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반달리즘(vandalism)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원예진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24 2026 04:24 PM
가끔 토론토 시내 남단, 다운타운과 이어진 하버프론트 지역을 통과하는 고가도로를 지날 때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바깥풍경을 유심히 살피는 일이 버릇처럼 되어있다.
CN타워, 로저스센터,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 하나하나 짚어가듯 확인하듯 지나가며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몇 해 전까지 살았던 곳이어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소환되는 추억들이 즐겁다.
어린 손자를 물속에 던지며 수영을 가르쳤던 고층아파트의 옥상수영장이 마치 공중정원처럼 보이고, 길 건너의 ‘테리폭스공원(Terry Fox park)’
손자와 함께 공차기를 하고, 저녁산책을 하고, 여름이면 분수에 옷을 적시며 놀고, 함께 내닫던 공원의 끝자리, 고속도로의 달리는 차들이 쌩쌩 들리던 그 경계부분에 높지막하게 자리 잡은 빨간 보트!
커다란 코고무신을 연상시키는 빨간 보트 안에서 놀이도 하고, 주변을 돌며 술래잡기와 숨바꼭질도 했었다.

언스플래쉬
어느 날, 고가도로를 달리다 그 빨간 보트가 사라졌음을 알았다. 그 자리가 휑하니 빈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놓쳐버렸나 의심했었다. 아니었다. 비어있었다. 다시 돌아오겠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얼마쯤 후에 그 자리에 안내판 같은 구조물이 세워져있었다. 나에겐 여전히 휑한 느낌이었다.
아쉽고 궁금해 하던 끝에 철거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보트안과 주변이 쓰레기와 오물로 더러워지기 시작했고, 낙서와 파손이 이어져 골치를 앓았다고 한다. 심지어 보트 안에서 소소한 불장난이 벌어지기도 하더니, 끝내는 누군가가 그곳에 제법 큰 불을 질렀고, 그 방화 이후에 빨간 보트가 철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반달리즘(vandalism)이었다.
얼마 전 CBC(Canadian Broadcasting Corporation)뉴스에서 토론토 새내의 도로에 설치한 스피드 카메라 일곱 대가 망가졌다는 뉴스를 보도했었다. 그 자리에 온타리오 주(Premier of Ontario) 수 상인 더그 포드(Doug Ford)를 비롯하여 관련당국 사람들과 전문가 등 몇몇 사람들이 나와서 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대책과 방안을 강구하는 내용이었다. 세금걱정을 했고, 펜스를 치느냐 마느냐 하는 등... 그 자리에서도 반달(vandal) 즉 반달리스트들의 소행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었다.
반달리즘이란 국가정책이나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으로 문화재나 공공기물, 공공 편의시설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말하며,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반달(Vandal) 또는 반달리스트(Vandalist)라고 한다.
5세기경, 게르만계의 한 부족인 반달족(Vandal 族)이 서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침공할 당시, 로마 시내 곳곳에 있는 미술품, 조각상, 건축물 등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약탈했다.
그 후,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앙리 그레고리(Henri Grégoire) 주교가 혁명군들이 예술품과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를 비판하면서, 반달족의 파괴적 행위를 비유하여 ‘반달리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침략과 약탈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공공시설 파괴는 물론 문화재 파괴나 예술품 훼손까지 하는 행위를 포함하여 말한다.
현대에 와서는 확장, 대중화되었다. 거리에 설치되어있는 가드레일을 파괴한다든지, 공원의 벤치를 망가트리고, 가로수를 훼손하고, 사찰이나 고분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 일, 성곽을 허물어트리는 일, 버스정류장의 기물을 파손하거나 기념탑이나 기념물에 흠집을 내거나, 페인트 덧칠을 하거나 더럽혀서 원형을 뭉개버리는 행위... 등 많다. 요즘은 사라졌지만 공중전화 부쓰나 공중전화기를 망가트리는 일도 허다했다.
국가 정책에 대한 반대나 저항의식, 사회적 반감표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분노의 감정표출로도 공공시설이나 기물을 파괴하는 행위로 일종의 화풀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까지 반달리즘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2008년에 일어난 국보1호인 서울의 숭례문(남대문)방화사건도 곧 반달리즘이다. 당시 방화범은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으로 그런 행위를 했다고 밝혀졌다. 한 개인의 불만해소의 감정으로 귀중한 국가문화유산을 재로 만들어버렸으니 어이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버프론트 근처의 빨간 보트, 연기로 사라진 남대문... 등은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개인의 일시적인 충동이나 잘못된 감정 해소 방법 때문에 치러야하는 사회적 부담이 크다. 그 사회적 부담은 결국 세금으로 개인들에게 분담되는 셈이다. 문화재나 예술품에 반달러의 손길이 이르면 그 피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산할 수 없는 피해이며 손실일 수밖에 없다. 결국 반달리즘은 역사의 기록을 파괴하는 행위이면서 인류의 기억과 흔적을 지워버리기 때문에 유구하게 이어져야할 역사의 시간 한 토막을 지워버리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원예진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