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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만 5만명 짐 쌌다

화이트칼라 일자리 지우는 ‘AI 워싱’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18 2026 11:28 AM

감원 앞다투는 글로벌 빅테크 AI업무 도입으로 5년 차도 위기감 AI로 인한 해고 건수 2년새 12배↑ ​​​​​​​직원들 이직·창업 등 ‘플랜B’ 모색


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한 카페. 20·30대 테크기업 엔지니어들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플랜B’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이직이나 창업 구상을 하는 것이다. 한 빅테크 기업 개발자 A씨는 “불과 3개월 전과 지금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며 “업무 프로세스에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도입되면서 생긴 변화”라고 말했다.

 

69a65ba0-5c87-464f-9a4b-e03b0c369598.jpg지난달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 내부. 테크 기업 직원으로 추정되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실리콘밸리=박지연 특파원

 

다른 빅테크 기업에 다니는 개발자 B씨는 “기존엔 신입만 AI가 대체했는데 이제 5년 차인 나도 위협을 느낀다”며 “현재 인력의 절반으로도 돌아갈 듯한 분위기라 더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인 이날도 일하고 왔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의 공기가 달라졌다. AI는 더 이상 업무를 돕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화이트칼라 노동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실제 AI에 대체당한 인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인재유치 행사에서 만난 30대 인도 청년도 그중 하나다. 올 초까지만 해도 유망 AI 보안 플랫폼 기업에서 근무했던 그를 친구들은 “우리 중 가장 경력이 화려한 ‘고급 인재’”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링크드인을 통해 “AI한테 일자리를 뺏겼다. 갑작스럽게 직업을 잃게 됐다”며 기자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직의사를 밝히는 중이라고 말했다.
 


AI로 인한 고용시장 지각변동
 

3c8002c5-b840-4591-839b-8c88b755b2c4.jpg2015~2025년 AI 관련 해고 발표 추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 제공(2026년 챌린저 리포트)

 

AI로 인한 고용 시장의 지각변동은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고용 컨설팅 기업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 Christmas·챌린저)'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AI를 이유로 발표된 해고 건수는 5만 건이 넘는다. 2년 전에 비해 12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투어 ‘AI 전환’을 내걸고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가을 발표한 1만4,000명 감원에 더해, 최근 1만6,000명의 사무직 인력을 추가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생성형 AI와 에이전트 도입이 업무 방식을 바꿀 것”이라며 “향후 몇 년 내에 전체 기업 인력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핀터레스트는 최근 전체 인력의 약 15%를 감축하며 그 이유로 ‘AI 중심 자원 재배분’을 꼽았다. HP의 CEO 엔리케 로레스 역시 AI를 기업 전반에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향후 몇 년간 최대 6,000명을 감원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투자자들에게 공언했다. 세일즈포스, JP모건 체이스 등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 또한 자사 내 화이트칼라 직무 상당수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AI 핑계론: 기업들은 왜 AI를 들먹이는가"
 

26407f3c-8ea9-4216-b8ec-e9767a3507ea.png지난달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구글 오피스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박지연 특파원

 

하지만 이 같은 대규모 해고의 이면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숨어 있다. 우선 팬데믹 기간의 과잉 채용에 대한 구조조정이다.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은 2022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70만 명 이상의 인력을 감축했는데, 이는 대부분 코로나19 당시 급격히 늘린 인력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AI가 업무를 대체하기도 전에 기업들은 ‘AI가 곧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감원을 단행할 좋은 핑계가 되는 셈이다. 이를 'AI 워싱(AI-washing)'이라 부른다. 환경주의인 척하는 ‘그린워싱’이나 윤리 경영으로 위장하는 ‘에틱스 워싱’처럼 대중을 현혹하는 마케팅 관행에 빗댄 표현이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올해 1월 글로벌 경영진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가 AI의 ‘잠재적 기대치(anticipation)’ 때문에 이미 인력을 감축했다. 응답자 가운데 AI 기술이 업무를 실제로 대체할 수 있어서 채용을 줄이거나 해고한 경우는 단 2%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98%의 기업은 AI의 실제 생산성 제고 효과가 아니라 막연한 잠재력만을 근거로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이는 투자자들에게 긍정적 신호로도 작용한다. AI와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몰리 킨더 선임 연구원은 이러한 형태의 선제적 해고가 경영진으로 하여금 시장에 일종의 신호를 보낼 수 있게 한다고 분석했다. 킨더 연구원은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최첨단 기업이며, AI를 도입했고, 비용 절감 방안까지 찾아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고백보다 투자자들에게 훨씬 매력적인 메시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AI 탓’은 정치적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을 해고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기술 혁신인 AI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게 기술업계의 시각이다. 시장 조사기관 포레스터는 “AI 관련 해고를 발표하는 많은 기업이 정작 해당 역할을 대신할 성숙한 AI 애플리케이션조차 갖추지 못했다”며, 이는 재무적 목적의 감원을 미래 지향적인 AI 도입으로 포장하는 전형적인 AI 워싱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도 예외 아니다: “실직보다 무서운 ‘채용 실종’”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제적 감원 전략이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토머스 대븐포트 MIT 디지털 경제 연구소의 연구원은 HBR 기고문에서 “장기적 기대에 기반해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은 직원들의 냉소를 부르고 AI 기술에 대한 거부감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급하게 인력을 줄였다가 AI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기업들이 다시 급하게 인력을 재고용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처럼 해고가 쉽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은 일어나고 있다. 다만 주로 해고보다 신입 채용을 안 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이어서, 청년층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권오현 국가AI전략위원회 AI 민주주의 분과위원(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대표)은 사견임을 전제로 IT업계에서 개발 비용을 줄여 재무적 성과를 내는 기회로 보는 시각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데이터를 보더라도 청년층에서 기술 관련 채용이 마이너스로 바뀌고 있다. 실직 이전에 채용 자체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숙련 청년에 대한 채용은 줄이고, 기존 업무에 대해서는 자동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려는 막연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인력을 대체하는 AI 업무 자동화를 제공하는 컨설팅 업체도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워싱으로 대규모 감축을 단행한 뒤 2, 3년 후 기대만큼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지 못하면 다시 인력을 뽑아야 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동경제학의 권위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MIT 경제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그저 그런 자동화(so-so automation)’로 규정하며 강한 우려를 표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결국 미숙련 노동자만 늘어나고 숙련된 노동자는 줄어들며, 산업 경쟁력 자체가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동화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채용 자체를 줄이고 실직을 늘리는 상황으로 이어져 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가 아닌 ‘보완’: 월마트가 보여준 플랜C

전문가들은 이제 ‘기술이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분법적 전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I가 인간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에 집중하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월마트 사례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감원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아마존과 달리, 월마트는 AI 도입을 통해 기존 노동자의 업무 질을 높이는 방향을 택했다. 대표적으로 계산원들이 AI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 분석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권 위원은 “AI와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아제모을루 교수가 강조하듯 자동화를 도입하더라도 노동을 줄이지 않는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AI 도입을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박지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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