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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서 느낀 ‘현실 속 환상’ 그렸죠”
첫 장편소설 ‘정전’ 펴낸 함윤이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04 2026 01:51 PM
뉴질랜드에서 공장·농장 등 경험 힘든 노동 속 고군분투·분노 담아 성장·연애소설 같은 ‘SF 노동소설’ “소설 쓰기는 재미있고 힘든 노동”
"내가 원하는 건, 공장 전체가 정전되는 거야. 단 하루만이라도 말이야. 하룻밤만이라도 그 안의 일이 완전히 꼬여버리면 좋겠어."
스무 살 '막'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제약회사 공장에 취직한다. 불량 캡슐을 골라내는 선별팀의 막내로 일하며 또래인 '수지' '영준', 외국인 노동자 '라히루'와 가까워진다. 특히 라히루에게는 남다른 마음을 품게 된 막. 그러던 어느 날, 라히루는 기계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하고, 공장에서 잘린다. 막은 공장에 한방 제대로 먹이고 싶어진다. 그때 떠오른 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실 날 막에게 고백을 한 '은단'이다. 은단은 눈을 한 번 깜박이면 전류를 끊을 수 있는 초능력자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내가 전부 꺼뜨릴 수 있으니까."
20대 뉴질랜드 워홀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

최근 첫 장편소설 '정전'을 펴낸 함윤이 작가는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제 생각에 잉여나 과잉이라 여겼던 요소들이 장편의 세계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들기도 하더라"며 "소설의 세계를 이루는 요소는 굉장히 많고도 다채롭구나 새삼 체감했다"고 말했다. 정다빈 기자
문단의 대세로 떠오른 1990년대생 작가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함윤이(33)의 첫 장편소설 '정전'은 이런 이야기다.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정전'은 현실과 환상을 두 축으로 하는 '함윤이 세계관'을 잇는 동시에 노동소설의 외피를 입고 있다. 실제로 함 작가가 2018년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제약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일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당시 그 일이 저에게 굉장히 선명하게 다가와 소설 속에 어떤 방식으로든 녹이고 싶었다"며 "뉴질랜드는 오후 4, 5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데 오후 3시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는 글을 썼다"고 했다.
2019년 '정전'의 첫 번째 완고가 나왔다. 이후 두 번을 다시 썼다. 우리 손에 들린 '정전'은 '최최최종본'인 셈. 그는 "단편을 쓸 때 한번 쓰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방식으로 퇴고를 종종 했는데 장편에도 똑같이 적용을 했던 것"이라며 "첫 장편이라 가능했던 일"이라고 손사래 쳤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제약회사 공장뿐 아니라 과수원과 토마토 농장에서 일했다. 한국에서도 동물원과 게스트하우스, 박물관, 웨딩홀, 극장, 카페 등지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20대 시절부터 쌓아온 다양한 일 경험은 그의 소설 곳곳에 스며 있다. 이를테면 막은 공장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도 내심 '같은 무리'가 아니라고 여긴다. 함 작가는 "나 역시 노동을 하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노동자라기보다 대학생으로 위치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며 "왜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노동자보다 한층 안전하고 보기 좋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고민이 소설에도 드러났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 내 방식으로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
함윤이 작가가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 무서운 이야기를 잘 쓰고 싶다"며 "현재는 국회의사당과 국립중앙박물관이 등장하는 단편을 쓰고 있다"고 했다. 정다빈 기자
'사람이 다치는 곳에서 사람을 고치는 약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장 노조원들의 시위에 막도 함께한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거나 피켓을 드는 대신 농성텐트 안에 숨어 있는다. 대신 공장을 멈춰 세우기 위해 다른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막이 라히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은단의 초능력을 빌려 공장을 정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작가는 "막도 처음에는 사회의 규칙과 논리에 따라 복직을 시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침과 수치심을 겪게 된다"며 "근사해 보이지 않는 노조 활동을 통해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한 번에 엎어버리는 방식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했다. 막의 입장에선 자기 나이와 상황에 걸맞은 나름의 고군분투였다는 설명.
앞서 작가는 'SF 노동소설'을 예고했지만, 막상 꺼내놓은 '정전'은 연애소설이나 성장소설, 우정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는 "그렇게 헷갈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노동문학과 지금 2026년에 우리가 인식하는 노동과 그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잖아요. 이걸 제 방식으로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제게 중요했던 장르적 요소를 넣었다면, 앞으로는 이 노동 자체 안에서 구체화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니까요."
2022년 등단한 그는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젊은작가상(14·17회), 문학동네소설상까지 유수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낙선을 엄청 많이 하면서, 누가 내 글을 읽어주지 않아도 나는 이걸 계속하고 싶은가 곰곰이 생각했고 '혼자라도 쓰자' 마음먹었을 때 등단을 했다"며 "수상도 무척 기쁘지만 그보다는 외부와 상관없이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가 제겐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노동유희'다. "노동을 한다는 감각은 확실히 있는데 진짜 재미있고 즐겁고, 근데 또 힘들고."(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가 인터뷰에서)

정전·함윤이 지음·문학동네 발행·324쪽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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