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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오피니언

<대한일보>와 ‘청산에 살리라’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28 2026 12:22 PM


1960년, 현제명(서울대학교 음대학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김연준 (한양대학교 총장)에게 “평화신문을 경영하는 홍찬 씨가 파산 지경인데, 그 신문을 인수해 보면 어떨까요?”라는 제의를 한다. 이전부터 신문사를 통한 사회적 계도에 관심이 있었던 김총장은 이 제의를 수락해 인수 이듬해인 1961년, 제호를 <대한일보>로 바꾸며 재창간을 한다.

재창간 후 10여 년 남짓이 지난 1973년 5월, 갑자기 <대한일보>에 비극적인 일이 생긴다. 그 사건의 중심에 ‘윤필용 필화 사건’이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필용 장군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권력의 핵심이었다. 한편, 한양대 총장이자 대한일보 사장이었던 김연준 역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나 식사를 하고, 교류하던 친밀한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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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일보> 사장과 한양대 총장이었던 김연준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작곡가였다. 그는 1,600여 곡을 책으로 묶어 냈고, 미 발표된 곡을 합치면 3,000여 곡을 만들었다. Chat GPT 생성 이미지

 

윤필용 사령관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술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노쇠하셨으니 물러나시게 하고, 후계자를 키워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 귀에 들어간다. 정권은 이를 역모죄에 준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고, 대대적인 숙청의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군부가 발칵 뒤집히며 윤필용과 가깝던 인물들에 대한 대대적인 뒷조사가 시작된다. 이때 ‘김연준도 윤필용과 친하다’는 이유로 정권의 표적이 되었다. 정보기관은 김연준을 처벌하기 위해 먼지떨이식 수사를 벌였고, 결국 찾아낸 죄목은 다소 황당한 “수재의연금 170만 원 횡령’ 혐의였다. 신문사가 수재민들을 위해 모금한 의연금 중 일부를 유용했다는 꼬투리를 잡아 그를 구속 수감했다.

사장이 구속되자, “폐간계만 내면 김사장도 풀려나고 사건도 무마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학교도 빼앗긴다”는 수사 기관의 으름장에 직원들은 김연준 사장이 구속된 지, 13일 만에 자진 폐간 형식으로 <대한일보>의 문을 닫는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비판적인 언론의 입을 막고 신문사의 수를 줄이려는 언론 통제 정책을 구상 중이었다. 김 사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끈질긴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1974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아낸다. 허탈하고 분노했지만,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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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일보
빌딩은 1966년 한양대학교 김연준 총장이 준공하였고, <대한일보>는 1973년에 폐간된다. Chat GPT 생성 이미지

 

그러나 그가 구치소의 차가운 시멘트 벽에 갇혀 지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절망의 공간에서 ‘초록빛 물든 산허리’를 그리며 시를 쓰고 선율을 만들었다. 김연준을 가둔 구치소의 벽은 답답한 절망이었으나, 그의 영혼이 날아간 곳은 사방이 탁 트인 푸른 수풀이었다. 세상의 가장 어두운 음지에서 가장 찬란한 푸른 양지를 꿈꾼 것이다.

그 고독한 감옥 안에서 ‘청산에 살리라’라는 가곡을 작곡하고 노랫말을 붙였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차가운 공간에서 변하는 인간 세상과 변하지 않는 자연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마다의 마음속에 품고 사는 초록빛 ‘청산’은 어디인가 싶었다.

김연준의 회고다. “감옥에서 고생을 할 때 아름다운 멜로디가 생겼습니다. 그 멜로디가 떠올랐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런 멜로디가 생기면 작곡하는 사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가사와 악상이 떠오르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손톱으로 숫자 등 암호를 벽에 적으며 암송해 두었다가, 풀려나기 얼마 전 간신히 얻은 종이와 펜으로 벽의 기록을 옮겨 적었다고 한다.

옥고 속에서 탄생한 가곡 ‘청산에 살리라’는 시련과 영혼의 고독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발표되자마자 국민의 거대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대학 총장이고 신문사 사장이었던 그가, 어떻게 이토록 깊이 있는 작곡을 할 수 있었을까?

김연준의 음악적 뿌리는 신앙과 어머니였다. 1914년 함경북도 명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찬송가와 서양 음악을 접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찬송가를 불러주며 음악적 감수성을 심어 주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린도 배우고 함북 경성고보에 올라가서도 바이올린을 계속하게 된다.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한 후, 그의 음악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학교 현악단에서 독창자이자 첼로 연주자로 활약하며 당대 일류의 음악가인 현제명, 박태준 등과 교류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해갔다. 이들의 지도 아래 음악의 기초와 화성학을 흡수하며 음악적 자양분을 다진다.

연희전문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려다,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1939년, 그는 25세의 나이에 “기술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며 <동아공학원(현 한양대학교)>을 설립한다.

이후 학교를 키워내고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한동안 음악 활동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대학 내에 음악대학을 설립하여 음악 인재 양성을 힘썼고, 이것이 훗날 그가 음악으로 복기하는 밑거름이 된다.

김연준의 본격적인 작곡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쉰이 넘은 1970년대부터였다. 젊은 시절 가슴에 묻었던 음악에 대한 열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은 옥고를 치르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한번 불붙은 창작열은 식은 줄 몰랐고 이후 1,600여 작곡을 책으로 묶어냈고, 미 발표곡을 합치면 3,000여 곡을 만들었다. 대표 곡으로는 ‘청산에 살리라’ 외에 ‘비가(悲歌), ‘제비’, ‘작은 아씨의 꿈’, ‘눈’ ‘폐원’ 등이 있다.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책상에는 늘 악보와 펜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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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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