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타리오 호숫가를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아마 지금쯤 온타리오의 북쪽 작은 호수들에서는 아비새 (Loon)들이 새끼들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키는 시기일 것이다. 여기 험버 리버 (Humber River) 하류에 백조들이, 또 어미 오리가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유유히 헤엄치고 놀 때 – 이 평화스러운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호숫가에 나 혼자일 때, 나는 일상의 긴장을 풀고 자연의 순리와 평화로움을 즐기지만, 내 머릿속엔 많은 추억과 생각들이 오가기도 한다.토론토 에티엔 브륄레(Etienne Brule)...
바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나는 소일거리를 찾다가 블록(blog)을 개설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온라인 블록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주제로 쓴 글을 독자들과 나누는 활동, 즉 블로깅(blogging)을 시작한 것이다. 오랜 연륜을 쌓아 온 사람으로서,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해 온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었다.언스플래쉬블로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을 뿐 아니라,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소통과 공감의 분위기는 예상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공이든 사이든, 단기든 장기든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먼 도시나 타국을 찾아가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대부분 철저한 사전준비와 특별한 각오와 결심을 한 후 행선지를 향해 출발하게 되지만 때로는 별다른 목적이나 용건이 없이도 마치 옆집 방문하듯 부담없이 먼 길을 나서기도 한다.나는 50세가 되던 해인 2006년, 7월20일 밤, 아들과 함께 토론토 시내에서 장거리 고속버스를 타고 15시간 이상 캐나다와 미국 땅을 달려 미국의 보스턴 소재 하버드(Harvard) 대학과 MIT 대학 캠퍼스를 ...
아흔두 권의 책을 팔았다. 며칠간 내리던 비가 멈춘 풍경이 정겹고 푸르렀던 날, 첫 구매자를 만났다. 마흔일곱 권의 책을 구입한 그녀를 만나는 순간, 부끄럽게도 눈물이 흐른다고 느낀 건 정겨웠던 푸르름 때문이었으리라. 그녀가 구입한 마흔일곱 권에 선물 세 권을 더한 박스는 꽤 무거웠다. 다정한 인상의 그녀는 나의 책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고마워했다. 한 권 $3.00에 살 수 있었던 물리적인 가격보다 귀한 책을 내놓은 내 결단에 더 고마웠으리라 짐작한다. 책을 받아 들고 차에 타려던 그녀가 문득 뒤돌아 내게 말했다.귀한 책 다 읽고...
글을 가르칠 때도 그런 생각을 한다. 행복한 글쓰기가 되어야 하는가, 되고 싶은 글쓰기가 되어야 하는가. 학생들을 보면 두 부류로 나뉜다. 선생님, 저는 그냥 편하게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과 저는 정말 잘 쓰고 싶어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아이들. 전자는 글쓰기로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후자는 글쓰기를 통해 단순히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요즘 제자들을 보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이 두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것이다.이소호 시인이 행집욕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
찬바람이문틈으로새어들어온다.날씨가 스산하고 마음까지 가라앉는 날이면 그리움을품고 있는 노래를듣는다.손편지로마음을곡진하게나누었던친구만큼이나 속깊은곳을 만져주었던 홍하의골짜기, 메기의 추억,은발,스와니강...등 미국민요를 좋아했는데 나는 특히 은발을 좋아했었다. 가사 내용보다 부드러운 물결처럼 애잔하게 흐르는 가락에더 끌렸던 것 같다. 금빛사이에은색으로물든 연인의 머리카락을 보며 회한과격려를그린노래가 문득 떠오른 건, 그분들과의만남때문인지도모르겠다.Adobe Stock얼마전,지인 한 사람이 전화를했다.자신이다니는교회 시니어칼리지에있는자...
도대체 그 연은 어디로 갔을까?하며, 며칠을 지하실과 창고를 찾아다녔다. 여보, 우리 이민 왔을 때 그, 스카버러 콘도에 걸려 있던 연, 기억나지? 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벌써 몇 번을 물어보네. 그 연,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라고 한다.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이니까, 1998년 말이지 싶다. 한국 전통연(鳶)을 평생 연구한 노유상(盧裕相) 선생의 전시회에 갔었다. 서울 인사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하늘을 수놓는 소망의 날개 짓>이라는 부제로 열린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는 단순한 민속품 ...
그림: Eemmenegger Kim-Ari 의 LOVE / 권천학작가 제공시담(詩談)흩날리는 눈보라속을 걸었다.11시30분경,로얄 욕(Royal York)전철역 앞.블루어 스트리트(BloorStreet)의 코리아타운에 있는 하나은행에 가는 길이었다.눈발 사이, 로얄 욕 전철역 조그만 광장 모퉁이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를 보았다.덥수룩한 벙거지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벌어진 벙거지 안에 언듯 비치는 긴 속눈썹과 빨갛게 변한 콧등,벙거지 안은 눈 내리는 숲이었다.두덕두덕 두터운 장갑사이로 내밀어진 손가락.비둘기 발가락 같았다.얼...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저희 둘은 너무 다르거든요.파트너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남편은 계획적이고 나는 즉흥적이라서, 아내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데 나는 말이 없어서, 파트너는 일에 열정적인데 나는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래서 저희가 안 맞는 걸까요?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면 달랐을까요.영화 주토피아 2의 환상의 콤비 닉 와일드와 주디 홉스는 관계의 위기를 겪는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딸이 보자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찾았던 극장에서 주토피아 2의 주인공 닉 와일드와 주디 홉스도 비슷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병사들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포성이 아닌 윙 하는 소리가 되었다. 값싼 상용 드론이 머리 위를 스치면, 그 순간 참호의 위치는 좌표로 변한다. 좌표는 전장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몇 분 뒤 포병과 유도탄, 자폭 드론이 좌표를 따라온다. 전장의 타격은 이제 총열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시작된다.그래픽=신동준 기자기술의 변화는 전쟁의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산업혁명 수준의 범용기술은 예외 없이 군사 영역에 우선 적용된다. 일단 그 기술이 접목되면, 전쟁의 규모와 속도, 조직과 교리는 순식간에 바뀐다. 슬픈 역사적 ...
나는 화양연화 특별판을 보지 않을 것이다. 거부할 것이다. 거절할 것이다.왕가위를 싫어하느냐고? 그럴 리가. 내 세대에게 왕가위는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 시절 우리는 캠퍼스에 앉아 하루키 소설을 읽다 교문 앞에서 시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비디오방에서 왕가위 영화를 봤다.지금은 586이라 불리는 선배들은 그런 우리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루키 소설은 두부 같은 거라며 몸서리를 치던 국문학과 교수도 있었다. 두부가 뭐 그리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왕가위 영화는 뮤직비디오라며 혀를 차던 ...
며칠 전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다. 아니 느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꿈속에서는 사람의 형체를 본다기보다 느낌으로 그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건 아닐까. 지나온 꿈을 더듬어 보건대 아버지가 등장하는 꿈은 내 마음 상태가 불안정할 때 주로 꾸었던 것 같다.Adobe Stock어릴 적 우리 삼 남매는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늘 불안했다. 통근버스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기 아버지에게 뛰어가 반갑게 안겼었다. 반면 우리는 곧장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