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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없애 친환경 한다더니...
K팝 ‘스마트 앨범’의 배신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11 2026 12:52 PM
플라스틱 대신 QR코드 앨범 홍보하면서 뒤에선 ‘팬싸’ 응모용 CD 중복 구매 조장
6,667톤.
2021년부터 4년간 한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생산한 재활용 불가 플라스틱의 양이다. 중형 승용차 4,445대 분량으로, 그중에서도 CD는 자연분해되는 데만 100년이 걸리는 '폴리카보네이트(PC)'로 만들어진다.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과정에서 오염 물질과 온실가스가 생기는 탓에 CD는 '환경 오염 주범'으로 지목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명동 케이메카 명동본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BTS 앨범, 굿즈 등을 살펴보고 있다. 윤기훈 인턴기자
엔터업계는 이에 포장물과 구성품을 덜어내거나 CD를 없애고 있다. 대신 앨범 속 근거리무선통신(NFC)이나 QR코드를 통해 수록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 음반'을 출시했다. 하지만 CD 없는 앨범은 과연 친환경적일까. 플라스틱을 줄이는 듯 홍보했지만, K팝 시장은 더 교묘하게 환경을 갉아먹고 있다. 엔터업체들은 매년 수천억 원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고작 1억 원대 '쓰레기세'를 물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국내 4대 엔터업체(하이브·SM·YG·JYP)에서 출시된 CD 없는 옵션이 포함된 앨범 58개를 전수 조사했다. NFC 기능이 들어간 열쇠고리 형태로만 출시된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의 '참 오브 호프(Charm of Hope)'를 제외하면, 57개는 CD가 포함된 음반이 기본 앨범이고, 스마트 앨범은 옵션 중 하나였다.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은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앨범 58개가 출시된 뒤 개최된 팬사인회 공고 625개를 분석한 결과, 9.7%(60개)에서만 스마트 앨범 구매 시에도 이벤트 응모가 가능했다. 78.4%(491개)는 CD가 포함된 앨범을 구매할 경우에만 응모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스마트 앨범(25개)을 내놓은 SM의 경우, 거의 대부분(22개)의 이벤트에서 팬사인회 응모 조건을 '포토북 버전 앨범(CD 포함) 구매자'로 한정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K팝 팬 네 명 중 한 명은 팬사인회 등 이벤트 응모를 이유로 음반을 구매한다. 앨범 한 장을 사면 스타를 직접 볼 수 있는 이벤트 응모권이 한 개씩 주어지는데,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똑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구입하는 일이 적지 않다.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며 '친환경 옵션'을 발매했지만, 이벤트에 가려면 여전히 CD를 대량 구매할 수밖에 없다. 박소정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장은 "실물 앨범 과잉 구매 유도 행위는 쏙 빼고 '친환경 마케팅'만 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체 스마트 앨범을 갖고 있는 엔터업체의 '내로남불'은 특히 심각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SM이 생산한 CD 등 플라스틱은 자체 NFC 앨범 브랜드인 'SMini'를 선보인 2022년에는 400톤 정도였지만, 2024년엔 647톤으로 늘어났다. 하이브도 2022년 첫 친환경 앨범인 '위버스 앨범'을 출시했을 때 729톤의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데 그쳤지만, 이듬해에는 2배(1,405톤)로 증가했다. 4대 기획사 소속 관계자는 "순위 문제나 수익 구조상 플라스틱 음반 비중을 줄이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친환경 옵션이 무색하게 플라스틱 앨범이 양산되는 생산 체제도 문제다. 업체에선 같은 앨범을 디자인만 달리해서 여러 버전을 만들고, 버전마다 서로 다른 포토카드나 포스터를 넣어 팬들의 과잉 구매를 유도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 핫트랙스에 다양한 형태의 앨범들이 진열되어 있다. 윗줄은 CD가 들어간 실물 앨범, 아래는 NFC나 QR코드로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 앨범이다. 박지연 인턴기자
지난해 발매 1주 만에 300만 장이 팔린 그룹 스트레이키즈 4집 음반 '카르마(Karma)' 앨범을 살펴본 결과, 해당 음반은 NFC가 장착된 키링형 앨범 이외에 플라스틱 CD 들어간 '일반반', '한정반', '아코디언', '콤팩트' 등 5개 디자인으로 출시됐다. 팬사인회 응모 대상인 일반반은 '세레모니' '후레이' 두 개로 나뉘고, 앨범에 1개씩 들어있는 랜덤 포토카드 8종은 버전마다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포토카드를 모두 구하려는 팬은 같은 앨범을 수백 장 사야 할 수도 있다.
세레모니 앨범의 경우 CD 1장에 포장재까지 17개 구성품이 있었다. 얇은 플라스틱 포장재, 종이 박스, 112쪽 분량의 포토북, 엽서 세트, 미니 포스터, 종이로 만든 CD집, 코팅 스티커와 포토카드 등이다.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혹은 포토카드 1장을 얻으려고, 앨범을 하나 살 때마다 폐기물 17개가 생긴다는 뜻이다.
지난해 초동 108만 장을 기록한 그룹 에스파 미니 6집 '리치맨(Rich man)'도 총 5개 디자인으로 시장에 나왔다. 이 중 팬사인회 응모용인 '버스트(Burst)' '에너지' 버전은 표지가 각각 5개씩 총 10종류로, 랜덤 배송됐다. 표지 속 멤버가 누구인지에 따라 포토카드와 포토북 속 사진이 달라진다. 좋아하는 멤버를 뽑거나 풀 컬렉션을 모으려면 동일한 음반을 계속 사야 한다.
기후 캠페인 그룹 '케이팝포플래닛' 사무실에 K팝 팬들로부터 받은 미개봉 음반 수천 장이 가득 쌓여있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양지훈 한국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스마트 앨범과 연계된 이벤트를 늘리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기후를 걱정하는 일부 팬들의 선의에 기댈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정교한 설계가 있어야 친환경 소비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플라스틱 대량 소비를 부추겨 수익을 내는 기획사들에 더 많은 폐기물 부담금을 지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폐기물 부담금은 재활용이 어려운 물건을 생산·수입한 업체를 대상으로 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음반 산업의 경우 CD가 대표적인데, ㎏당 부담금은 150원으로 기준 금액이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일보가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실물 음반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4년간 하이브·SM·YG·JYP가 환경부에 납부한 부담금 총액은 12억 원 정도다. 지난해 4개 업체의 영업이익은 각각 499억 원, 1,830억 원, 713억 원, 1,552억 원이다. 수익에 비해 소소한 금액을 내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플라스틱을 감축할 동기가 약하다.
배재근 서울과기대학원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폐기물 부담금은 소각·매립되는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는 경고성 의미도 있다"며 "기업이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부담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소민교·김희서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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