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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주간한국

‘유대인 대학살’ 나치 전범은

광인도 악인도 아니었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21 2026 02:59 PM

독일 영속 위한 불순물 제거 망상 비뚤어진 애국심에 권력욕 겹쳐 광기에 사로잡힌 듯 조직적 학살


인종 학살의 대명사로 기록되는 제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절멸은 독일 민족의 영속을 위한 불순물 제거라는 망상에서 비롯했다.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듯 나치 지도부는 조직적으로 학살을 계획·지시하고, 부하들은 성실히 이를 수행했다. 이들은 광인이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악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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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유대인 문화유산 박물관에서 2019년 열린 '아우슈비츠:오래지 않은,멀지 않은' 전시회를 찾은 한 관람객이 '죽음의 수용소'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이송되었던 유대인들이 들고 왔던 가방 등 유품을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궁금증에 답하려는 시도 중 널리 알려진 것으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통찰을 꼽을 수 있다.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그가 목도한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광인도 악인도 아니었다. 조직에서 주어진 일을 그저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하는 평범한 관료일 뿐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법적으로 정당한가 평가하지도, 자신이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반성하지도 않았다. 조직의 톱니바퀴로 열심히 움직여 거대한 범죄에 일조했다.

아렌트의 해석은 홀로코스트의 광기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광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왜 나치 지도부는 이런 대량 학살을 기획했을까. 아렌트보다 20년 앞서 답을 얻으려 한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전범을 단죄하는 뉘른베르크 법정에 선 나치 최고위 지도부 22명의 정신 상태를 평가하는 업무를 맡았던 미군 소령 더글러스 맥글래션 켈리였다.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나치 지도부의 행동을 설명할 공통된 정신의학적 원인이 무엇일까 추적하는 켈리 소령을 중심으로 뉘른베르크 법정 현장과 켈리의 개인사를 엮어낸 논픽션이다.

켈리는 만약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정신질환이 있어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면 훗날 이런 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수감된 지도자 중 그는 나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에 특히 주목했다. 괴링과 여러 차례 대화하고 로르샤흐 잉크반점 검사 같은 심리 검사까지 했던 켈리는 괴링을 "지적이고, 그럴듯한 용모에 강하고 역동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변화에 놀랄 만큼 잘 적응했고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책임과 일에 집중했으며 언제나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 확신하는 인간"으로도 보였다.

반면, 괴링은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조종하며 주변 사람들의 속내를 영리하게 꿰뚫어보는 데 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무자비했고 자기애가 강했으며 가족과 친구를 제외한 타인에게 냉혹할 만큼 무관심"했다. 켈리의 눈에 괴링은 나치즘을 받아들여 자신의 야심과 권력욕을 총족시키려 한, 순도 높은 자기중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괴링은 광인이 아니었다. 다른 전범들도 마찬가지였다. 엘리트 나치는 괴물도 아니고 악행을 저지르는 기계도 아니고 영혼과 감정이 없는 로봇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공통된 성향은 통제되지 않은 야심과 빈약한 윤리 의식, 과도한 애국심이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중독된 듯 일에 빠졌고, 일을 추진할 때 목적만 중요했지 수단에 개의치 않았다. 아리아인은 우월하다는 편견이 뿌리내린 문화에서 독일 전체를 광기로 몰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특출한 악마성이 아니라 적당한 리더십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켈리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뒤늦게 켈리와 함께 전범의 정신 상태를 파악했던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는 켈리와 달리 이들의 일부에게 확실히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다고 결론 지었다. 당시에는 길버트의 해석이 더 그럴듯해 보였지만 이후 아렌트의 통찰이나 밀그램, 스탠퍼드대학 감옥 실험 같은 사회심리학 연구는 켈리의 해석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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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잭 엘하이 지음·채재용 옮김·히포크라테스 발행·336쪽

 

켈리는 자신의 연구를 정리한 책을 내고 열심히 강연 다니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미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나머지 절반을 지배할 수만 있다면 미국인 절반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기꺼이 그 자리에 오르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늘도 민주주의의 권리를 반민주적으로 이용하며 떠들어 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독일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피하려면 우리의 생각과 교육, 우리의 정책과 정치적 방법을 엄밀히 점검해야 합니다. 극단적 민족주의자와 인종주의 광신자가 정치 권력을 쥐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홀로코스트 후 80년도 더 지난 지금 여전히 이 지적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김범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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