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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부탁에 제작”
천만 감독의 숏드라마 극장 개봉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9 2026 02:27 PM
‘아버지의 집밥’ 이준익 감독 인터뷰
9일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세로 화면 영화 ‘아버지의 집밥’이 개봉했다. 가로 스크린의 한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화면으로 쓴다. 당초 휴대폰으로 시청하는 숏 드라마로 만들어진 터라 처음부터 세로로 촬영됐다. 회당 2분 분량의 숏 드라마 총 61회가 묶여 146분 길이의 영화 한 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숏 드라마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은 국내 최초이고,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던 일이다. 심지어 이 숏 드라마, ‘왕의 남자’(2005)로 ‘천만 감독’에 오른 이준익 감독 작품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계 최악의 침체, 후배들 독려하다가…

숏 드라마로 촬영한 후 세로형 영화로 재탄생한 '아버지의 집밥'의 순애(이정은)와 하응(정진영). 레진스낵 제공
“(숏 드라마 연출이) 사실은 불편하고 두려운 선택이었죠.” 영화 개봉 당일 서울 성동구의 키다리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이 감독이 솔직한 속내를 꺼냈다. 숏 드라마는 북미와 중국에서 2, 3년 전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이 팽창했지만 불륜과 복수,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소재가 대부분이라 국내에서는 여전히 ‘저급한 마라맛 콘텐츠’라는 인식이 많다.
그럼에도 이 감독이 처음으로 숏 드라마를 찍은 건 영화계 후배들 때문이었다. 역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겪는 영화계에선 신인 감독 입봉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그는 후배들에게 “플랫폼 상관없이 창작 활동을 하는 게 창작자의 의무”라며 숏 드라마 연출을 권했다. 그렇게 숏 드라마에 진출한 후배들은 그에게 “숏 드라마가 너무 마이너한 취급을 받는다. ‘이름 있는 사람’이 한 번 나서주면 힘이 될 것 같다”고 부탁했고, 고민 끝에 숏 드라마를 찍었다.
그가 택한 작품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가족극 ‘아버지의 집밥’이었다. 수십 년간 아내가 차려준 집밥으로 삼시세끼를 먹던 아버지 하응(정진영)이 냄비만 봐도 어지러워서 요리를 할 수 없는 병인 ‘요리백지증’에 걸린 순애(이정은) 대신 요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삼대에 걸친 가족의 밥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성장통까지 담겨 각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그는 “(콘텐츠들이) 만날 폭력과 자극만 추구하는 시대에 가족극이 숏폼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약도 가능성도 많은 숏 드라마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아버지의 집밥' 시사회에 참석한 이준익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숏 드라마 제작 과정은 34년차 감독인 그에게도 새로운 세계였다. 시나리오 작법부터 달랐다. 한 회 2분 안에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모두 들어가야 하고 주방, 거실 등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4곳 이하로 제한됐다. 세로 화면이라 배우들의 좌우 이동은 최소화하고, 대화하는 인물들을 한 화면에 담지 못해 매번 컷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감독은 "가로 화면인 영화는 주인공의 내면만 따라가지만, 세로 화면에서는 모든 인물이 단독샷을 받기 때문에 시청자가 조연의 내면까지 깊이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지만 상업 자본의 안정적 공급도 장점이다. 이 감독은 ‘아버지의 집밥’을 33명의 스태프와 한 달 동안 5억 원의 제작비로 촬영했다. 가로 영화였다면 스태프가 100명 이상, 제작비는 5배 이상 필요했을 거라는 게 이 감독 추산이다. 그는 “감독이 자기 네트워크를 활용하지 않으면 제작비 수급이 어려운 영화 생태계와 달리 숏 드라마는 신인 창작자들이 상업 시장에 진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숏폼 플랫폼 레진스낵에서만 공개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이 극장에 걸린 건 관객 반응 덕분이었다. 이 작품은 7월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플랫폼 기획전’에 초청받았다. 당시 매 회가 끝나면 검은 화면이 나왔다가 다음 화가 이어지길 2분마다 반복하며 2시간 30여 분 동안 상영됐는데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이 없었다. 눈물 훔치는 소리가 극장을 메웠다. 제작진은 극장 개봉을 결정하고 회차 간 검은 화면을 없애 한 편의 영화로 재편집했다. 이 감독은 "어르신들은 극장에서 자신의 연령대에 맞는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극중 아버지 나이대인 60~80대들이 극장에서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달부터 '자산어보'(2021) 이후 5년 만의 신작 영화인 ‘반딧불이’ 촬영에 들어간다. 1970년대 독재시대에 연좌제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으로, 박해일 박서준 최대훈 등이 출연한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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