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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청국장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16 2026 10:34 AM
몇 년 전, 고국의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고교 동창 녀석이 나직이 위로를 건넸다. “너네 어머니 청국장은 참 끝내줬는데… 그 뜨끈한 밥에다가 한 숟가락 쓱 비벼 먹으면 정말 환상이었지”
어머니는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오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라”하시며 밥상을 차려 내셨다. 그때 운 좋은 친구들이 얻어먹었던 그 별미가 함경도식 청국장이었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회령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셨다. 다섯 살 되던 해, 외할아버지께서 두만강 건너 연변의 ‘하마탕(蛤蟆塘)’으로 이주하면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다. 하지만 그곳은 생활 및 교육 환경이 너무도 척박했다. 마침 이모부께서 회령의 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셨기에, “너만이라도 신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라는 배려로 홀로 이모댁으로 보내졌다.
그러다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그곳에서 6.25 전쟁을 맞닥뜨린 어머니는 이모 가족과 함께 급히 피난길에 오르셨다. 그것이 연변에 살던 친부모와 남매들과 생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셨다. 아마도 어렸을 때 회령에서 먹었던 청국장을 끓일 때마다,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이별의 아쉬움을 삭여 내셨을 터이다.
어머니는 청국장을 집에서 직접 띄워 만들었다. 1970년대만 해도 달걀을 짚으로 묶어 팔았는데, 달걀꾸러미 짚을 버리지 않고 잘 씻어 햇볕에 말렸다. 황금빛 메주콩을 차가운 물에 씻어 묵은 먼지를 털어 낸 다음, 하룻밤 물에 불린다.
불린 콩을 솥에 넣고 삶는데, 눌렀을 때 으깨질 정도로 푹 익으면 싸리 광주리에 옮겨 담는다. 그 사이사이에 잘 마른 볏짚을 꽂아 넣는다. 그때 볏짚 속에 숨어 있던 보이지 않는 균이 콩의 품으로 파고 들어 가며 ‘신혼방’을 차린다. 그러니까 짚은 콩과 균의 천연 중매쟁이인 셈이다.
이제 두꺼운 이불을 덮고 따듯한 아랫목에 사흘 정도 세월을 삭이는 시간을 가진다. 온기 속에서 콩들은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끈적끈적한 ‘진’을 만들어낸다. 코끝을 찌르는 쿰쿰한 냄새는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무 주걱으로 콩을 들어 올리면 은빛 실타래가 길게 늘어졌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모습은 ‘생명의 비단실’ 같았다. 잘 띄워진 청국장을 절구에 넣고 찧는 일은 우리 남매의 몫이었다.
“너무 곱지 않게, 콩알이 듬성듬성 살아있게 찧어야 해” 어머니의 당부는 들은 척도 않고 우리는 절구질을 하다 밖으로 튀어나온 고소한 콩을 홀린 듯 주워 먹곤 했다. “이렇게 진이 잘 피어야 맛이 달아”하시며, 거기에 소금, 고춧가루를 섞어 거칠고 투박한 청국장을 빚어내셨다.
푹 익은 콩 사이사이에 잘 마른 볏짚을 꽂아 넣으면 볏짚 속에 숨어 있던 보이지 않는 균이 콩의 품으로 파고들어 ‘진’을 만들어 낸다. Adobe Stock
함경도에서는 청국장을 ‘담북장’이라 불렀는데, 그곳의 거친 풍토에서 자란 콩 음식이 발달했다. 겨울이 길고 추운 지역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된장 대신 2~3일이면 뚝딱 만들어 내는 청국장은 요긴한 단백질원이었다. 또한 회령은 국경지대로서 과거 여진족 등 북방 유목 민족과 교류가 잦았던 곳이다. 말안장 밑에 콩을 넣어 말의 체온으로 발효시켜 먹었다던 그들의 지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의 청국장은 무와 고춧가루를 쓰는 법이 남 달았다. 먼저 기름기 있는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뜨거운 불에 살짝 볶아 기름을 낸 후, 고춧가루를 한 큰 술 넣어 함께 볶으면 고추기름이 돈다. 여기에 무를 얇게 나박 썰어 듬뿍 넣고, 쌀뜨물을 붓는다. 무가 투명하게 익을 때까지 푹 끓이다가, 무에서 단맛이 우러나면 청국장을 넣는다. 너무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날 수 있으므로 마지막에 넣어 한소끔 만 끓여 낸다. 어슷 썰기를 한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부족한 간은 소금이나 간장으로 맞췄다.
1970년대만 해도 달걀을 짚으로 묶어 팔았는데, 그 달걀꾸러미 짚을 버리지 않고 잘 씻어 햇볕에 말렸다가 청국장 만드는 데 사용했다. Adobe Stock
칼칼하게 고춧가루를 넉넉히 써서 붉은빛이 돌았고 콩의 텁텁함을 무의 시원함이 잡아주어 뒷맛이 깔끔한 것이 어머니만의 비법이었다.
이어령 교수는 청국장의 고약한 냄새와 구수한 맛을 가리켜 ‘어울림의 문화’라 했다.
"청국장의 냄새는 코를 찌르지만, 그 맛은 혀를 감싼다. 겉으로 드러나는 거친 냄새(개성)를 참고 그 안의 깊은 맛(본질)을 찾아내는 과정은 곧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한국인의 심성과 닮았다."
이어령은 발효를 ‘죽음 너머의 재탄생’이라 했다. 서양의 조리법은 불을 이용해 식재료를 익히지만, 한국의 삭힘은 ‘시간의 불’로 생명을 새로 살려 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은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슬픔의 발효’다. 생콩의 비린내가 구수한 청국장으로 변하듯, 삶의 고통을 속으로 삭여 웃음으로 나타내는 그 마음이 우리 음식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 토론토에서 ‘어머니의 청국장’ 맛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지 모른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청국장 끓이는 비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인지, 아내의 청국장 솜씨도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내가 청국장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어느 지인께서 청국장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곳을 알려 주었다. 광역 토론토 밀턴(Mlton)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작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대량 생산을 하는 곳이 아니어서 몇 번의 통화 후, 청국장을 구입해 먹었는데 내 입맛에 딱 맞았다.
글쎄? 아마도 내가 찾은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지 싶다. 썩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생명을 피워 내는 콩알처럼, 어머니는 당신의 한(恨)을 삭여 자식들의 청국장을 끓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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