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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올리는 감사의 편지
존경하는 최규식 신부님께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Aug 27 2026 09:30 AM
조성준 온주 노인복지장관

존경하는 최규식 신부님,
신부님께서 살아계실 때 저는 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는 신부님께 제대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씀 한 번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제 와서 너무나 마음에 남습니다.

고 최규식 신부
2026년 8월21일, 신부님께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지면을 빌려 신부님께 마음속 깊이 간직해 온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캐나다 정치에 도전했던 것은 1988년이었습니다.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신민당(NDP) 후보가 되어 연방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당시 한인 이민자로서 정치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보다 한인사회의 규모도 작았고, 캐나다 정치에 참여한 한인도 없었습니다. 당선 가능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인 후보가 선거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낯설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큰 힘을 주신 분이 바로 최규식 신부님이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천주교 교우들로부터 저의 선거를 돕기 위한 성금 2,100달러를 모아 직접 전달해주셨습니다. 당시의 2,100달러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더 크게 남은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신부님께서 저를 믿어주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 돈은 NDP로 보내지 말고 조성준 장로님이 사용하세요.”
그 말씀에는 정당을 넘어 한 사람의 도전을 응원하고, 한인 이민자가 캐나다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를 바라는 신부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소중한 뜻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 전액을 당시 큰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던 아르메니아의 희생자들을 돕는 데 전달했습니다.
신부님과 교우들께서 제게 보내주신 사랑을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그 마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88년 선거에서 저는 낙선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 제게 심어주신 용기와 믿음은 낙선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섰고, 3년 뒤인 1991년 토론토시의원 선거에 도전해 마침내 당선되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 시의원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일했고, 다시 온타리오 주의원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캐나다에서 한인으로서 주정부 장관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길을 저 혼자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이 계셨고, 아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던 시절에 먼저 저를 믿어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최규식 신부님은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신부님께서 1988년의 젊은 조성준에게 보내주신 믿음과 사랑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은 제가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긴 세월을 지나 오늘의 저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격려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한 사람을 믿어주는 마음이 그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멀리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저는 신부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신부님,
살아계실 때 이 말씀을 드렸어야 했습니다.
“신부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너무 늦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만으로 이룬 일이 아닙니다. 신부님을 비롯해 저를 믿고 사랑해주신 수많은 분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신부님께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평안히 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뵙게 되는 날에는 이번에는 꼭 늦지 않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부님, 그때 저를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주신 사랑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최규식 신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디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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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