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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완성한 건축
빛나는 별들의 눈맞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20 2026 02:32 PM
스웨덴 스톡홀름 건축 여행
매년 12월 10일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같은 계단을 내려온다. 1930년부터 100년 가까이 노벨상 만찬장으로 사용된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2층과 1층을 잇는 계단이다. 스웨덴 왕실과 노벨상 수상자 등 내빈은 2층에서 대기하다 이 계단을 내려와 1층 만찬장에 입장한다. 매년 1,3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만찬에 함께하지만 대부분 모르고 지나치는 작은 비밀이 있다.
매년 노벨상 만찬이 열리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의 모습.
벽면의 사각형 무늬 중 단 하나에만 별 표시가 돼 있다.
스톡홀름 시청은 도시의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이 계단 맞은편 벽면에 12각 별이 하나 있다. 벽면에 규칙적으로 나열된 사각형 무늬 안에 새겨져 있는데, 이 벽에만 사각형 8개가 있음에도 별은 단 하나의 사각형에만 있다. 가운데도 아니고 가장 끝도 아닌,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각형에 별이 있는데 이유가 있다. '시선 고정용' 별이라서다. 계단을 내려올 때 이 별을 바라보면 시선 처리가 자연스럽고 사진이 아름답게 찍힌다고 한다. 직접 계단 꼭대기에 올라 별을 바라봤다. 1층 만찬장에서 기자를 바라봤을 때, 완전한 측면은 아니되 고개가 과하게 꺾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각도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의 시선 처리까지 고민한 세심한 설계가 적용된 스톡홀름 시청은 스웨덴인의 자랑이다. 현지 주민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들은 시청을 사랑한다"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녁식사 장소이자 스웨덴 민족낭만주의라는 고유의 양식으로 완성된 공공건축의 걸작이다. 스톡홀름에는 시청 못지않게 예술적으로 지어진 지하철역 90여 곳, 북유럽 특유의 중후한 분위기를 간직한 왕궁도 있다. 도시 전체가 건축 여행지다.
노벨상 만찬장으로 유명한 스톡홀름 시청
스톡홀름 시청은 야경도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노벨상 만찬이 열리는 공간의 명칭은 '블루홀'. 이름과 달리 사방이 온통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대연회장이다. 이탈리아 저택 ‘팔라초’의 안뜰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이다. 건축가 라그나르 외스트베리(1866~1945)는 원래 이 공간을 이름처럼 푸르게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공 과정에서 벽돌의 붉은 색감이 썩 마음에 들어 계획을 변경했다고. 다만 시청 건설은 계획 단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던 사업이라 블루홀을 포함한 계획안이 사전에 보도됐고, 이미 시민들에게 익숙해진 명칭은 변경하지 않았다. 결국 '붉은 블루홀'이 탄생했다.
외스트베리는 팔라초 안뜰을 재현하는 취지를 살려 블루홀에 지붕을 얹지 않고 열린 공간으로 둘 계획이었다. 그러나 연중 온화한 이탈리아 기후와 달리 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있는 스웨덴 기후와 맞지 않아 지붕을 씌웠다.
블루홀을 둘러싼 벽을 자세히 보면 '별' 외에도 특이한 점이 많다. 음양각으로 각종 무늬가 새겨져 있다. 하부 아치 사이 역사다리꼴 무늬가 대표적이다. 이 무늬만 놓고 보면 벽돌보다는 석재 아치를 연상시킨다. 건축의 장식적 요소는 자재의 형태·특성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 사다리꼴은 벽돌 본연의 형태로는 구현이 되지 않는다. 벽돌 건물이 '나는 석재 건물이야'라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이는 민족낭만주의 사상과 연관이 있다. 외국 건축에서 영감을 받더라도 자국 전통과 재료를 적용하려 했기에 시청은 스웨덴의 옛 왕궁 트레크로노르와 같은 규격의 벽돌을 사용해 지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팔라초는 석재 마감이 정석. 때문에 벽돌로 지었지만 석재 구조물의 모양새를 한 독특한 안뜰이 완성됐다.
블루홀의 벽돌 벽면에는 석조 건물 같은 무늬가 있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 건축가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일반적인 계단에 비해 단차가 낮다는 점이다. 총 39단으로 이뤄진 이 계단은 통상 건축물의 계단보다 한 단 한 단이 눈에 띄게 낮다. 이 공간이 연회장으로 쓰일 것을 고려해 설계한 것이다. 긴 드레스를 착용한 여성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고도 미끄러지듯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외스트베리가 아내에게 직접 드레스를 입히고 수차례 계단을 오르내리도록 하며 사용자 편의를 검증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블루홀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에 '골든홀'이 있다. 노벨상 만찬 후 이어지는 무도회가 열리는 공간이다. 길이 44m에 달하는 네 벽면이 1,800만 개 이상의 유리·금박 모자이크 타일로 빈틈없이 뒤덮여 있다. 금 약 10㎏이 사용됐다. 예술가 에이나르 포르세트(1892~1988)가 비잔틴 양식으로 스웨덴의 역사와 신화를 그려 넣었는데, 북쪽 벽 중앙에는 스톡홀름을 의인화한 '멜라렌의 여왕'이 무릎에 도시를 안은 채 앉아 있다.
블루홀의 벽돌 벽면에는 석조 건물 같은 무늬가 있다.
이 모자이크에도 소소한 비밀이 숨어 있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가장 윗부분, 천장과 만나는 부분을 바라보면 말을 탄 에릭 9세(1125~1160)의 머리가 잘려 있다. 모자이크벽을 받치는 대리석 턱을 고려하지 않아 벽 높이가 잘못 계산된 것이었다. 공정 하자가 알려지자 포르세트는 마치 의도된 일인 듯 “에릭 9세는 실제로 머리가 잘려 사망했으니 역사 고증이다”고 반론했다고. 정말 의도된 일인지 실수인지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오직 그만 알 뿐.
시청 내부에는 시의회 주회의장도 있다. 천장 구조물이 노출돼 있어 바이킹 롱하우스 혹은 뒤집은 배의 골조가 연상된다. 서까래 사이사이 하늘색 칠이 돼 있는데, 연기를 빼기 위해 지붕에 구멍을 뚫었던 옛 스웨덴 전통 가옥의 요소를 차용한 것이라고.
노벨상 무도회가 열리는 시청 골든홀.
에릭 9세의 머리 모자이크가 천장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시의회 주회의장은 바이킹 롱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보인다.
'시민의 발'에서 '시민의 예술'이 된 지하철
로드후세트역 진입로는 육중한 기둥 때문에 지하 신전에 진입하는 기분이다.
시청 지하에도 스톡홀름 공공건축의 걸작이 있다. 다름 아닌 지하철역이다. 지하 암반이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여 있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반드시 없애야 할 이유가 없다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자는 취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로드후세트(Rådhuset·시청)역으로 내려가면 지하동굴에 지어놓은 신전에 입장하는 기분이다. 집채만 한 돌기둥이 승강장 입구 양옆을 지키고 있기 때문.
스톡홀름의 지하철 역들은 자연 암반을 그대로 노출하고 예술품이 설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
시청역 곳곳에는 예술작품이 설치돼 있는데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톡홀름 지하철 100개 역 가운데 90여 곳에 예술 작품이 설치돼 있다. 150명 이상의 스웨덴 예술가가 참여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미술관'으로 불린다. 1950년대 '예술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는 사상이 확산되며 ‘시민의 발’인 지하철을 예술로 덮기 시작했다.
시청역을 지나는 블루 노선의 동쪽 기점인 쿵스트레드고르덴(Kungsträdgården·왕의 정원)역도 놓쳐서는 안 된다. 1643년에 세워져 1825년까지 이 자리에 있다가 철거된 궁전 '마칼뢰스'를 지하에 재현한 역이다. 사라진 궁의 조각상 복제품과 기둥 약 50점을 지하 34m 암반에 옮겨놨다.
쿵스트레드고르덴역 역사는 마치 궁전 유적을 보는 듯 하다.
북유럽의 중후함 느껴지는 왕궁
스톡홀름궁 내부는 북유럽의 중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민·공공건축의 대칭점에는 왕실의 궁궐이 있다. 스톡홀름 시내 구시가지 감라스탄의 법궁과, 현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 일가가 거주하는 교외 드로트닝홀름 별궁이다. 국왕 가족은 1981년까지 스톡홀름궁에서 거주했으나 자녀가 태어나며 가족을 위한 공간이 필요해 이곳으로 이주했다.
스톡홀름궁은 크게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나뉜다. 현 법궁은 지상층이고, 지하에는 1697년 화재로 소실된 옛 궁궐 트레크로노르의 유적을 중심으로 트레크로노르 박물관이 운영된다. 법궁 실내를 둘러보면 유럽의 다른 궁궐과 다른 점이 느껴진다. 대체적으로 어둡다.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고 채색도 무거운 분위기다. 북유럽 기후와 채광에 맞춘 설계다. 화사한 이탈리아산 백색 대리석과 달리 중후한 분위기를 내는 스웨덴산 녹색 대리석도 한몫한다. 시청 계단에도 같은 대리석이 쓰였다.
스톡홀름궁 근위병 교대식.
드로트닝홀름궁은 현직 군주의 거처인 만큼 개방 구역이 법궁보다 적다. 하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은 교외에 있어 여유롭게 관람을 즐길 수 있다. 법궁처럼 북유럽 특유의 중후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본관도 볼거리지만 백미는 정원이다. 프랑스 베르사유를 본뜬 바로크식 정원과 영국식 자연풍경 정원이 공존한다. 18세기 말 구스타프 3세가 바로크 정원 북쪽에 영국식 자연 정원을 조성했다. 연못과 습지, 섬과 언덕이 알차게 조성돼 있다. 정원보다는 공원 같은 곳이다. 국왕의 거처임에도 정원은 시민에게 늘 열려 있다. 잔디밭에 누워 독서를 하거나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드로트닝홀름궁 역시 밝고 화사하기보다는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다.
정원 곳곳에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이국풍 건물도 남아 있다. 중국 파빌리온(Kina slott)은 1753년 아돌프 프레드리크 왕이 왕비의 생일 선물로 지어준 건물이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비밀리에 미리 제작해 정원에 조립했다고. 당시 유럽을 휩쓸던 중국풍 유행의 대표격으로, 내부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 등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하계에만 개방하는데, 별도의 난방 설비를 설치할 수 없어 상주 직원들의 건강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인근에는 구스타프 3세 때 왕실 용기병 숙소로 지어진 튀르키예풍 막사 박트텔테트(Vakttältet)도 있다. 캔버스 천 텐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속판을 성형해 채색한 건물이다.
궁 정원으로 이어지는 철문 주위로 왕가의 문양이 설치돼 있다.
스톡홀름=글·사진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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