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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이 된 사랑
김영수(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06 2026 11:44 AM
청동 조각상 앞에서 한 여인을 떠올린다. 당신 이름은 카미유 클로델. 많은 이들에게 로댕의 연인으로, 그의 뮤즈로 불리던 조각가다. 한때 예술계의 기대를 온몸에 받으며 질주하던 당신은, 이제 조각상 <중년> 속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남자를 향한 뜨겁고 비통했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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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에서 당신은 서 있는 로뎅의 발치에 무릎 꿇고 두 팔을 내밀고 있다. 애원인지 마지막 하소연인지, 마음을 붙잡는다. 남자는 당신을 외면하고 있지만, 손가락을 뒤로 뻗고 있다. 손끝에 닿을 듯 닿지 못하는 두 손의 거리는, 당신이 겪은 사랑을 말하는 듯하다. 로댕의 침통한 얼굴과 당신의 애절한 표정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단순한 사랑의 비극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당신이 짊어져야 했을 고뇌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뒤에서 로뎅을 품어 안고 서 있는 여인은 로즈다. 로댕의 아들을 낳아 키우며 그의 무명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순종하며 곁을 지켰다는 사람. 조각상 속에서 그녀는 남자의 등에 몸을 밀착한 채 그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있다. 깊게 패인 주름과 구부정한 어깨는 오랜 세월의 헌신을 말없이 보여준다. 로댕은 비통스러운 표정이고 늙수그레한 로즈는 지친 중년의 남자를 부드러운 숨결로 위무하는 얼굴이다.
‘로댕의’라는 수식어를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조각상을 통해 말한다. 예술에도 사랑에도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던 당신인데, 어떻게 눈빛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변했는지, 내 몸이 저릿하다. 로댕은 당신을 비운의 여인으로 만든 남자이지만, 동시에 당신이 기대고 싶던 유일한 존재다. 조각상 속의 그는 뒤에 서 있는 로즈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다. 당신의 젊은 손을 잡고 싶어도, 앞에서 끌어당기는 주름진 로즈의 손에 저항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리라. 누구라도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없다는 엄연한 질서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각에 능력을 인정받던 당신은 열아홉 살에 로댕의 작업실 문을 두드린다. 미모와 재능으로 눈부시던 당신을 본 순간, 로댕의 가슴에 불꽃이 일었고 당신들은 강렬한 사랑에 휩싸인다. 당시 로댕은 마흔셋, 예술계의 중견이자 생의 중년에 이른 남자다. 갓 피어난 젊은 당신과 로뎅 사이에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휘황한 사랑도 나이 들면 빛이 바랜다는데, 그의 중년은 결국 당신이 조각한 <중년>에서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당신은 로댕의 이중적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드라마 같은 삼각관계에서 로즈의 질투와 로댕의 우유부단함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명민한 당신이 모를 리 없었다. 로즈가 그의 뒤를 지키는 한, 당신에게 그 남자는 오를 수 없는 나무였다. 작품에만 몰입하던 당신과 달리, 그는 사교모임과 인맥에 더 관심을 쏟았다. 당신 작품이 주목받자 그의 미묘한 견제가 시작되었다. 애정이 식자, 사랑으로 빛나던 세월의 흔적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당신 삶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사랑과 분노를 창작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당신을 보며, 오래 전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준 글쓰기를 떠올렸다. 견고하던 일상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보이지 않던 균열이 몸과 마음을 흔들었다. 인간 관계에서였다. 속수무책으로 휘청거리던 시간.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바닥난 체력으로는 채 10분도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허나 그 10분이 여섯 번 모이면 한 시간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글다운 글을 쓰진 못했지만, 문학이라는 우산이 있어 쏟아지는 아픔과 고통의 빗줄기를 견딜 수 있었다. 상처를 글 속에 녹여내며 1년 남짓한 고통의 터널을 조금씩 벗어났다.
카미유, 당신은 어떤가. 불후의 걸작을 탄생시켰어도 로댕은 그 조각상이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여 명성에 흠집을 낸다고 격분했고, 작품을 매장하며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자기 명성과 당신과의 사랑을 저울에 올렸고, 저울은 당신의 예상을 깨고 반대편 쪽으로 기울었다. 자신의 존재가 예술계에서 지워지자 당신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 정신적 균형마저 잃고 말았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왔던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 그토록 냉혹한 허상이었는지, 보는 이의 가슴이 서늘하다.
눈물의 의미를 카타르시스와 동일시하는 나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던 한 여자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탓에, 당신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로댕과의 사랑에 제 몸마저 태웠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 품속 같던 로즈에게 돌아갔다. 예술을 포기할 수 없던 그에게는 야생마처럼 길들지 않는 당신의 사랑보다는, 변치 않는 헌신과 안정감으로 감싸주는 로즈의 사랑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조각상 <중년>은 그렇게 세 사람의 아픔을 가만히 품어 안으며 카미유라는 이름 아래 존재한다. 운명의 손에 고단한 생을 통째로 맡긴 로댕이라는 남자를 작품에 현현히 담아낸 당신은, 예술의 비극을 증언하며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후 정신병동에 버려진 채 차디찬 추억을 되새기며 30년을 외롭게 살다 생을 마감한 카미유. 당신은 알았을까. 현실에서는 생의 흔적조차 먼지처럼 흩어졌지만, 당신이 남긴 조각상 <중년>은 세기의 명작으로 살아 숨쉬리라는 것을.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던 마음, 붙잡을 듯 잡지 못한 두 손, 흔들리던 중년의 몸짓이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면서 당신의 이름이 불리리라는 것을. 세상은 당신을 무너뜨렸어도, 예술은 당신을 지켰다. <중년>은 당신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를 간직하며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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