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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박세리, ‘다 이룬’ 박인비
“마치 워싱턴과 링컨 비교하는 꼴”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16 2026 01:52 PM
‘맨발 투혼’ 박세리 US女오픈 우승 세계 정상 넘어 애국심마저 극대화 대표팀 감독으로 올림픽 금메달도 박인비, 메이저 7승 한국 선수 최다 거의 모든 것 이뤄낸 완성형 챔피언 기록은 박인비, 역사는 박세리 평가
“그것은 마치 케냐 최고의 마라톤 선수, 네덜란드 최고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오스트리아 최고의 알파인스키 선수, 이집트 최고의 스쿼시 선수를 고르는 것과 같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박인비(38)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승 고지에 올랐던 2020년. 미국 NBC스포츠는 박세리(49)와 박인비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한국 여자골프 선수’를 꼽는 일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한술 더 떠 “마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를 가리려고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세대를 달리하며 한국 골프를 이끌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두 선수 가운데 최고는 누굴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세리가 LPGA 무대에서 ‘골프 불모지’ 한국을 세계 정상 반열에 올린 ‘개척자’라면, 박인비는 프로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뤄낸 ‘완성형 챔피언’이다. 김효주(31)와 유해란(25) 활약이 돋보인 2026 LPGA 시즌에도 한국 선수들의 의미 있는 기록이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누구도 쉽게 넘어서기 힘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박 레전드’ 중 누가 한국 여자골프의 GOAT인가.
‘맨발 투혼’, ‘세리 키즈’…박세리의 길은 역사였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기슭에 박힌 공을 쳐낸 박세리 감독. 연장에 재연장 끝에 그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세리가 21세이던 1998년 기록한 US여자오픈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넘어, 애국심을 극대화한 ‘문화적 승리’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신발과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맨발로 공을 쳐낸 최종라운드의 장면은 경제위기에 지치고 위축된 국민들에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념과 미래의 희망을 동시에 안겼다.
특히, 까맣게 그을린 종아리와 대비되는 하얀 발은 혹독했던 훈련의 시간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선두에 한 타 뒤졌던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드롭을 해 벌타를 받고 쳤다면 준우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박세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따냈다. 그의 ‘맨발 투혼’은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그해에만 4승을 거둔 박세리는 한국인 최초의 LPGA ‘올해의 신인왕’에도 올랐다.
박세리가 걸은 길은 곧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였다. 2001년 브리티시 여자오픈과 2002년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24세에 ‘최연소 메이저 대회 4승’을 달성했고, 2007년 6월에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입회 자격은 이미 2004년 갖췄으나, 입회 조건에 'LPGA에서 선수로 보낸 시간'이 규정돼 있어 3년이 더 지나서야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선수 시절엔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었기에 선수로서 활약을 할 순 없었지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금메달을 이끌며 지도자로도 새 역사를 써냈다. 당시 박세리는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후배들을 위해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을 차려내며 감독 이상의 역할까지 해 화제가 됐다. 박세리가 길을 열지 않았다면, 박인비 등 세계 정상급 한국 선수들의 시대도 훨씬 늦게 찾아왔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세리를 넘어선 ‘세리 키즈’ 박인비

2016 리우데자데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금메달을 획득한 뒤 밝게 웃고 있는 박인비.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박세리가 감독으로 금메달을 이끈 2016 리우올림픽은 두 사람의 GOAT 논쟁에 새로운 소재를 더한 대회이기도 했다. 박세리는 지도자로 금메달을 만들었고, 박인비는 선수로 한국 골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이후 박인비는 ‘언빌리버블(unbelievable)’과 이름을 합친 ‘인빌리버블’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을 만큼, 박인비는 박세리의 기록을 하나씩 넘어섰다.
박세리가 LPGA 25승 가운데 5승이 메이저 타이틀인 반면, 박인비는 통산 21승 중 7승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채웠다. 또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2015년 8월 2일(현지시간)은 ‘박인비 우세론’이 생긴 원년으로 꼽힌다. 또 2008년 US오픈에서 처음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후 전성기였던 2013년엔 나비스코 챔피언십, LPGA 챔피언십, US 여자오픈까지 휩쓸며 ‘LPGA 단일 시즌 메이저 최다승’(3승)을 기록했다.
여기에 통산 106주 세계랭킹 1위, 한국 선수 최초의 LPGA 올해의 선수상(2023년), 2년 연속 상금왕(2012~13년), 그리고 2016년 박세리만 가지고 있던 명예의 전당 입성까지 이뤄냈다. 특히 메이저 7승은 지금도 한국 선수 최다 기록이다.
박인비의 성장 과정도 ‘골프 대디’의 엄격한 지도 아래 억척같이 버텼던 박세리와는 다소 달랐다. 국내에서 유망주로 주목받다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주니어 대회 우승을 휩쓸며 각광받았다. 2008년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기록(19세 11개월)을 세운 후, 4년 동안 슬럼프에 빠져 골프를 접을 결심도 했지만, 한국프로골프(KPGA) 남기협 코치와의 만남을 계기로 부활했다.
전성기 한복판이던 2014년 남씨와 결혼한 이후에는 ‘행복 골프’와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을 강조하며, 성적뿐 아니라 선수의 삶 자체를 중시하는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한 점도 높이 평가받는다.
“기록은 박인비, 역사는 박세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호흡한 박세리(왼쪽 두 번째)와 박인비(맨 오른쪽). 연합뉴스
박세리는 은퇴 후 감독, 사업가로도 변신했고, 최근까지는 활발한 방송활동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박인비는 두 아이의 엄마가 돼 있다. 둘째 딸을 출산하기 직전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을 선언하고 2024 파리 올림픽 기간 프랑스 곳곳을 누비는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 공식 은퇴를 선언하지 않아 선수 커리어를 더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경기력과 기록만 놓고 보면 박인비의 손을 들어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메이저 7승과 커리어 그랜드슬램, 106주 세계랭킹 1위는 한국 여자골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음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선수'에는 기록뿐 아니라 시대를 바꾸고 종목의 역사를 새로 쓴 영향력까지 포함된다. 그 기준이라면 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최강으로 끌어올린 개척자였다.
그래서 이 논쟁은 쉽지 않다. 기록을 중시하면 박인비, 역사를 중시하면 박세리다. NBC스포츠가 이를 워싱턴과 링컨의 비교에 빗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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