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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에 PC·태블릿까지 구독하는 시대
환경에 독일까 약일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29 2026 01:16 PM
렌털 후 회수해 재정비 후 판매 ‘순환경제’ PSS모델과 닮았지만 구매 주기 단축, 되레 폐기물 늘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만 구독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가전제품, 가구 등 제품 구독 서비스도 인기란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 서비스 시장은 2020년 40조 원에서 2025년 약 100조 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가전제품 구독 시장만 2025년 상반기에 3조5,000억 원을 돌파했다. LG전자의 구독 매출은 전년보다 29% 올랐고 삼성전자는 가전제품 중심이던 구독 대상을 최근 PC·태블릿까지 넓혔다.

LG전자의 가전 구독 서비스에서는 케어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제품 분해 세척, 성능 점검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LG전자 제공
구독 서비스란 소비자가 제품을 소유하는 대신 정기적으로 이용료를 내고 필요한 기간 동안 사용하는 소비 방식이다. 예전부터 있었던 렌털, 리스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관리·수리·교체 서비스와 결합해 이용 편의성을 높여 차별화했다. 한편 제품 소유권이 사용하는 소비자가 아닌 기업에 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유럽에서 순환경제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은 제품서비스모델(Product-Service System·PSS)과 닮았다.
PSS 모델의 핵심은 소비자는 제품의 기능만 이용하고 제품 자체는 계속 기업이 소유하는 것이다. 종전의 판매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가 더 많은 제품을 빨리 교체할수록 기업에 이득이었다. 그러나 기업이 소유권을 계속 보유한다면 적은 제품으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득일 테니 알아서 제품의 내구성과 자원·에너지 효율성, 재활용성을 극대화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게 PSS 모델 아이디어의 출발이다.
2014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세탁기 구독 스타트업 번들스가 좋은 예다. 번들스는 우선 독일 가전 브랜드 밀레와 협업해 애초에 분해와 재활용이 쉽고 수명이 약 4배 긴 세탁기 모델을 선택했다. 소비자 이용 후 반납된 세탁기는 폐기하지 않고 전문 인력이 재제조해 다시 서비스에 투입한다. 그 결과 번들스의 세탁기 PSS 모델을 이용한 가정은 연평균 에너지 91킬로와트시(kWh), 세제 10리터(L), 물 3,000L 이상을 절감했다. 필립스 시그니파이의 조명 서비스를 도입한 스히폴 공항에서는 전력 소비를 50% 줄이고 제품 수명도 75% 늘렸다. 국내 코웨이도 2000년대 중반부터 렌털 후 회수한 정수기 등을 폐기하는 대신 부품을 교체하고 재정비한 뒤 다시 판매하는 리퍼비시 시스템을 운영해 폐기물을 줄이고 있다.
그럼 구독 서비스도 순환경제를 이루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요즘 유행하는 구독 서비스는 월 사용료를 낸다는 것 외에 재활용성을 높이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가전 구독 서비스 이용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만 봐도 그렇다. 구독을 택한 이유로는 '일시불 구매보다 비용 부담이 적어서'가 36.3%로 가장 많았고, 소비자의 64.3%는 '고가 제품을 구매한 뒤 후회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구독의 매력으로 꼽았다. 뒤집어 보면 언제든 부담 없이 다른 제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위험을 '반등효과'라 부른다. 제품을 소유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그만큼 함부로 다루기 쉽고 초기 부담이 낮아지면 오히려 더 자주 새 제품으로 바꾸려는 유인이 커진다는 것이다. 제품을 오래 쓰고 자원 소비와 온실가스를 줄이려던 시도가 도리어 소비를 부추길 수 있는 셈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지금의 구독을 '싸게, 편리하게 자주 바꿔 쓰는 방법'으로만 여기는 한, 구독은 기후위기의 '약'이 아닌 '독'이 될 것이다. 반대로 구독이 정말 약이 되려면 기업은 제품을 팔고 관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회수한 제품을 다시 살려내고 다음 사용자를 찾는 일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 역시 반납의 홀가분함이 곧 폐기의 홀가분함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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