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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마저 실사로 구현
놀런 영화답지만, 놀랍진 않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15 2026 02:53 PM
‘오디세이’와 CG 결벽증의 장단점
나는 컴퓨터그래픽(CG)을 믿지 않는다. 이런 소리를 하면 요즘은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이미 영화 속 특수효과는 다 CG로 만드는데 뭔 꼰대같이 구느냐는 소리다. 다른 하나는 크리스토퍼 놀런 빠냐는 소리다. 맞다. 일단 나는 1970, 80년대의 물리적 특수효과 시대를 거쳐 2000년대 이후 CG 시대까지 겪은 옛날 사람이 맞다. 놀런 빠냐는 소리는 절반만 맞다. 일단 내가 좋아하기에 그는 너무 심각하다. 그의 영화 속에서 농담이 한 번이라도 나온 적이 있는지 기억해 내보시라. 쉽지 않을 것이다. 놀런이 농담만큼 싫어하는 게 CG다. 그는 결벽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CG를 거부한다. 나는 농담은 좋아하고 CG는 믿지 않으니 절반만 놀런 빠일 것이다. 빠가 되려면 모든 걸 좋아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열린 영화 '오디세이'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놀런의 CG 결벽증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나는 '인터스텔라'(2014)가 개봉했을 때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CG를 쓰지 않으려 캐나다 평원에 30만 평 옥수수 농장을 만든 놀런을 그렇게 놀려댔다. 돈 많은 감독의 괜한 고집이라고들 했다. 그 옥수수는 다 어쩔 거냐고 놀렸다. 촬영이 끝난 후 수확한 옥수수를 판매해 제작비 일부를 충당했으니 결과적으로 괜한 일은 아니었다. 요즘은 놀런의 CG 결벽증을 그렇게까지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가 좋아서다. 영화만 잘 만들면 대중은 감독의 특이한 고집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법이다.
게다가 놀런의 CG 결벽증은 이제 마케팅 포인트가 됐다. '오펜하이머'(2023)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건 원폭 실험을 CG 없이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였다. 진짜 원폭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이어졌다. '오디세이'가 개봉하기 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것도 CG의 사용 여부였다. '오디세이'는 신화다. 수많은 괴물이 등장한다. 외눈박이 키클롭스를 어떻게 CG 없이 만들어낼 것인가? 사람들은 놀런이라면 진짜 괴물을 소환해서 찍을지도 모른다고 농을 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던 사람도 세상에 한두 명쯤은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만 해도 CG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세트나 모형을 이용한 물리적인 특수효과만 존재했다. CG를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대세로 만든 건 두 명의 거장이다. 제임스 캐머런과 스티븐 스필버그다. 나는 '터미네이터 2'(1991)와 '쥬라기 공원'(1993)을 극장에서 본 세대다. 두 영화를 보며 나는 물리적 특수효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가 발생했다. 모두 너무 빠른 속도로 물리적 특수효과를 버리기 시작했다. CG가 만능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우리는 누가 봐도 CG가 틀림없는 허술한 괴물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감내해야만 했다. 한국 영화도 감내해야만 했다. '7광구' 말이다. 그 영화를 극장에서 참아내야 했던 모든 독자에게 위로를 보낸다.

영화 '인터스텔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CG는 완벽한 기술은 아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놀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 영화를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감독이다. 배트맨 시리즈를 생각해 보시라. 팀 버튼의 '배트맨'(1989) 이후 배트맨 영화들은 모두 판타지였다. 박쥐 닮은 타이츠를 입고 녹색 머리 미친놈과 싸우는 영화는 현실적일 수가 없다. 놀런은 그걸 해냈다. 진지한 톤이라서만 가능했던 게 아니다. 모든 액션을 물리적으로 찍어낸 것이 리얼리티를 입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의 영화에서 폭발하는 것은 실제로 폭발한다. 떨어지는 것은 떨어진다. 달리는 것은 달린다. 나는 것은 난다. 그는 물리적 특수효과에 약간의 CG를 보이지 않게 입힐 뿐이다. 혹은 CG로 지울 뿐이다. 그것이 놀런 영화의 리얼리즘을 창조한다. 놀런 영화는 배경까지 CG인 마블 영화의 반대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디세이'는 놀런의 가장 까탈스러운 프로젝트다. 이 영화는 CG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호머의 원작은 온갖 경이로운 괴물들로 가득하다. 이걸 가지고 리얼리즘 영화를 만드는 건 그냥 불가능한 일이다. 놀런은 해낸다. 그는 '오디세이'를 고대의 신화가 아니라 문명과 전쟁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한 현대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당연히 놀런은 CG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CG 괴물로 가득한 영화는 현대적일 수가 없는 탓이다. 재미있게도 그것은 동시에 '오디세이'의 블록버스터로서의 약점이기도 하다.

'쥬라기 공원'은 CG로 만든 실감 나는 공룡 모습으로 전 세계 영화팬을 놀라게 했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놀런은 키클롭스 장면을 실제 크기의 애니매트로닉스 모형을 만들어서 촬영했다. 질감이 붕 뜨는 CG 괴물과는 확실히 다르다. 문제는 거대한 모형의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놀런은 편집의 힘으로 액션의 약점을 보완하려 한다. 잘 먹히지는 않는다. 둔탁하다. 거인 라이스트리곤과의 싸움 장면은 키 2m 넘는 배우들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갑옷을 씌우고, 주연 배우 대신 키가 150㎝에 불과한 스턴트 대역을 활용해 촬영했다. 현실적인 방법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노래로 유혹하는 사이렌은 안개 속에 숨겨버린다.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절벽 괴물 스킬라 장면에서 유일하게 놀런은 드러나는 CG를 쓴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다. 놀런은 그 장면을 너무할 정도로 짧게만 보여준다.
나는 CG 결벽증의 결정판에 가까운 '오디세이'를 보며 놀런이 결벽증을 조금 벗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그걸 '오펜하이머'에서 깨달은 바 있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는 원폭 장면을 보며 "겨우 이거야?"라고 생각한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CG를 쓰지 않은 장면'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에 비하면 영화적 경이로움은 확실히 좀 떨어졌다. '오디세이'의 많은 액션 장면도 비슷한 함정에 빠진다. 물론 놀런에게는 방법이 있다. 그는 과장된 음악과 과감한 편집으로 그런 약점을 상쇄한다. 그것이 놀런의 영화적 마술이다. '오디세이'도 그런 놀런의 마술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는 CG를 최대한 피함으로써 '오디세이'를 현대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진중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그래도 나는 놀런이 언젠가는 CG와 조금만 더 화해하기를 빈다. 화해하고도 충분히 놀런답게 놀라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이 영화 속에 농담을 집어넣는 걸 기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기대일 것이다.
김도훈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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