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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과 미안함 사이에서
김영수(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04 2026 11:26 AM
수필이 있는 뜨락(40)
여행길에서는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가까워진다. 오늘은 집합 장소에서 승차장까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다양한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겨운 분위기였다. 국적은 서로 달라도, 같은 길을 걷는다는 연대감 때문이라 믿었다. 하지만 승차장에 도착해 우리가 타고갈 소형 버스 앞에 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더위에 지친 탓인지 한 줄이던 것이 슬그머니 두 줄로 엉키면서 질서가 무너졌고, 나는 얼결에 뒤로 밀려났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승차는 바로 내 앞에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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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탈 수 있겠지 했는데, 가이드가 와서 뒤편 버스를 가리키며 줄을 돌려세웠다. 줄이 흩어지더니 새로운 줄이 만들어졌다.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 먼저 서 있던 사람들이 뒤로 밀리는 모순, 나를 보호하리라 믿던 질서가 나를 밀어냈다는 생각에 불편했다. 이글거리는 해는 인간의 허술한 질서를 조롱하는 듯 열기를 더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에 젖은 몸은 끈적거렸다. 누군가 불만을 터뜨릴 법한데, 다들 천연덕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만 예민한 걸까.
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남편과 눈빛이 마주쳤다. ‘그 마음 알아’, 라는 듯했다. 그 작은 표정 하나로, 마음이 누그러지고 더위도 주춤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탈 수 있으리라. 그늘 한 점 없는 열기에도, 냉방 된 버스에 곧 탄다고 생각하니 참을 만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버스 입구에 여성 노인 둘이 서 있었다. 혼자 걷기도 어려울 만큼 몸집이 큰 노인과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었다. 여든은 훌쩍 넘어 보였는데, 친구 사이라고 했다. 저 나이에도 손잡고 여행 다닐 친구가 있다니, 부러웠다. 작은 노인이 먼저 버스에 올랐다. 뒤이어 덩치 큰 노인이 계단에 한 발을 걸치는 순간, 균형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I’m OK.” 하더니, 일어서는 데만 십여 분이 걸렸다. 버스 계단 하나 오르기도 버거운 몸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듯 주어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눈물겹게 어려울 수도 있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정말 괜찮을까.
태양은 인내심을 시험하며 불덩이처럼 타올랐고, 노인은 실패를 거듭했다. 그때였다. 덩치만 봐도 든든해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이 다가왔다. 서둘러 일으킬 줄 알았는데, 먼저 노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몸에 손을 대도 괜찮겠냐고. 이 상황에 그런 허락을 구하다니. 놀랍고, 낯설었다. 자기 할머니 같은 노인이 주저앉아 일어서질 못하는데, 나의 고국이었다면 일으키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나갔으리라. 내게 이건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이민자로서는 결코 남의 일일 수 없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두꺼운 유리벽이 생긴 것 같았다. 나를 영원히 ‘낯선 자’로 남아 있게 할 투명한 유리벽이.
가이드가 야트막한 받침대를 구해왔다. 한참을 밀고 당긴 끝에 마침내 그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는 가늘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함께 견딘 시간에 대한 위로와 안도의 소리였으리라.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괜찮은지 연신 물었고, 노인은 고맙다고 짧게 답했다. 간결하고도 담백한 대꾸가 나는 왠지 서운했다. 그게 왜 서운했을까.
관광하는 내내 노인은 즐거웠고, 그 감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나였다면,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했을 텐데. 여행을 즐기기는커녕, 잔뜩 위축된 채 겉돌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일인데도, 그녀에게는 고마운 일이었고 내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그건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방식의 문제일 거였다. 미안함은 실수와 잘못을 전제로 하지만, 때로는 고마움과 경계를 가르기 어려운 감정이기도 하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버스에 함께 탔다. 미안함이 우세했다면 우울한 그림자가 남았으리라. 하지만 고마워함으로써 똑같은 일인데도 밝은 웃음이 남았다. 그녀의 짧은 대꾸에 대한 나의 서운함도 웃음 한 자락을 물고 날아갔다. 어쩌면 나는, 고마워할 일을 미안해하며 혼자 힘들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노인은 평소에도 그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먼지 털 듯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면, 무거운 삶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사회적 약자로서 타인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담담하게 받았을 뿐이다. 누구든 그녀보다 먼저 버스에 탈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모두가 뙤약볕 아래서 묵묵히 기다렸다. 타인의 뭇 눈길이 주목하는 가운데, 몇 번이나 주저앉으면서도 끝내 일어서던 노인의 의연함에 마음이 저릿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몫이라 여기던 미안함이 사라진 자리에, 고마움이라는 꽃이 피어 있었다.
태양이 자세를 낮추며 뜨겁던 열기를 슬며시 거두기 시작했다. 노인은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내 안의 오래된 편견 하나를 멋지게 허물었다.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 사이에서, 달라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차창 너머로, 노을빛에 물든 젊은 노인이 보였다. 고마워할 일에 미안해하지 않는, 내가 되고 싶어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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