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30년전 인천 문학동에서 위안부로 끌려갔었던 할머니를 만났었다.
그 할머니는 문학산 살기슭에서 무허가로 개장국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계셨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당당하게 사셨다.
요즈음 위안부 문제로 떠드는 모지리들을 보노라면,
한심하기 짝이 없고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한국인. 한국인 이라는게 부끄럽기 짝이없다.
일본수상 아베가 원래 싸가지가 없는 위인이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일본인들을 대표해서
떠드는데 이것을 붙잡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계속 떠들기만 하는 한국인들.
일본천왕이 사죄를 해야지 왜 총리가 사죄를 하라고 우기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지리 한국인들을 보노라면 부끄러움을 가진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에서 졌다 하면,
전쟁에서 진 나라의 여자들은 대다수가 능욕을 당했다.
남자들의 못남으로 인하여 여자들은 대다수가 능욕을 당한 것이다.
임진왜란때는 그렇지 않았겠냐?
병자호란에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영의정 며느리까지.......
그래서 환향녀
못난 남자 조상들을 원망 해야지 위안부로 끌고간 일본놈들은 왜 그리
욕들을 하고 있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치자.
그럼 북한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보다 몇배는 더 많은 위안부가 중국에서 끌려갔다.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은 조족지혈이다. 그 숫자가...
일본에게 사과를 받고 책임을 지라고는 해야 되겠지만.
사과문제가 그리 쉬운건 아니지 않는가?
위안부가 한국에서만 일어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존심 강한 중국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왜 냐면 大國 이기 때문에 체면이 깍기는 일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한국인이란 참으로 자존심도 없는 불쌍한
인간들이다. 특히 선동과 데모 그리고 이런일에 앞장서는 모지리 인간들이
더욱 그러하다.
전쟁에서 지면 어느 곳이든 여자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당한다.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지키지도 못한 남자들 그게 우리 아버지고 할아버지다.
그렇다고 아버지 할아버지를 욕할 순 없지 않는가?
힘없은 나라를 만든 정권을 욕해야지...
능욕과 치욕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부지기 수다.
그렇게 태어난 자들의 몸부림이 아니라면...
부끄러운 줄 알고 위안부가 다 죽으면 무슨 소용있냐며 떠들고 있는
단체, 무슨 단체 라는 것들아///
도데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냐?
힘없는 나라로 만든 무능한 이씨들을 원망하거나 조상들을 원망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는게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부국강병만을 생각하지 체면 깍이는 짓거리는 제발 그만두자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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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빗소리 바람내음 ( newlight**@yahoo.ca )
Apr, 06, 12:15 AM Reply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 분들의 증언..http://www.huffingtonpost.kr/2015/04/26/story_n_7145138.html기사 원문을 읽고 싶다면 클릭!레티히에우(1935년생)“나 좀 살려주세요. 저렇게 아이들도 있는데…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어. 총소리가 나고, 내가 애를 셋을 안고 있었어.서너 명의 한국군이 들어와서 나를 잡고 머리에다 총을 댔어. 애들은 마당에 내동댕이쳐지고, 나를 뒷집으로 끌고 가서 강간했어.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한국군들이 내 옷을 벗겨서 내 얼굴을 가렸어. 아이고 무서워.”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 등 최근의 일로 화제를 돌렸지만 또다시 과거가 재현되는 듯“아 난 너무 무서워. 무서워. 날 어디로 끌고 갈 건데. 날 어디로 끌고 갈 건데…”라고 하며 떨었다.하티낌응옥(1935년생), 하티찐(1929년생)“우리 셋을 베트콩 잡으러 가자며 따로따로 끌고 나갔어요. 그런데 풀숲으로 끌고 갔어요. 베트콩 잡으러 간 것이 아니라 강간하러 간 거죠.한 사람은 이쪽 풀숲에, 다른 한 사람은 다른 풀숲에 끌고 가 강간했어요. 그러고는 다시 언덕으로 끌고 가서는 비시(VC, 베트콩)! 비시! 하고 소리쳤어요.”언니인 찐 할머니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 풀숲에서 두 명의 병사가 내게 덤벼들었어요.바지와 웃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낄낄거리고 웃고, 나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면서 희롱했어요. 그리고 강간했어요. 한 명이 하고, 그다음 한 명이 하고.그러고 나서도 나를 돌려보내지 않고 나를 끌고 베트콩을 찾으러 갔어요.”응우옌티카인(1936년생), 응우옌티떰(1954년생)“누군가 ‘따이한’ ‘따이한’ 소리를 쳤어요.그 소리를 듣고서야 고보이 평야 쪽에서 한국군들이 오는 것을 알았어요.” 한국군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떰 할머니는 더더욱 이상증세를 보였다.갈수록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 표정도 불안해 보였다.그런데도 언니는 옆에서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무릎을 양팔로 감싼 채 자신의 맨발을 응시하고 있었다.그길로일곱 명의 마을 여자들은 묶인 채 끌려갔고,가다가 마을이 나타나면 다시 수색을 해서 한 명을 다시 묶어서 끌고 갔다.도착한 곳은 고보이 한국군 기지였다. 빈 건물에 여성들을 감금하고, 한 명씩 여자들을 불러내 눈을 가리고 뒤통수에 총을 겨눈 채 한국 군인들은 소리쳤다.“너 베트콩이지!” 그러면 여자들은 있는 힘껏 머리를 세 번 흔들었다. 그것이 끝나면 강간을 하고 풀어줬다. 그리고 그다음 사람도, 또 그다음 사람도…. 2박3일 동안 계속 반복해서 강간을 당했다.하룻밤에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일곱, 여덟 번은 끌려 나간 것 같다고 한다.“(함께 끌려간)엄마는 너무 늙어서 강간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무지하게 많이 맞았어요. 그때 우리도 많이 맞았어요. 총 개머리판으로 계속 맞으면서 강간도 당하고 그랬어요.풀려날 때 걸음을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살아서 풀려난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있는 힘을 다해서 걸었어요.”응우옌티바이(1948년생)“노인들을 땅굴 위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골라낸 것이죠.땅굴에 남은 어린 사람은 결국 나 혼자였어요. 혼자 남은 내게 한국 군인들은 ‘그 짓’을 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할머니는 한국 군인들의 강간행위를 ‘그 짓을 했다’고 표현을 했다.손으로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며 “한국군 4명이 들어왔어요.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지를 수 없었어요.한 사람씩 돌아가며 내게 그 짓을 했어요. 마지막 네 번째는 내가 혼절을 해서 축 늘어져 있으니까 무서워서 그냥 달아나버렸어요. 엄마도 나를 도울 수 없었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팜티하인(1951년생)“그때 한국군에게 구타당하고, 고문당하고 그래서 폐가 손상이 된 것 같아요.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신경계통의 질환도 있어요.”“그곳에 목욕탕이 있었는데, 목욕하러 들어갔을 때 한국군이 들어왔어요. 있는 힘 다해서 저항을 했지만 군인이 입을 막았어요. 그 짓을 하는데 이겨낼 수 없었어요.그곳에서 2개월 지내는 동안 세 번을 강간당했어요. 다 다른 군인들이었어요.” 팜티하인은 강간뿐만 아니라 전기고문과 구타, 발길질 등의 고문도 계속 당했다.할머니는 그때 생각을 떠올리거나 하면 그날부터 악몽을 꾼다. 밥도 먹을 수가 없고, 온몸이 아파온다.전쟁이 끝나고 4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통은 계속된다.팜티언(1951년생)“내가 잡혀간 날 주민들 30~40명이 함께 잡혀갔어요. 그런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격리를 했어요.아이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따로 모아놓고, 처녀이거나 소녀이거나 아이가 없는 여자들은 참호 속에 한 명씩 넣었어요.”“참호 속에 있던 그 군인에게 2박3일 동안 연속해서 죽을 때까지 강간당했어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낮에는 두 번, 밤에는 세 번 정도였던 것 같아요. 한국군이 옷을 벗으라고 하고 강간하고, 다시 옷을 입으면 벗으라 하고 강간하고, 또 옷을 입으면? 계속 반복했어요.”대한민국 해병대가 퐁니-퐁넛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다. 79명의 베트남 여성과 아이들이 살해당했다.사진은 퐁니, 퐁넛 학살 때두 가슴이 잘린 여성. 참고로... 저 때 저 여성은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