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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고경숙(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07 2026 11:06 AM

수필이 있는 뜨락(36)


평소 산책하던 걷기 적당한 위치에 있는 도서관으로 노트북과 노트, 한 권의 책과 안경 등을 챙겨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중간에 coffee shop 에 들러 커피와 빵을 챙긴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지만 그리 싫지 않은 상쾌한 날씨에 청명한 하늘과 투명한 햇빛은 덤으로 누리는 계절의 선물이다. 음악과 함께 늦가을의 단풍과 낙엽들이 흐드러진 길을 걷다 보니 몇 번의 가을이 내 앞에 있을지, 셀 수 없이 많이 보고 지나치던 길이며 주변의 풍경들이 갑자기 생경스러워져 셀폰의 카메라로 몇 장 담아본다. 카메라 속의 늦가을 단풍색은 약간 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바람과 햇빛 등 자연만이 빚을 수 있는 색으로 다가온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까만 청설모 한 쌍이 여유로운 가을 자락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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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왔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친다. 여전히 귀에서는 음악이 흐른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 삶의 갈피마다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때의 느낌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져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 이야기들을 글로 펼쳐 놓고 싶었다. 글로 풀어 가면서 그동안 가슴에 자리 잡았던 슬픔 때론 외로움 후회 등 온갖 내 삶에서 자리 잡고 있었던 감정들을 지금쯤은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그러나 내 인생이 썩 맘에 들지 않아서인지 마음을 들여다보는것이 생각보다 힘이 든다. 모든 인생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몇 가지는 걷어내고 싶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이유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님 변명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그 누군가에게 원망까지 필요하다. 물론 행복했던 기억으로 이만하면 괜찮았다 스스로 위안이라도 삼고 싶을지도 모른다.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되감기는 내 이야기들 속의 나를 만나고 나를 풀어놓기에 도서관이 어떨까 싶어 산책 겸 길을 나선 것이다.

젊은 날, 졸업을 앞둔 모든 것이 불투명했던 시절, 만추의 은행잎으로 푹신하게 깔린 본관을 지나 도서관을 찾은 어느 날, 약속 없는 주말의 한가함이 빌미였지만 뚜렷한 확신도 없이 미래로 내몰리는 듯한 불안감을 도서관 어느 구석에다 뿌려 놓고 온 기억이 있다. 여느 때와 다른 우울했던 감정도 있었겠지만 유독 그날은 주변의 풍경과 늦은 오후의 한가한 캠퍼스,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의 석양까지, 이 모든 것이 한 폭의 수채화같이 내 기억 속에서 그림으로 선명하다. 물론 그 그림 속의 난 내 청춘의 한 페이지였다.

지금은 모든 게 다 달라졌다. 그 불안하고 불확실했던 난 보통의 삶을 택해 결혼했고 자식을 셋 키웠으며 지금은 지구 반대편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사는 곳뿐이랴 불혹과 지천명을 훨씬 넘기고 그렇다고 아주 늙지도 않은 60대 후반을 지나고 있다. 그림 속의 청춘은 셀 수 없이 많은 페이지를 넘기고 어느새 인생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서관을 다시 찾아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땐 시간을 낭비했지만 지금은 시간을 줍기 위함이리라.

많은 젊음들이 자리 잡곤 있지만 한 자리를 차지한 내가 그리 무색하지 않게 연배가 있는 분들이 제법 눈에 띈다. 반갑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노스욕의 가을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흔적, 내 삶의 여정 그에 따른 나 자신의 변화 심지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 이런 모든 것들로 써 내려간 내 인생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들은 과연 몇 권쯤 될까. 때로는 지우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내용은 물론 후회와 변명으로 격정적으로 써 내려간 부분과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행복과 보람, 사랑했던 순간들로 내 인생의 책은 채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가족과 형제, 내 삶 곳곳마다 같이한 수없이 많은 친구들과 이웃들의 이야기들로 많은 부분 같이 했을 것이며 감동과 사랑 슬픔, 외로움의 모든 순간의 장소, 풍경, 아니 그 때의 호흡까지 다 기억하고 표현되어 있으리라.

가만히 이런 모든 걸 들여다보며 내 삶의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 보니 지나간 세월의 갈피마다 서 있는 내가 너무 그리워진다. 엄마도 그립고 언니도 그립고, 풋풋했던 내 청춘도 새댁 시절도, 아니 힘들었던 기억 속의 나조차도 너무 그립고 애틋하다.

힘들었다, 외로웠다, 사랑한다, 행복했다 이런 모든 감정으로 촘촘하게 엮어져 써 내려간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내 이야기하고 싶었고 글 쓰고 싶어 했음이리라. 이 그리움으로 가득 찬 지금, 내 인생이 많이 힘들었는지 아님 그마저도 진정 편안함이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인생 끝자락 어디쯤인 지금, 도서관에서 나를 풀어가면서 수고했다 다독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 내용도 채워가면서 내 인생을 저장해 둔 도서관에서 가끔씩 한 권씩 꺼내 그리움을 되새겨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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