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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스포츠

“한글은 국가 정체성” vs “경복궁 역사성 훼손”

문체부 ‘광화문 현판 토론회’ 개최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03 2026 02:07 PM

2010년 목조 복원 때부터 논란 이어져 2층 누각 처마 한글 현판 추가 의견도


조선 정궁 경복궁의 정문으로 한국 문화의 핵심 상징 공간에 자리잡은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려는 정부의 계획에 찬반 양론이 거세게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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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이상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정책연구실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화면에 광화문 한글 현판이 달린 모습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 현판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찬성론과, 고증에 부합하지 않는 한글 현판을 달면 경복궁의 역사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론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의견 수렴을 위해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찬성 측 발제자로 나선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글은 국가 정체성의 기본인데,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은 없다"면서 "우리가 한자 사용 국가라는 국제적 오해를 없애고 광화문 현판에서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밝혔다. 반대 입장인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의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것"이라며 "과거에 개입하지 말고 과거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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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열린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설치 범국민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3·1절 기념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날 국민모임은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2분의 1 크기로 예시 모형(가운데)을 공개했다. 강예진 기자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아야 한다는 주장은 2010년 광화문을 목조로 복원하면서 한자 현판을 달 때부터 한글 단체를 중심으로 문화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이 2024년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자고 제안했으나 국가유산청은 당시 "중건 당시에 가깝게 고증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올 초 국무회의에서 3층 누각 처마에 달린 한자 현판을 그대로 두고 2층 누각 처마에 한글 현판을 새로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판 교체에는 반대 입장이던 국가유산청도 허민 청장이 "한글을 세계화하자는 취지와 상징성에 공감한다"며 추가 설치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찬성 측은 주로 광화문 현판을 통해 한글이라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며 효과성을 강조했다. 김주원 한글학회장은 "현재 광화문은 과거 한자 문화를 무의미하게 세습하고 있는 박제된 유산"이라며 "21세기의 시대 정신을 담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국 문화의 근간에는 한글이 있다"면서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이 고뇌하며 한글을 만든 경복궁에 한글 현판을 달아 K컬처의 근간인 한글 탄생지라는 서사를 완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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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진행된 광화문의 월대 및 새 현판 공개식 모습 .최주연 기자

 

반대 측은 1990년부터 2045년까지 진행되는 경복궁 복원 장기 계획의 진정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석주 서일대 건축과 교수는 "광화문은 경복궁의 일부이고, 경복궁은 지속적으로 복원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어떤 고증 기록에도 없는 한글 현판을 다는 순간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복원'이라는 기준을 부정하는 꼴이 되고, 국가유산 보수와 복원의 당위성조차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장관이 여러 언어로 현판을 다는 근거로 "중국 자금성도 만주어와 한자 현판이 있다"고 밝힌 데에도 비판이 나왔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자금성 사례는 중국어를 (청나라 때 지배층 언어였던) 만주어로 번역했다는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광화문은 번역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유럽 성당의 벽면에 라틴어 문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듯 한자 현판도 공동 문어(文語)로서 한자가 점유해 온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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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문화재청이 공개한 서울 경복궁 광화문의 시범 현판. 문화재청 제공

 

광화문 현판은 그 상징성 때문에 수난과 논란이 많았다.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세운 광화문을 2006년 철거하고 2010년 원래 위치에 전통 목구조로 복원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글씨를 쓴 한글 현판을 내리고 조선 고종 때 훈련대장이던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해 달았다. 그러나 이 현판에 금이 가고, 과거 현판이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아닌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것이 2018년 고증으로 확인되며 2023년 현재의 형태로 다시 교체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이건범 대표가 이런 경위를 들어 "광화문 한자 현판은 진정성이 박약하다"고 짚은 반면, 홍석주 교수는 "이는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이었고, 다시 오류가 발견된다면 다시 바로잡아서 어떻게든 원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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