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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 바라봤으면...’

꿈같은 소원, 사랑을 소유할수록 관계는 병든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9 2026 02:26 PM

영화 ‘옵세션’의 베어·니키


※이 칼럼은 영화 '옵세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랑의 열병이 찾아온다.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를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있을지를 끊임없이 헤아리던 밤들. 답장이 오지 않는 몇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고, 우연히 마주친 눈빛 하나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붕 뜨던 경험. 그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아마 이런 소망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 사람이 나만 바라봤으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아마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겠지만,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기에 흘려버리고 마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이 판타지를 한 번의 주문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손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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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옵세션'의 니키(왼쪽)와 베어. 니키를 짝사랑하던 베어는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한 ‘원 위시 윌로우’에 니키가 자신을 가장 사랑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그녀와 사귀게 된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최근 개봉한 블룸하우스의 호러 영화 '옵세션'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둔 이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의 얼굴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잔혹한 호러로 그 색깔을 바꾸어간다. 주인공인 음반 매장 직원 베어(마이클 존스턴)는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니키(인디 네버레티)에게 좀처럼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베어는 신비한 소원 아이템 '원 위시 윌로우'를 손에 넣게 되고, "니키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해달라"라고 소원을 빈다. 베어의 소원대로 니키는 그날부터 베어에게 폭발적인 애정을 쏟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만, 그 사랑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한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선을 넘는 순간

심리학에는 '리메렌스(Limerence)'라는 개념이 있다. 심리학자 도로시 테노프가 제시한 용어로, 짝사랑이나 연애 초기에 나타나는 강박적인 몰입 상태를 가리킨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 반드시 화답받고 싶다는 갈망, 그 갈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찾아오는 극심한 불안정함.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온 감정이 요동친다. 리메렌스는 인간이 누군가에게 강렬하게 끌릴 때 거쳐 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리적 변화다. 베어가 느꼈던 감정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상대방에게 주입할 수 있는 힘을 가져버렸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저 사람이 나를 사랑했으면"이라는 생각이 그저 나만의 바람일 뿐이라는 걸 안다.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자유, 나를 거절할 자유를 가진 '구분된 객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베어는 마법적 장치를 통해 바로 그 자유를 지워버린다. 이 순간 베어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무언가가' 된다. 사랑은 상대가 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과정이다. 그 불확실성이 주는 긴장과 설렘, 때로는 쓰라린 아픔까지도 사랑이라는 경험의 일부다. 상대의 마음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을 견디지 못해서, 그 가능성 자체를 지워 버리기 위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닌 상대를 소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그런 소원을 빌 수 있지 않냐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베어의 소원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숨겨져 있는 심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번쯤 품어봤던 달콤한 소망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맞이할, 예상치 못한 결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갖는 공포의 포인트다.
 


사랑이 생존이 되어버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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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옵세션'에서 저주에 걸린 니키는 베어에게 집착하며 극단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소원이 이루어진 뒤 니키는 말 그대로 베어'만을' 바라본다. 직장에서든 파티에서든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베어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베어의 집에 머물며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으며, 그가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외출도 통제하려 한다. 베어가 출근했다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현관 앞에 서 있다가 대소변을 흘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괴함의 극치다. 베어가 조심스레 이를 지적하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화를 내며 유리병으로 자신을 내리쳐 상처를 내는 식의 극단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단지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결과라고만 치부하기엔, 현실 속에서 니키의 모습과 닮아 있는 사례들을 간간이 만나게 된다. 상대에게 집착하고 통제하려 하며, 상대를 위협해서라도 자신의 옆에 두려고 하는 행동들. 그러한 행동의 기저에는 '유기불안(abandonment fear)'이라고 부르는 심리가 자리한다. 이는 사랑하는 상대로부터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구나'라는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관계 속 사소한 신호 — 무표정, 건조한 말투, 길어지는 연락의 간격 — 에도 '저 사람마저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 두려움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면, 상대를 억지로 옆에 묶어두려는 행동이나 자해 같은 극단적 반응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반복될수록 상대는 지치고, 역설적이게도 결국 두려워하던 이별은 더 빨리 찾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베어와 니키의 관계에서 니키는 단지 가해자일 뿐인 걸까? 후반부로 치달으며 니키는 베어를 두려움 속에 가두는 것도 모자라 자신과 베어의 관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얼굴은 애초에 그녀가 동의한 적 없는 베어의 일방적인 소원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저주 속에 갇힌 진짜 니키는 밤중에 잠깐씩 의식을 되찾고, 베어에게 "제발 나를 죽여줘"라며 애원한다. 매 순간 자아를 잃어버리는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어는 니키를 옆에 두고 싶다는 욕망에 그 외침을 외면한다.
 


나란히 병들어가는 두 사람
 

c748c857-114d-4f89-8bed-5c3b6d005286.jpg영화 '옵세션'의 니키와 베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사실 베어는 위기 신호를 알아차렸음에도 이를 회피하려고만 했다. 친구들이 니키의 심상치 않은 행동을 걱정하며 캐물을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거짓말로 상황을 덮는다. 니키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거부하자 그는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고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문제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순간 니키를 완전히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매번 그를 침묵 쪽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에게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소원을 되돌리고자 '원 위 시 윌로우'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요청한 것은 소원을 취소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수정'해달라는 것이었다. 니키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상태 자체는 그대로 유지한 채, 폭력과 구속을 조금 덜어내기만을 바란 것이다. 결국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지금 겪는 불편감을 줄이는 것이지, 자유의지를 잃어버린 니키를 돌려놓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의식이 돌아온 진짜 니키가 뱉어낸 "난 너와 함께였던 적이 없어"라는 말은 베어의 소유욕을 다시금 자극하고, 결국 그의 사랑은 외면과 왜곡의 과정을 거듭한다.

니키를 잠식한 저주와 베어의 뒤틀린 소유욕은 서로를 부추기며 상황을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몰아간다. 영화 말미, 출구를 찾지 못한 베어는 스스로 삶을 끝내려 약을 삼킨다. 하지만 곧바로 이를 후회하고 토해내려는 그 순간, 니키가 베어가 사두었던 원 위시 윌로우로 소원을 빈다. 바로 베어가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게 해달라는 소원이다. 마법의 힘은 베어를 다시 니키에게로 이끌고, 결국 그가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을 가로막고 만다. 사랑을 붙잡으려는 몸부림이 결국 상대를 완전히 잃게 만드는 이 장면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온 관계의 가장 정확한 초상이다. 베어의 죽음으로 저주가 풀리고 나서야 돌아온 진짜 니키가 마주한 것은, 애초에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던 사랑의 잔해와 그 사랑 때문에 저지른 참상뿐이었다.

 


죄책감의 가면을 쓴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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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옵세션'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연애의 초기, 리메렌스가 만들어내는 그 강렬함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다른 감각으로 옮겨간다. 상대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열병의 시기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편안함, 그리고 안정감이라 부르는 감정이 들어선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며, 그 크기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닌 자라나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사랑이 식었다"고 오독할 때 시작된다. 그 오독 앞에서 마음은 이리저리 부유하며 길을 잃는다. 사라져가는 강렬함을 어떻게든 붙잡아 고정시키고 싶은 마음, 상대가 나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확인하고 붙잡으려는 마음. 물론 대부분의 우리는 '원 위시 윌로우'를 손에 쥐는 일도, 저주 같은 사랑에 휘말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내 옆에 묶어두고 싶은 욕구가 통제와 소유로 발현되지 않는지만큼은 살펴보아야 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평생을 관계 문제를 연구하는 데 바쳤던 머레이 보웬은 이상적인 '건강한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서로의 정체성이 뒤섞여 경계가 사라져 융합된 관계가 아닌, 각자의 독립된 자아를 지키면서도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된 관계'.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나와는 별개의 욕구를 지닌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로 녹아들어 서로를 완전히 채우는 폐쇄적인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나란히 걷는 일에 더 가깝다.

'옵세션'이 남기는 질문은 결국 여기로 되돌아온다. "저 사람이 나만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의 밑바닥에서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사람의 존재 자체일까, 그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주는 달콤함일까.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인지, 나에게 종속되어 끊임없이 나만을 바라보는 존재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 답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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