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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이 지워버린 수많은 이름들 추모

영화 ‘내 이름은’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 초청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12 2026 02:16 PM

정지영 감독 “폭력을 이기는 건 연대” 염혜란 “현재의 모습과 닮아 인상적”


“왜 남자아이 이름을 영옥이라고 지으셨어요?” “호적에 올릴 때 그 이름이 불쑥 떠올랐신디. 그 이름이 좋안(좋았어).”

 

2db27279-dc42-485d-bc10-14b457c0dc94.jpg영화 ‘내 이름은’. CJ CGV·와이드릴리즈 제공

 

1998년 봄, 제주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정순(염혜란)은 정신과 의사(김규리)의 도움을 받아 흐릿하게 지워진 50년 전 기억을 되찾고 있다. 그는 아들 영옥(신우빈)에게 왜 여자 이름을 지어줬는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영옥은 이름이 촌스럽다며 친구들에게 민종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한다. 이름에 대한 영옥의 불평으로 영화가 시작하지만 그의 일상에서 이름의 의미는 곧 지워진다. 제목이 말해주듯 정순의 사라진 기억을 찾기 위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영옥은 성적도 나쁘지 않고 교우관계도 원활하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전학 온 ‘일진’ 경태(박지빈)의 눈에 들어 난생처음 반장에 당선된다. 경태가 월등한 주먹질로 단숨에 권력 서열 최상위를 차지한 상황, 영옥은 경태와 패거리가 조장하는 교실 안의 폭력을 수수방관하는 꼭두각시 처지가 된다. 영옥의 절친이자 강력한 반장 후보였던 민수(최준우)가 경태의 눈 밖에 나면서 영옥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민수를 때려눕혀 반장이라는 가짜 권력을 증명할지, 경태와 관계를 끊고 민수와 우정을 지켜낼지.

영옥이 새로운 힘의 질서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정순은 의사에게 조금씩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군인이었던 남편과 첫 만남, 베트남전에서 다리를 잃고 돌아온 남편의 방황,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첫딸. 그런데도 어린 시절 기억만큼은 여전히 조각 난 상태다. 어린 시절 친구와 뛰어놀던 들판은 어디였을까. 4·3 사건은 정순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영옥은 왜 여자 이름을 갖게 됐을까.

15일 개봉하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초청작 ‘내 이름은’은 1940년대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과 그로 인해 지워진 수많은 이름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영옥이라는 이름에 얽힌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은 역사의 상흔을 되짚으며 폭력의 역사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 노장 정지영 감독은 직접적인 설명이나 재현보다 주인공 정순의 어린 시절과 관련한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동시에, 학교 폭력이라는 은유적 방식으로 제주 4·3 사건을 이야기한다.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남영동 1985’(2012)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그늘을 들췄던 노장 감독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735f3ee9-851e-4aac-aaa9-eb60c89dbdce.jpg영화 ‘내 이름은’. CJ CGV·와이드릴리즈 제공

 

영화는 제주4·3평화재단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을 토대로 제작됐다. 정 감독은 지난 2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평화로운 공동체 내에 외부 세력이 들어와 질서를 다시 잡으려 하며 갈등이 시작되고 그것이 집단 폭력으로 이어진다”며 “국가 폭력뿐 아니라 일반 사회도 마찬가지이기에 서사 구조를 학교 폭력 중심으로 짰다”고 설명했다. 4·3을 일으킨 폭력의 역사가 현재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시각이 영화에 담겼다. 그는 “우리가 4·3의 폭력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 폭력이든 다른 어떤 폭력이든 한 사람의 저항이 아니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연대를 통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염혜란이 다시 한번 제주 어멍을 맡아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그는 “실제 있었던 일이어서 접근이 조심스러웠는데 과거 4·3을 다룬 작품들과 4·3을 겪은 분들의 증언, 육성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면서 "이야기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말해주는 지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와는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강인한 어머니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데 정순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정지영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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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imes.net/문화·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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