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한국 매체로부터 11월 5일 미국 대선 출구 조사 결과가 언제쯤 발표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투표가 끝나면 전국에 곧바로 공개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각각 다른 6개 시간대가 있고, 선거제도가 주마다 다르고 계속 바뀌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시간대가 앞선 곳의) 출구조사가 공개될 경우, 미처 투표를 마치지 못한 곳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 대선 선거전 마지막 날인 4일 펜실베이니아주 대도시 피츠버그 유세 무대에 오르고 있는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왼쪽 사진) 부통령과...
오늘처럼 새벽 공기가 서늘할 때는 이부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잠은 벌써 달아났는데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뜸을 들이다가, 오래 전 이맘때쯤이 떠올랐다. 1999년경, 고국에서 봉급쟁이 할 때다. 직장은 여의도, 집이 일산신도시 <밤가시마을>이었다. 운전 때문에 퇴근 후, 혼자 홀짝거리기 위해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집에서 걸어 한 6분 거리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도 별반 없이 시멘트벽에 테이블 5개, 10평정도 크기의 작은 가게였다. 40대 초반이던 주인 부부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을 ...
제주 4.3 사건 발생 뒤 산간 지방으로 피신한 어린이들. 제주4.3아카이브 사진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13세에 겪은 일이다. 두 자매가 외가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즐비한데, 시신 위로 눈이 내렸다.자매는 시신의 얼굴에 쌓인 눈을 한 사람...
인터넷에서 K팝을 검색했다. 독일에서 K팝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최초로 신설했다는 소식부터 K팝에 빠져 한국에서 아이돌 데뷔를 꿈꾼다는 캄보디아 공주 이야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K팝에 대해 종잡을 수 없는 소식들이 등장했다.K팝에 대해 대체 무슨 이야기까지 나오려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한국의 K팝 간판 기획사 하이브가 미성년 아이돌 그룹 멤버를 대상으로 자극적인 외모 품평이 담긴 업계 동향 자료를 작성했다는 소식이 떴다.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최근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소식이 알려진 뒤 터진 또 한 번의 충격적 뉴스였다. K팝을...
오스트리아인 마를레네 엥겔호른(32)은 지난 6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2,500만 유로(약 370억 원)를 시민단체 77곳에 기부했다. 그는 독일의 화학기업 바스프(BASF) 창립자의 후손으로, 택스 미 나우(Tax Me Now)라는 단체를 만들어 상속세, 재산세를 통해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공식 석상에서 세금을 내는 게 꿈이라거나 나는 불평등한 사회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2008년 상속세를 폐지해 그는 세금을 낼 수 없었다.독일의 화학기업인 바스프(BASF)가의 상속자 중 한 명인 마를레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미국의 작가 존 하워드 페인(1791~1852)은 노래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에 이런 가사를 붙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부른 노래지만, 이제는 의문이 생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어떤 공간인가. 일본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48)의 장편소설 노란 집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게티이미지뱅크집의 의미를 처음 알려준 유사 가족노란 집의 주인공은 일본의 유흥주점 스낵바에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욕실도 없는 작고 낡은 집에서 사는 하나...
최근에 우리나라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상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 지나가는 말로라도 들어봤음 직한 노벨상이란 이름, 그중에서도 한 사람의 정신적 작업의 산물인 소설로,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즈음이면 늘 시인 한 분과 소설가 몇 분이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하다던 분이 불미스러운 일로 관심에서 멀어진 이때, 정말로 그 엄청난 상을 받을 거란 예상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하지 ...
강간문화, 내가 이 단어를 처음 읽었던 스무 살의 밤. 그 순간을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젠더, 가부장제, 커밍아웃같이 처음 들어본 낱말들을 사전 찾아가며 읽던 밤. 남성들은 강간문화(rape culture)를 공유하고 있다라는 문장에 덜컥, 걸려 넘어졌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직관적으로 이 낱말은 거슬렸다. 강간은 범죄 중에서도 흉악 범죄고 이는 극소수의 반사회적 남성이 저지르는 행위인데, 이를 두고 남성 일반의 문화라고 부르는 일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시월의 끝! 가을인가 했는데 어느새 11월이 코앞에 걸려있다.오늘 지나면 11월, 어물쩡 11월로 건너가고 만다는 생각이다.문득, 어물쩡이 가을의 대표적 언어가 되어 뱅뱅거린다.영어의 Autumn과 Fall.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다. Autumn은 14기말부터 고대 프랑스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13세기, 증가를 뜻하는 라틴어 autumnus 또는 auctumnus 에서 왔고,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수확을 뜻하는 Harvest를 사용했지만 16세기에 들어 Autumn으로 대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Fall은 건물의 붕괴,...
올해 노벨상은 여러 가지 특별한 화두를 던진다.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소설가 한강이 선정되었으며 물리학상은 최근의 인공지능(AI) 기술을 대표하는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개발했던 과학자들에게 수여됐다. 화학상 역시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예측하는 AI기술 개발자들이 수상자로 발표되면서 다소 파격적인 결과에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한편 노벨생리의학상은 miRNA(마이크로 RNA)를 각자 발견했던 빅터 앰브로스 박사와 게리 러브컨 박사가 받게 되었는데, 이들 논문의 공저자인 동양인 과학자 두 명도 관심을 받고 있다. 그중 한 명은 ...
2018년 10월 22일 캐나다 지방선거에서 만 58세 노숙자 출신 정치인 댄 카터(Dan Carter, 1960~)가 온타리오주 오샤와(Oshawa) 시장이 됐다.유권자들이 69.35%의 압도적 지지율로 그를 새 시장으로 선택한 것은, 15년여 동안 약물중독 노숙자로 살다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삶을 구원했듯이 시장으로서 실업과 약물 사태로 기진해가는 도시 경제와 시민의 삶을 되살려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캐나다 온타리오주 오샤와 시장 댄 카터. 그는 약물중독-노숙자의 삶을 극복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됐다. osha...
빛과 열을 동시에 받으면 폭발하는 무기 CTX 반출을 위해 작전 수행 중인 육군 소령을 하급자인 대위가 막아세웁니다. 대위는 대뜸 상급자에 검문이 있다며 불응 시 체포 또는 사살할 수 있다고 협박하죠.야 너 소속이 어디야!라며 발끈한 소령을 향해 대위는 말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육군 대위로 위장한 북한군 최민식 일당에 우리 군은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결국 CTX가 탑재된 차량도 빼앗기며 서울은 폭발 위기에 빠집니다.영화 쉬리에서 육군 대위로 위장한 북한군을 연기하는 최민식. 영화 쉬리 이미지컷100만 관객 찍기도 어렵던 시절...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가집니다.(모드 르안의 파리의 심리학 카페 중에서)제주 구좌읍 하도리 당근밭 위에 지은 박 반장의 서재는 이 책 속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의 한 카페를 본떴다. 책과 사람과 마음이 머물다 가는 공간으로 찾아오는 이들 누구에게나 활짝 문을 열어놨다. 서재지기는 여경이라 낮춰 불렸던 대한민국 여성 경찰의 전설, 박미옥(56)씨다. 스물세 살에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성 형사가 됐다 33년 3개월을 경찰로 살고 퇴직한 그는 여전히 박 ...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정신으로 21세기 사뮈엘 베케트로 불리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인 2023년 10월 5일 한 언론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슬로=AFP 연합뉴스아이는 집 앞에 홀로 서 있다. 아이의 눈앞에는 피요르드의 새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하여 초록과 검정, 갈색의 산 그림자가 그대로 비친다. 물가에는 흰 보트가 한 척 묶여 있다. 가족들은 아직 모두 잠든 아침, 가장 먼저 잠이 깬 아이가 잠옷 차림 그대로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침 햇살은 환하고 공기는 부드러우며 살짝 안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