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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주간한국

차창에 새겨진 깊숙한 풍경

그리고 ‘맛있는 매력’ 한 꼬집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03 2026 11:09 AM

스위스 당일치기 기차여행-로잔


스위스 동부 여행의 거점 도시를 취리히, 중부 여행의 거점 도시를 베른 혹은 루체른이라 한다면 서부 여행의 거점 도시는 보(Vaud)주의 주도 로잔이다. 남쪽으로는 레만(제네바) 호수를 접하고 동쪽으로는 알프스 산맥과 철도로 이어진다. 프랑스어 문화권 스위스 주요 관광지와 철도로 빠짐없이 이어져 있어 로잔을 중심으로 자연, 중세도시, 와인 등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여행 동선을 기획할 수 있다.
 


알프스에 둘러싸여 스키, 설상 트레킹
 

a1bcd83c-4de3-4208-b0fb-b3a5fdb6221c.jpg스위스 보주 로잔역으로 향하는 기차 창밖으로 에이글 성이 보인다.

 

2ee3fbe2-75e5-4c8e-9924-1c75594155ab.jpg스위스 보주 로잔 시내 건물 뒤로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 산맥이 보인다.

 

로잔 인근에는 알프스 산맥의 주요 봉우리 24곳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 명소가 있다. 그슈타트(Gstaad)의 글래시어3000, 이름 그대로 해발 3,000m에 마련된 설상 휴양지다. 해발 1,500m 베이스캠프에서 대형 케이블카만 두 번 나눠 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알프스가 펼쳐진다. 직선거리로 50㎞ 이상 떨어진 마테호른도 선명한다. 현지에서는 스키장으로 유명하다.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만년설 위를 내려오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스위스인의 특권이다.

스키를 타지 않아도 즐길거리는 충분하다. 만년설을 도보로 탐험할 수 있도록 설상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 있다. 리프트를 타고 출발 지점으로 이동해 마테호른을 향해 걷는다. 같은 코스를 개 썰매로 탐험할 수도 있다. ‘피크 워크 바이 티쏘’도 여행객들이 글래시어3000을 찾는 이유다. 알프스 봉우리 두 곳을 잇는 107m 길이의 도보 현수교, 일종의 출렁다리다. ‘출렁다리를 놓을 거면 이 정도 경관은 돼야 한다’라는 듯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하얗고 푸르른 비경이 시야에 몰아친다.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사용되는 건물에는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도 입점해 있는데, 벽면이 통창으로 돼 있어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알프스 만년설에 둘러싸여 식사를 즐길 귀한 기회이니 한 끼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65aebe49-e18b-4993-a782-2e9c540a3525.jpg스위스 그슈타트 글래시어3000에서 바라본 마테호른(사진 가운데 쌍봉 중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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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그슈타트 글래시어3000 피크 워크 바이 티쏘.

 

로잔에서 글래시어3000까지 가는 방법은 여럿이지만, 몽트뢰에서 출발하는 ‘골든패스’ 열차를 권한다.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열차 중 하나인 ‘빙하특급’과 같은 파노라믹 열차다. 제네바 호수부터 베르너 오버란트까지 달리면서 스위스의 목장과 산악 지형을 끊임없이 지난다. 차창이 넓고 시원하게 뚫린 덕에 답답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다. 구불구불한 산길로 난 철로를 천천히 오르며 작은 마을까지 순회해 스위스의 목가적인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7288bc5f-9758-4b41-9dfa-6627681156d4.jpg스위스 골든패스 벨에포크 열차 창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1ca8c8d3-3a70-4d2c-918a-33603ad2e067.jpg스위스 골든패스 벨에포크 열차 내부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오리엔트 특급에서 영감을 받은 ‘벨에포크’ 열차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금상첨화. 골든패스 벨에포크 열차는 일반 골든패스 열차와 같은 경로를 운행하고 추가 요금도 없지만, 호화로운 특별 디자인으로 꾸며졌다. 고급스러운 목재 위주 객실은 시간을 거슬러 벨에포크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에도 포함된 노선이라 추가 요금 없이 탑승할 수 있다. 벨에포크 디자인의 정수는 1등 객실에 응축돼 있으니 가능하면 1등석 이용권을 구매하는 편이 좋다.
 


스위스 3대 치즈 '그뤼에르 치즈'의 고장
 

5a685bfd-1db4-4174-8b81-7baf616f39e6.jpg스위스 보주 그뤼에르 성 내부 예술의 방. 이 방에서 예술인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7d396d0c-909e-4aa9-a88d-df273b6650d4.jpg그뤼에르 성의 안뜰은 군사 요새 시절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국인들은 흔히 ‘스위스 치즈’ 하면 구멍이 송송 뚫린 에멘탈 치즈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보다 치즈를 많이 섭취하는 서양에서는 그뤼에르 치즈의 위상도 이에 못지않다. 두 치즈와 아펜젤러 치즈까지가 흔히 ‘스위스 치즈’로 지칭된다. 로잔에서 기차로 1시간여 거리에 그뤼에르 치즈가 만들어지는 그뤼에르가 있다. 다사다난한 역사를 지닌 그뤼에르 성 아래로 아름다운 중세 마을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뤼에르 성은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일대를 다스린 백작 가문의 본성이다. 초기엔 전형적인 군사 요새로 지어졌다. 널찍한 안뜰과 망루 구조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15세기에 대대적인 증축을 거치며 현재의 외형을 갖추게 됐지만, 증축 여파로 가문이 파산하며 성이 통째로 지방 정부에 넘어갔다. 200여 년간 지방 행정관 관저로 사용된 후 다시 민간에 매각돼 부호 가문의 여름별장이 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지방 정부가 재매입해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손이 바뀔 때마다 소유주의 취향과 목적에 맞춰 내외부가 바뀌면서 성에는 공간마다 다른 역사의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등장한 프랑스식 정원 둘레에 13세기 중세 군사식 담장이 둘러쳐 있다. 19세기 부호의 별장으로 이용되던 시기 성에서 열렸던 예술 모임의 결과로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그린 벽화가 남아 있다. 화려한 벽화가 잔뜩 그려진 연회장 나무 벽면 아래엔 그 전에 그려진 다른 벽화가 감춰져 있다. 중세의 투박함과 르네상스 및 근대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성이다.

 

362200fe-def3-434c-904f-793e984b9802.jpg그뤼에르 성 예술의 방 내부 벽면에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그린 벽화.

 

99e8ab7c-a5bb-485c-b99c-a6dc1e296499.jpg보주 그뤼에르 마을 거리.

 

성이 굽어보는 그뤼에르 마을은 주 도로 양변에 늘어선 건물 몇 채가 전부일 정도로 작고 소박하다. 작은 규모의 음식점과 숙박업체가 대부분이나 ‘에일리언의 아버지’로 유명한 H. R. 기거 박물관이 마을에 있다. 스위스 쿠어 태생 화가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1979)에서 외계 괴물을 디자인한 기거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공포를 형상화한 그로테스크한 작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기거는 생전 그뤼에르 마을을 좋아해 박물관 입지를 직접 정했고 본인 묘지도 이 마을에 마련했다.

 

c06618e7-83c3-479b-831a-490a2e34e54d.jpg보주 그뤼에르 메종 드 그뤼에르 목장 치즈 숙성고.

 

그뤼에르역 바로 앞에는 그뤼에르 치즈를 만드는 메종 드 그뤼에르 목장이 있다. 그뤼에르 치즈를 만드는 목장 중 내부 관람이 가능한 가장 큰 목장이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고 대중교통 접근성도 뛰어나다. 입장권 대신 치즈 세 조각이 들어 있는 ‘치즈 티켓’을 주는데, 조각마다 숙성 기간이 달라 본인의 치즈 취향을 알아볼 수 있다.
 


'스위스 고딕'의 걸작 로잔 대성당, 유네스코 세계유산 와인밭
 

8a7e8857-10b0-4e1c-884e-c9253f211fe6.jpg보주 로잔 시내의 노트르담 대성당.

 

e9d55e6e-8cbe-427e-9df0-2fdcfd1d8744.jpg13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온 스테인드 글라스. 현재는 보수 중이라 일부만 볼 수 있다.

 

서부 여행의 거점 로잔도 외관이 빼어난 도시다. 청명한 제네바 호수와 옛스러운 건물들,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이 한 폭에 어우러진다.

도시 꼭대기 노트르담 대성당은 스위스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이다. 1170년 착공해 1275년 완공, 건축 기간만 100년이 넘게 소요됐다. 완공 시점부터 따져도 75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다. 특히 남쪽 벽면의 스테인드 글라스 장미창은 준공 당시 그대로다. 프랑스의 유리 명장 피에르 다라스가 만들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여파로 천주교 성당에서 개신교 교회로 바뀌며 주요 유물이 대거 훼손됐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만큼은 화를 피했다. 정문의 조각 등에도 부분적으로나마 종교개혁 이전의 화려한 도색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성당의 초병(게에·Guet)도 성당 건물 못지않은 명물이다. 1405년 화재로부터 성당을 지킨 초대 초병의 공로를 기려 제도화한 보직이다.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첨탑에서 도시를 감시하며 매 시간마다 육성으로 시간을 알린다. 본래의 목적인 화재 탐지는 기술 발전으로 유명무실해졌지만 지역 주민들은 일관된 반대로 모든 폐지 시도를 무마했고 덕분에 수백 년간 전통이 이어졌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도 현재까지 전통 초병제도를 운영하는 도시는 일곱 군데뿐이라고. 성당과 함께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생메르(St. Marie) 성은 현재 주 정부 청사로 쓰인다.

시내에서 나와 호숫가로 이동하면 올림픽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위치한 도시인 만큼 수많은 올림픽 유물이 전시돼 있다. 기억에 남는 경기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 준결승 당시 우리 국가대표 안산-김제덕 조의 '로빈후드 화살' 한 쌍도 있다. 김제덕이 10점 과녁에 명중시킨 화살과 그 화살을 맞힌 안산의 화살이다. 인근 선착장에서 제네바 호수를 건너 시옹 성에 가는 배에 탑승할 수 있다.

 

171ffe07-d978-4cf5-8ad4-87f38df54206.jpg로잔 올림픽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안산과 김제덕의 화살.

 

로잔을 거점으로 기차 이동을 하다보면 유독 포도밭이 많은 점을 눈치채게 된다. 로잔 인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라보의 와인 테라스’ 지역이기 때문. 와인 농장 하면 떠오르는 드넓은 평원과 곧게 뻗은 포도나무는 이곳에 없다. 층층이 쌓인 계단 테라스가 마치 밭보다는 논을 보는 것 같다. 서부 지역에서 즐겨 마시는 화이트 와인 ‘샤슬라’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고. 가벼운 보디감과 향에 누구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와인이다.

 

1b457f09-c84d-40fe-a15e-3202149d8eb4.jpg보주 베이토 시옹 성.

 

95e6fdf8-29cd-4faf-91e0-f948a1eed721.jpg보주 라보 와인테라스. 아직 계절이 아니라 황량한 모습이다.

 

f7700b6e-f16f-4a06-a435-30e5ed3ab867.jpg보주 에이글 성.

 

조금 더 멀리 가면 에글레(Aigle) 성과 같은 ‘와인 성’도 간간이 보인다. 스위스 와인은 90% 이상 자국에서 소비돼 스위스 밖에서 맛보기 어렵다. 스위스 여행을 간다면 놓쳐서는 안 될 별미 중 별미라 할 수 있다.

로잔·그슈타트·그뤼에르·몽트뢰·에이글=글·사진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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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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