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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슬픈 눈동자에 비친 철창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카메라의 힘’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12 2026 12:14 PM
동물 해방을 위한 연대
2000년. 동물원에 갔다가 우연히 한 북극곰의 이상행동을 보았다. 쉬지 않고 머리를 흔드는 북극곰은 분명,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북극곰을 둘러싼 많은 관람객들은 "곰이 춤춘다"며 즐거워했다. 북극에서, 아프리카 밀림에서, 초원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붙잡혀 낯선 곳으로 이송돼 평생을 감금당한 채 인간의 구경거리가 된 북극곰, 고릴라, 코끼리, 오랑우탄... 이들이 만약 1인 시위를 한다면 어떤 피켓을 들까? 나는 비인간 동물들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마이너리티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감금되고, 서식지가 파괴되고, 멸종되고, 실험실에서 고통받고, 물건처럼 팔리고, 아프면 버림받거나 살처분되는 존재들.

영화 '작별' 속 한 호랑이가 동물원 사육장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철창 사이로 얼굴을 보이고 있다. 배급사 '시네마달' 제공
나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지갑은 가볍고 촬영장비는 무거웠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이번 생애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을 드디어 찾은 기분이었다.
철창에 갇힌 동물들과 인터뷰를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눈동자와 몸짓과 소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외롭고 답답하다고,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친구들이 그립다고...
동물원을 맴돌던 어느 날, 운명처럼 아기호랑이 크레인을 만났다. 크레인은 몸이 약해 사육사들의 손에 자랐다. 그리고 야생성을 지우는 훈련을 받았다. 어두컴컴한 실내 사육장에 홀로 갇힌 크레인은 하루종일 목이 쉬도록 울고 또 울었다.
크레인이 있는 실내 사육장 바로 옆에는 크레인의 엄마 호랑이, 선아가 있었다. 선아는 죽어가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던 선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선아와 내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선아의 눈동자는 깊고 어두운 호수 같았다. 선아의 눈동자 안에 검은 쇠창살과 카메라를 든 나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선아의 슬픈 눈동자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선아와 크레인에게 약속했다. '너희들의 이야기를 내가 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꼭 전할게. 내가 카메라를 들 힘이 있는 날까지, 너희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라고.

영화 '작별' 속 아기 호랑이 크레인이 동물원 사육장에서 목줄을 맨 채 감금에 길들여지는 훈련을 받고 있다. 배급사 '시네마달' 제공
'작별'을 만들었을 때, 한 선배 감독이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노동자, 농민 등 인간 약자들 문제도 아직 다 해결이 안 됐는데 동물들 이야기라니 한가한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존경하는 선배였지만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한 억압은 비인간 동물에 대한 억압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갑질' 없는 세상, 진보와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유독 비인간 동물에 대한 인간의 갑질에 대해서만큼은 침묵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그즈음,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앨리스 워커가 남긴 말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여성이 남성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흑인이 백인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도 인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작별'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고,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는 내 영화의 화두가 되었다. 이후, 자동차 바퀴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야생동물들의 이야기 '어느 날 그 길에서', 고기가 아닌 살아있는 돼지를 찾아 떠난 여정 '잡식가족의 딜레마',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 수라의 아름다움을 담은 '수라'와 곧 완성될 '하제'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뛰어다닌 지 올해로 25년째. 동물원, 중국의 사육곰 농장, 대형도로, 공장식 축산, 대규모 간척사업 현장, 그리고 군사기지로 철거된 마을... 돌이켜보니, 매순간 높은 벽을 넘으며 작업을 해 왔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벽, 그리고 폐쇄된 시설의 높고 두꺼운 벽들. 막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돌아선 적은 없었다. 늘 제작비가 부족해 전전긍긍하고, 몸도 마음도 힘들 때가 많지만, 25년 전 크레인과 했던 약속이 나를 흔들림없이 나아가게 했다. 무엇보다 영화의 힘, 예술의 힘을 믿었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해 본 적 없다. 힘든 길이었지만 이 길을 의심한 적 없고, 고독한 직업이었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영화 '가능주의자' 속 동물권 운동가들이 '우리 함께 살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블루닷필름 제공
그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를 위한 '동물원 법'이 제정됐고, 로드킬 문제가 널리 알려졌다. 공장식 축산의 현실이 알려지면서 비건 문화가 크게 커졌다. 십년 전 "비건이에요"라고 말하면 머리가 둘 달린 괴물처럼 봤다면 이제는 힙하고 핫한 트렌드가 되어 있다. '수라'를 본 관객들의 발걸음은 수라갯벌로, 또 법정으로 이어지며 수라갯벌을 지키는 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처음엔 혼자였는데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다.
7월 15일, 동물권 다큐멘터리 '가능주의자'가 개봉한다. 꾸준히 동물권 이슈를 기록해 온 박이윤정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연출작이다. 영화는 돌고래 해방부터 개 식용 종식까지, 불가능하다고 말해지던 일들을 하나씩 가능으로 바꿔온 다섯 여성의 치열한 동물 해방 운동을 담았다.
한국 최초로 돌고래 야생 방류를 이끌어낸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돌고래'를 비롯해, 녹색당·멸종반란 기록활동가 '차랑', 동물해방물결 대표 '지연', 시셰퍼드 활동가 '민선', 고려대학교 비거니즘 동아리 '뿌리:침' 창립 멤버 '혜수'를 통해, 2011년부터 2024년까지 13년간의 한국 동물권 운동을 보여준다.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 '돌고래'는 "제돌이 방류는 불가능하다고들 했지만 결국 가능해졌다. 그 이후에도 돌고래들이 계속 바다로 돌아갔고 정책과 법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가능주의자' 포스터. 블루닷필름 제공
동물해방물결 지연은 영화 속에서 "2018년부터 개 식용 금지법을 추진했지만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결국 법이 만들어졌다"며 사회를 변화시킨 시민들의 힘을 이야기한다. '뿌리:침' 혜수는 "처음 동아리를 만들 당시만 해도 비건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상하며, 비거니즘이 소수의 외로운 실천에서 어떻게 거대한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전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은 당연한 듯 보이는 많은 제도적, 문화적 변화들은 소수의 용감한 프런티어들의 "계란으로 바위치기"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다수의 억압과 멸시를 이겨내며, 시대를 탓하거나 가능성을 저울질하지 않고, 묵묵히 한발 한발 걸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왔다. 그 덕분에 흑인 노예들이 해방됐고,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됐으며, 마라톤에서 여성이 선수자격을 쟁취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더 이상 불법이 아니게 되었다.
'가능주의자'는 이 영화에 영감을 준 나희덕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불가능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수많은 '안 되는 이유들' 앞에서 움츠러들려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가능주의자가 되기로 선택한다. 동료들과 손잡고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없던 길이 만들어져 있고, 그 길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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