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어놓은 TV에서는 테리 시아보의 삶과 죽음에 대한 뉴스를 보내고 있었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음식조절에 실패하면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식물인간으로 살고 있는 미국인 여성이었다. 눈을 깜박이며 약간 느슨한 표정으로 웃는 화면 속의 그녀는 튜브로 영양 공급을 받고 있는데, 남편과 부모 사이에 튜브 제거를 두고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저렇게 눈을 깜박이는데 어떻게 먹는 것을 끊어?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아내는 그 여자에게 공급되는 영양을 차단하는 것에 반대 입장인 것 같았다. 늘 정해진 시간에 배...
비계가 잘려 나간 고깃덩어리는 특유의 방법의 소스와 향을 가미해 적당한 온도로 구워진 스테이크로 식탁 위에 올랐다. 이미 예상한 대로 큰 접시 한쪽에는 갖가지의 익힌 푸르고 붉은 야채와 정원에서 막 핀 노란 소국 한 송이가 곁들여져 있고 복숭아 모양의 앙증맞은 분홍 초는 식탁 위를 밝히고 있었다.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식탁이 스스로 보아도 흡족하다는 듯, 붉은 와인이 채워진 잔을 들어 그가 채근했다. 내가 잔을 들어 그의 잔과 부딪으므로 우리의 식사는 시작되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고기를 자르고 와인을 마셨다. 그의 ...
캐나다에 살다가 한국에 나가면 모르는 언어가 많아서 아찔하다. 한국에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난감하다. 최근에 <케데헌>이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도대체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떤 케이크 이름이나 맛있는 초콜릿 이름인가 아니면 새로 유행하는 상표 이름인가 하고 헷갈린다.케데헌은 한국의 K-POP 아이돌을 소재로 북미에서 제작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벌써 2억 5천 명이 시청한 공전의 히트를 한 대단한 작품이다. 영어 K...
중고생 시절, 라디오 음악방송은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 밤늦은 시간, 카세트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사춘기의 혼돈스런 시기에 포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서둘러 녹음 버튼을 눌러 녹음테이프에 담았다. 곡의 앞뒤로 살짝 섞여 들어간 DJ의 멘트가 들어가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나의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간혹 공들여 만든 테이프 위에 동생이 덮어 씌워 버리면, 사소한 전쟁이 벌어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티격태격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난다.Adobe Stock마음에 드는 곡은...
내가 청소하는 대신 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그는 당신, 계란 프라이 먹을 거야, 커피 마실 거야?라는 질문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었다. 계란 프라이를 먹을 건가, 말 건가? 식탁 위에 계란 프라이가 놓여 있으면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식탁에서의 나의 식사 방법이었다. 된장찌개를, 김치를, 가족이 먹기를 원한다고 식탁 위에 올리던가? 여러 가지 반찬은 준비해 두면 그냥 식구들은 원하면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선택에 계란 프라이라고 특별하지 않았다. 나는 계란 프라이도 그렇게 대하고 싶...
트럼프의 즉흥적인 관세전쟁은 미국 법원으로부터도 제동이 걸렸다.지난 8월29일 워싱턴 연방 순회 항소법원은 국제 비상 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그의 관세정책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는데 이 판결이 미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그가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관세는무효가 되고 잠시 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윤기향 플로리다애틀랜틱대학교 경제학 교수트럼프가 간과하는 중요한 경제 원리가 있다.미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무역에서 거의 매년 무역적자를 보지만 이 적자로 인해 해외로 유출된 달러는 투자의 형태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recyc...
저녁에는 스테이크를 만들 거야. 와인도 곁들이자. 마치 이미 다 차려진 식탁 앞에 앉은 듯 사뭇 들뜬 그의 목소리에는 멜로디가 스며있다. 그는 오늘 저녁 식탁을 위해 냉동실의 고기 덩어리를 끄집어냈다. 돌덩이 같은 고깃덩이가 녹으려면 종일은 걸리겠다는 생각을 나는 마치 남의 일인 듯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고 있었다. 내가 부엌일에, 그러니까 음식을 만드는 일에 남의 일이듯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음식은 내가 만들게. 익숙하잖아? 요리하기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소스며 재료가 다른, 이쪽의 음식을 다시 배우는 일에 막막해...
지난 8월,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회담을 3시간여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난 것 같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호들갑을 떨었다.윤기향 플로리다애틀랜틱대학교 경제학 교수이를 보면 그는총 먼저 쏘고 나중에 조준하는 인물임이 맞다. 이 대통령은 그의 그런 전략을 간파하고동요하지 않았다.그의 심한 변덕은 중국, 브라질, 인도와의 협상에서 잘 드러났다. 지난 4월8일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를84%로 상향조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다시 중국의 팬타닐 마약 단속을 문제삼아 관세율을 125%로...
손으로는 꽃잎을 따면서도 아이의 눈은 여전히 날아다니고 있는 다른 나비를 쫓고 있었다. 아이의 눈이 별안간 한 곳에 머물렀다. 아이의 눈에서 야릇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손에 들려 있던 남은 꽃잎이 땅에 후루루 떨어졌다. 마악 날아 와 꽃 속에다 대롱을 꽂고 꽁무니를 치켜든 채 꿀을 빨기 시작하는 다른 나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아이가 다시 발소리를 죽여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한 발걸음은 몹시 조심스러웠다. 살금살금 다가간 손이 마침내 한창 꿀을 빨고 있는 나비의 날개를 덮쳤다. 아이의 손아귀에 잡힌 나비가 ...
내리막길이다. 마음은 급한데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추고 있다. 길 끝 사거리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유난히 짧아 한번 놓치면 보통 때도 지루할 만큼 기다려야 한다. 오늘 기말고사가 시작된다. 하필이면 내가 맡은 영어 시험을 보는 날이다. 담당 과목 교사는 시험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대기하며 고사 기간에 일어날 수 있는 돌발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제발 빨간 신호에만 걸리지 말아라.Adobe Stock마치 내 마음을 읽고 일부러 심술을 부리는 듯, 초록신호가 깜박거리더니 노란 불로 바뀐다. 멈춰 섰다가 늦을 것이냐, 신호를 무시하더라...
노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아내에게 나비와 비교되어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눈치로 꿰뚫어 알고 있었다. 나는 평소 직접 적인 표현보다 빙 둘러 변죽을 울리는 듯한 아내의 이러한 말의 습관을 참 싫어했다. 마땅찮으면 차라리 어머니처럼 화투판에다 부엌칼이라도 내리꽂으며 손등이라도 내밀던가, 어떻게 하나 두고보자는 듯 잠자코 있다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독한 말로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아내의 방법, 나는 그것을 아주 싫어했다. 비록 좋지 않은 운 때문에 지금까지 재미를 본 것 이상으로 많은 금액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긴 했지만,...
부끄럽다!나이 먹은 게 부끄럽다!요즘은 이런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잦다.나 자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라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우연히 접한 뉴스에서 교육부장관 후보 C씨의 인사청문회 현장의 영상과 기사를 보았다.음주운전, 논문표절, 학생에게 폭력행사, SNS 정치적 발언 등의 논란이 불거져 지명이 멈칫한 상태로, 그는 이미 3건의 전과기록을 갖고 있었다. (편집자 주: C씨 임명안11일 재가)교육부 장관이라면 국가 백년대계의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주무부서로서 교육적 철학과 소신, 도덕성을 필수로 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