노라’를 본 소수의 사람은 팔로어가 한정된 소셜미디어와 영화광 회원들로 구성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화를 나눈다. 오스카는 점점 작아진다. 취향과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시대에 거대 시상식의 권위는 점점 작아진다.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다. 내 소망은 하나뿐이다. 오스카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배우 글렌 클로즈가 상을 받는 것이다. 8번이나 후보에 오르고도 아직 무관이라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김도훈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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