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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23 2026 12:28 PM
80대 노인 두 명이 있다. 평소 등산을 즐길 만큼 건강했던 A노인은 제법 진행된 담도암이 발견됐다. 암 때문에 황달과 담관염이 겹쳐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섬망까지 왔다. 반면 경도의 치매와 골관절염으로 평소에도 걷기 힘든 B노인은 장염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우연히 신장암으로 의심되는 3㎝ 크기의 덩이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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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상황이라면 A노인에겐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를 권한다. 큰 수술이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 등산을 다니던 분이기에 회복기를 잘 넘기면 이전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B노인에게는 선뜻 수술을 권하기 어렵다. 큰 수술과 입원이 혼자 하던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어 또 다른 기능 저하의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수술로 무엇을 얻고 잃을지 따져봐야 한다.
환자의 건강 상태만으로 수술에 관한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A노인이 혼자 살고 수술 후 긴 회복 과정을 감당하거나 병원에 데려와 줄 사람이 없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기 어렵다. 반대로 B노인 곁에 병원 방문과 재활을 챙겨줄 가족이 있고, 낯선 병원보다 익숙한 가족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완치를 원한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치료 결정에는 질병뿐 아니라 누구와 사는지, 누가 돌봐줄 수 있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충분히 의견을 나눠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정 수준의 치료를 정할 수 있다.
이런 고민은 고지혈증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관리할 때도 이어진다. 미래의 뇌졸중 위험을 줄이려다 혈압이 낮아져 자꾸 넘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식사량이 줄고 체중이 빠지는 노인은 저혈당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혈당을 엄격히 조절할 필요는 없다.
현실적인 이유로 치료 목표를 낮춰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의학적으로는 더 엄격한 혈당 조절이 필요하지만 환자가 스스로 인슐린을 다루기 어렵고 정해진 시간마다 주사를 놓아줄 사람도 없다면 치료 방법을 바꿔야 한다. 심근경색으로 시술을 받아 항혈소판제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좋더라도 반복적인 위장관 출혈이 생긴다면 지속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고 몸이 노쇠해질수록 미래의 위험보다 현재의 생활이 중요해진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치료를 줄이는 것은 노인의학에서 지양하지만, 요즘 기준으로 80세가 넘어가면 몇 년 뒤의 질환을 예방하는 것보다 오늘 식사를 잘하고, 어지럽지 않게 걷고, 가족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때로 '치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결정은 명료하지만, 하지 않는 결정은 질병 외의 것들을 두루 살펴야 해 훨씬 어렵다. 치료를 줄이자고 할 때 "이제 나이가 많아 나를 버리는 것 아니냐"며 서운해하는 환자의 감정도 살펴야 한다.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약을 줄임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환자의 건강상태와 주변 환경을 살피고 여러 선택지를 설명하는 충분한 진료 시간이 필수적이다. 다만 시간에 쫓기는 외래 진료 환경과 현재의 보상 구조에서 쉽지는 않다.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을 줄여 환자 삶의 질이 더 나아진다면,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 역시 치료의 핵심적인 일부다. 환자의 의견과 생활환경을 치료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 그 결정에 필요한 시간과 판단의 가치도 함께 인정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장건영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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