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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나를 닮은 ‘동만의 극복기’

사이다 없어도 추앙받았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10 2026 12:37 PM

‘모자무싸’ 조용한 흥행


“성공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한 편만 했으면 좋겠어요. 무가치함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게.”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함께 꿈을 키웠던 ‘8인회’ 친구들. 20년이 지난 지금은 감독, 제작자, 프로듀서로 모두 영화판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딱 한 명 황동만(구교환)만 빼고. 시나리오 열네 편을 쓰고도 단 한 편의 영화도 찍지 못한 동만의 하루는 불안과의 사투 그 자체다. 친구들 사이에서 쉼 없이 떠들어대고,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도 꿈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는 그토록 갈구해온 ‘안온함’에 이를 수 있을까.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인간 심연의 불안과 결핍, 서로를 껴안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그려내며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청률은 2.9%(닐슨코리아)로 높지 않지만, 넷플릭스 ‘대한민국 톱10 시리즈’ 1위를 찍었다. “버릴 대사가 하나도 없다” “한 편씩 아껴서 꼭꼭 씹어 본다”는 마니아층의 간증도 잇따르고 있다.
 


"너만 못난 것 아니다"라는 위안
 

ab07c09d-8d69-4369-a43c-4d28af19bb6d.png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서로의 깊은 슬픔을 알아 본 은아(고윤정)와 동만(구교환)이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JTBC 제공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1, 2회가 유독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주인공 동만이 ‘비호감’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남 잘되는 것에 미쳐 죽고 남 안되는 것에 행복해 죽는” 동만은 8인회 멤버 경세(오정세)의 새 개봉 영화를 신랄하게 깎아내리다 주변을 얼어붙게 하고,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다면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고 소리치며 내리막길을 내달리다 대차게 구르는 등 진상짓 퍼레이드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만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의 요란한 방어기제가 조금씩 이해되면서 ‘나도 저럴 때가 없었나’ 돌아보게 된다. 작가와 감독의 의도대로다. 드라마를 연출한 차영훈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모자무싸는 동만이 최고의 흥행 감독이 되는 사이다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그저 오늘의 좌절, 실패, 부끄러움, 자괴감 이런 것이 당신에게만 있지 않다, 모두 그렇게 살고 있으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잘 버텨보라는 작은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성공하고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8인회 친구들도 동만을 통해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난 구석을 발견하고, ‘의절 1순위’인 그를 (잠깐 ‘출입금지’를 선포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끌어안으려 애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우리는 모두 다르고 사회적인 잣대와 기준에서 다수와 소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다양성과 포용, 존중이 있을 때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8인회 모임을 통해 잘 녹여낸 것 같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연대
 

e8201d51-401d-4e2d-86a3-0659645c5c2b.png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중 8인회 모임에서 새 영화를 개봉한 경세(오정세)와 동만(구교환)이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JTBC 제공

 

60fbeff9-0c9b-459b-9c02-edac30ee22fe.png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은아가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는 동만에게 할머니의 반찬을 건네는 장면. JTBC 제공

 

“편안함에 이르렀나”(나의 아저씨), “나를 추앙해요”(나의 해방일지) 등 수많은 명대사를 낳은 박해영 작가는 이번에도 회마다 가슴에 콕 박히는 명대사를 숨겨놨다. 동만이 “안 풀리는 놈답게 불행해하면서 찌그러져 있지, 왜 주제 파악 못 하나 싶지? 딱 너희들만큼 불행하고 딱 너희들만큼 행복해”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이나, 유년기 부모에게 방치됐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화 프로듀서 은아(고윤정)가 “나는 힘있는 엄마가 될 거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중심에 서 있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도 안심하게 해주는 그런 엄마”라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대목은 배우와 감독이 “대사 한마디, 지문 한 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던 이유를 가늠케 한다.

무엇보다 각자 깊은 상처와 어둠을 품고 있는 동만과 은아의 비범한 연대가 따뜻한 울림을 준다. 은아는 모두가 무시하는 동만의 가치를 알아보고, 옆에서 응원하며 그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준다. 동만은 유기 공포에 시달리는 은아를 안심시키고, 그가 홀로 싸워온 알 수 없는 감정이 한 번도 뱉지 못한 “도와달라”는 호소였음을 알아차린다. 공 평론가는 “상대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온전히 추앙해주는 관계 속에서 살리고 또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라며 “몰입하기 쉽게 남녀 관계로 설정했지만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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