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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모두에게 돌진하라

‘연프’ 문법에 균열을 내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01 2026 01:55 PM

웨이브 ‘스탠바이미’


프로듀서의 입장이 되어 새로운 연애 리얼리티 쇼를 구상하면, 꽤 괜찮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도 새롭지 않다는 생각에 거듭 좌절하게 된다. 우리가 ‘연애 리얼리티’라 인식하는 방송들은 대부분 비슷한 절차를 따른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동안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남녀가 매일 밤 호감 있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서서히 마음을 드러내다 숙소를 나가기 전 ‘최종 선택’을 하는 구성이다. 이 틀 안에서 기획자가 새롭게 꾀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의 연애 리얼리티가 ‘모태 솔로’, ‘돌싱’, ‘50대’처럼 출연자의 조건을 좁혀 차별점을 만드는 것일 테다.

 

544f89bc-eb60-4f31-861a-967c097a0efc.jpg연애 예능 프로그램 '스탠바이미'. 웨이브 제공

 

지난 5년간 게이 연애 리얼리티 '남의 연애',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너의 연애'를 만들어 온 제작사 ‘디스플레이컴퍼니’가 지난달 공개한 바이섹슈얼 연애 리얼리티 '스탠바이미' 역시 출연자의 조건으로 변수를 만드는 장르의 관행을 따른다. ‘우리가 사랑할 모든 가능성’이라는 공식 슬로건처럼, 출연자들은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양성애자들이다. 공개 전부터 '스탠바이미'가 이목을 모은 이유에는, 기존 이성애 중심의 연애 리얼리티 시청자들 사이에서 ‘양성애’라는 성 지향성이 충격을 가하고 반전을 만드는 이야기의 도구로서 심심찮게 거론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탠바이미'는 이 일련의 기대처럼 양성애의 가능성을 서사의 도구로 이용하는 작품이 아니다.

출연자들은 숙소인 ‘빌리브(BI-LIVE)’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의 지향성을 숨기거나, 설명하지 않고 상대를 자유롭게 탐색한다. 문신한 사람에겐 끌리지 않는다는 승호는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든 자신이 끌리는 외형과 성향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출연자다. 반면 동성을 만날 때와 이성을 만날 때 자신의 태도가 다르다고 말하는 혜연은 양성애가 초월적 인류애와 동의어가 아님을 역설하는 존재다. 이들은 호감 있는 이성의 화장을 직접 고쳐주거나 관심 있는 동성과 같은 침대를 쓰는 등 기존 연애 리얼리티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서 서로를 알아가며 친밀함과 긴장감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균형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빌리브’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평화와 자유는 묘한 양면성을 가진다. 공간 안에서 양성애는 사랑의 기본값이기에 이곳에선 양성애자를 향한 차별적 시선과 편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겪는 억압이 사라진 이 안전한 공간은 출연자들을 건강한 사랑의 주체로 살아가게 만든다. 퀴어가 겪는 현실의 차별이 소거되며 이들의 사랑은 이성애자 연애 리얼리티의 사랑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다. 소수자를 둘러싼 편견과 싸우는 대신 온전히 상대에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는 의미 있는 시도라 말해도 좋겠지만, 이성애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감정에 온전히 집중하는 동안 퀴어는 바깥 세계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이중 관문을 거쳐야 하기에, 이를 상기한다면 '스탠바이미'가 취하는 문법은 구조적 차별을 외면하는 안이한 타협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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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예능 프로그램 '스탠바이미' 출연자들. 웨이브 제공

 

그러나 이 방송이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여겨지는 이유는, 출연자의 성 지향성이 기존 연애 리얼리티의 닫힌 문법을 끊임없이 건드리며 균열을 내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을 전제로 상대를 탐색하고 동성과 경쟁하는 기존의 작동 방식은, 동성과 이성 모두가 관계의 목적지로 열려 있는 '스탠바이미'의 개방성과 만나며 진부해진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오가는 관계의 긴장감이 그간 연애 예능을 지배해 온 이성애 중심의 구조를 허물고, 소수자의 존재 방식 자체가 다수의 문법으로 구성된 세계를 어떻게 돌파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출연자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이러한 구조적 전복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동력이 된다. 이들은 이성과 동성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열린 지향이 어떠한 서사를 만들어낼지 본인조차 예측하지 못한 채 상대에게 돌진한다. 누구에게나 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결국 누구에게든 자신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이 태도는 상대를 고르는 폭이 아닌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는 폭이 된다. '스탠바이미' 출연자 개개인이 품은 이 가능성은 그간의 연애 예능 서사를 이끌어온 이분법적 성 역할과 그 위에서 계산되던 ‘밀당’, 견제와 같은 문법을 깨부수며, 관계의 향방을 팽팽한 생동감으로 전환한다. 모든 타인에게 전면으로 돌진하는 이들의 능동성이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셈이다.

한 명을 두고 경쟁하다 도리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기막힌 전개를 기대한 이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으나, 그런 작위적 쾌감이 없더라도 '스탠바이미'는 연애 리얼리티의 한계와 성취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흥미로운 방송이다. 한정된 상황 속에서 연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강요하는 기성 연애 예능의 피로를 안고 있지만, 그 피로감이 ‘연애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성찰의 경험’임을 폭로하기에 우리는 그들을 보며 사랑을 다시 한번 정의할 기회를 갖는다. 사랑이란 자신에게서 눈을 떼는 일. 그리고 그 여백으로부터 다시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다. 여기서 시선이 옮겨가는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사랑할 모든 가능성’이라는 슬로건은 나라는 경계를 넘어 타인에게 다다르며 발생하는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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