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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해안가에 어둠 깔리면...

테니스 코트 뒤덮는 오페라 선율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15 2026 02:55 PM

스웨덴 보스타드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


스웨덴 남부 스코네주, 인구 5,000여 명의 작은 해안 도시 보스타드(Båstad)의 여름밤은 길었다.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쪽으로 500㎞ 떨어진 이 호젓한 휴양 도시는 오후 7시가 넘어서도 대낮처럼 밝았다. 경기장의 인상이 짙던 테니스 스타디움 센터코트는 어둠이 내리자 마침내 한여름 밤의 야외 오페라극장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속 저주받은 선장의 이야기는 해안 도시의 여름밤 풍경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무대 장치가 없는 콘서트 버전임에도 온몸을 던진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호연과 약 100명의 지역 아마추어 합창단원의 다소 긴장한 듯한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공명이 객석을 풍성하게 울렸다.
 


한여름 밤, 테니스 스타디움의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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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스웨덴 보스타드의 테니스 스타디움 센터코트에서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공연되고 있다. ⓒSimon Aatig

 

독일 바이로이트·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스위스 베르비에 등 곳곳이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물드는 유럽의 여름. 스웨덴의 작은 해안 도시 보스타드에서도 '바다'를 주제로 한 클래식 음악 축제가 펼쳐졌다. 3일(현지시간) 시작해 8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막을 내린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이다. 보스타드가 속한 비에레 반도 전체가 강화도 면적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아담한 휴양지지만 여름이면 음악 축제장으로 변한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많은 대도시도 아닌 이곳에서 테니스 코트까지 동원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스웨덴의 전설적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1918~2005)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강렬한 고음과 폭발적인 성량으로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최고 해석자로 평가받으며 빈과 바이로이트, 밀라노와 뉴욕, 런던 등 세계 무대를 누볐던 성악가다. 스웨덴 농가에서 태어나 세계적 명성을 얻은 닐손의 삶은 스웨덴인에게 각별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은 2018년 닐손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시작한 신생 축제지만, 이미 보스타드의 연간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유명 음악가의 명성에만 기대는 축제가 아니라 음악의 미래인 젊은 성악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국제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테니스의 도시'에서 경기장을 오페라 무대로 활용한 것부터 축제의 성격을 보여준다. 벵트 할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테니스 스타디움의 넓고 독특한 야외 공간은 많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오페라에 적합한 음향을 갖춘 것도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레스 코드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전통적인 오페라 하우스를 찾지 않는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이 축제의 주요 목표"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베르디 '아이다'에 이어 올해도 스코네주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무대에 섰다. 연주는 보스타드에서 기차로 30분 떨어진 인근 항구 도시 헬싱보리의 헬싱보리 심포니가 맡았다. 헝가리 지휘자 헨리크 나나시를 비롯해 바리톤 크리스토퍼 말트만(네덜란드인), 베이스 귄터 그로이스벡(달란트), 테너 스타니슬라스 드 바베이락(에릭) 등 세계적 음악가들이 함께했다. 스웨덴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스트리드가 젠타로, 스웨덴의 떠오르는 테너 토비아스 베스트만은 조타수로 출연했다. 할 감독은 "세계적인 수준의 솔리스트와 지역 인재가 함께하는 것이 우리 축제의 특별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5일 열린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리사이틀 역시 이 축제의 규모와 성격을 잘 보여줬다. 210석 규모의 라비넨 문화회관(Ravinen Kulturhus) 콘서트홀에서 열린 세계 정상급 성악가의 무대에 관객은 눈에 띄게 몰입했다. 괴르네는 이곳에서 사흘간 마스터클래스도 열어 젊은 성악가들과 직접 만났다.
 


비르기트 닐손의 유산, 다음 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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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스웨덴 보스타드의 테니스 스타디움 센터코트에서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에릭을 맡은 테너 스타니슬라스 드 바베이락과 젠타를 맡은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스트리드가 열연하고 있다. ⓒGunillaHovenäs

 

9aef8f33-a732-41b2-b3da-7bea5abfbdf7.jpg스웨덴 보스타드의 여름밤은 길어 8일 테니스 스타디움 센터코트에는 오후 9시가 훌쩍 넘어서야 어둠이 짙게 깔렸다. ⓒSimon Aatig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은 닐손의 삶과 예술을 추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에도 고향을 잊지 않았던 닐손의 태도를 축제의 방식으로 이어 가고 있다. 닐손은 1955년 지역 역사공원을 위한 자선음악회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고향에서 30년 동안 여름 공연을 이어 갔다. 14세부터 합창단원으로 노래했던 베스트라 카루프 교회는 그의 음악적 귀향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훗날 닐손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노래한 곳은 베스트라 카루프"라고 회고했다.

수산네 뤼덴 비르기트 닐손 재단 대표는 닐손의 유산을 "살아있는 전통"이라고 표현했다. 닐손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며 젊은 성악가를 지원하고, 닐손이 사랑했던 레퍼토리를 고향에서 다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다. 닐손은 1969년 첫 스승 라그나르 블렌노프를 기리며 장학금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스웨덴 젊은 성악가 47명이 지원받았다.

축제는 이전 장학금 수혜자와 새로운 수혜자가 차례로 무대에 서며 닐손의 음악적 유산을 다음 세대로 이어 가는 구조를 만든다. 2024년에 장학금을 받은 소프라노 마틸다 스테르비는 6일 괴르네와 같은 라비넨 문화회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올해 25만 스웨덴크로나의 장학금은 바리톤 루탄도 카베에게 돌아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스웨덴으로 귀화한 카베의 리사이틀은 7일 400석 규모의 베스트라 카루프 교회에서 열렸다. 닐손이 노래했던 공간에서 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받은 젊은 성악가가 노래하는 장면은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축제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카베는 장학금의 의미에 대해 "예술적 여정을 계속하며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용기를 준다"고 밝혔다. 스테르비 역시 "비르기트 닐손이라는 이름과 연결된 장학금을 받는 것은 꿈같은 일"이라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축제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40분으로 축약한 어린이 대상 참여형 공연 '꼬마 네덜란드인'과 가족 프로그램, 오페라 싱어롱 등을 프로그램에 포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뤼덴 대표는 "음악과 오페라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이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술로 들어가는 문턱을 낮추되 높은 수준의 품질은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음악을 사람들에게 가져가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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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루탄도 카베가 7일 스웨덴 보스타드 베스트라 카루프 교회에서 리사이틀을 마친 뒤 장학증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GunillaHoven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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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마틸다 스테르비가 6일 스웨덴 보스타드 라비넨 문화회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GunillaHovenäs

 

비르기트 닐손 재단 이사이자 스웨덴 왕립음악원 대표(Permanent Secretary)인 프레드릭 베테르크비스트도 지역 축제가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형 콘서트홀을 찾아가야만 음악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축제는 음악을 사람들에게 직접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닐손과 같은 예술가의 유산은 단지 자랑스러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가장 작은 지역, 어려운 환경에서도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기관과 지방정부, 지역 기업이 함께 축제를 키워가며 문화유산을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협력 구조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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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의 고향인 스웨덴 보스타드의 옛 집 옆에 마련돼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비르기트 닐손 박물관. ©Birgit Nilsso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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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이 1974년 고향인 스웨덴 보스타드의 베스트라 카루프 교회에서 공연하고 있다. ©Birgit Nilsson Museum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이 지향하는 미래 역시 거대한 국제 오페라 축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뤼덴 대표는 “대형 오페라 축제보다는 개인적이고 매력적인 보석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예술가와 지역 애호가가 함께 만드는 지금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겠다는 뜻이다.

내년 비르기트 닐손 페스티벌에서는 8월 14일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테니스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다. 스웨덴의 젊은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닐손이 타이틀롤을 맡을 예정이다.

보스타드=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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