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 문학서재 마음의 티끌 걷어내기 - 경거망동(輕擧妄動) 2

독일에 사는 한 독자의 권유로 A사(寺) 사이트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의 시와 수필을 올려왔다. 나의 블로그에, YMCA의 문화산책을 진행하면서 다룬 시와 수필들을 K-문화산책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공간을 통해서 독자가 된 분이다.A사(寺) 사이트의 글방을 이어가면서 스님과 단골보살님들의 댓글과 단체방 등으로 의견도 주고받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듣고 배우면서 불교식의 마음가짐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그런 중에 얼마 전 불교관련 책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있었다. 그 주고받음의 과정에...

권천학 문학서재 갑술이 아저씨의 한 마디

KMS(K문사방) 강의를 마치고 나서 뒷정리를 하는데, 머리가 띠잉~ 했다. 강의를 진행한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 나가가다 뭔가 생각이 딱 막히면서, 멍해졌다. 바고 그 순간, 경거망동하지 않았나? 회초리가 뒷덜미를 후려쳤다.어녹다를 설명할 때였다. 설명을 잇는 과정에서 한 겨울의 대관령 황태덕장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런데 대관령얘기를 왜 했지? 어디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지? 그 이야기로 하기 전에 뭔가 분명 핵심적인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뭐였지? 뭐였지? 틀림없이 뭔가 내용이 담겨있었...

권천학 문학서재 두 개의 구사일생(九死一生)

11월로 들어서자마자 구사일생을 떠올리는 두 개의 기사가 들이닥쳤다. 하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 병사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전자는 파병된 북한병사가 전장(戰場)에서 앞서 죽은 전우의 시체 밑에서 죽은 척하여 확인사살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며 파병한 북한병사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한 명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혔고, 후자는 대저택에서 사는 7가족 중 그 집안의 셋째인 11세의 여자아이가 유일하게 살아남아 범인은 죽은 작은오빠가 아니라 15세의 큰오빠라고 사건의 팩트...

권천학 문학서재 가을의 언어 ‘어물쩍’

시월의 끝! 가을인가 했는데 어느새 11월이 코앞에 걸려있다.오늘 지나면 11월, 어물쩡 11월로 건너가고 만다는 생각이다.문득, 어물쩡이 가을의 대표적 언어가 되어 뱅뱅거린다.영어의 Autumn과 Fall.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다. Autumn은 14기말부터 고대 프랑스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13세기, 증가를 뜻하는 라틴어 autumnus 또는 auctumnus 에서 왔고,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수확을 뜻하는 Harvest를 사용했지만 16세기에 들어 Autumn으로 대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Fall은 건물의 붕괴,...

권천학 문학서재 지식의 편집시대

글을 쓰고, 강의용 PPT 파일을 만들고... 이어지는 일들로 늘 바쁘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런 일들이 부담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전혀 아니다. 시간을 쪼개어가며, 잠을 덜어가며 기꺼이 하고 있다. 내가 좋아서... 때문이다.나는 유난히 호기심도 많고 상상력도 좋다. 그런 욕구를 채우는 일이기도 해서 스스로 재미있어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글을 쓰고 강의용 파일들을 만드는 일이 의외로 수월해졌음이다. 좋기도 하고 때로는 손쉽기도 하다. 한편으로 좀 허퉁...

권천학 문학서재 나와 무궁화

나와 무궁화의 대화가 시작된 것은 새집으로 이사 와 첫 밤을 보내고 난 바로 그 첫 새벽부터였습니다. 새집의 설렘으로 일찍 잠이 깨었습니다. 모두들 고단함으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각이어서 조심스레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짐들 사이를 헤집고 뒷마당 쪽 문을 여는 순간, 희붐한 새벽공간을 뚫고 눈을 찌르듯 박혀오는 것이 있었습니다.오! 무궁화!새하얀 꽃잎에 새빨간 꽃심. 색깔이 유난히 선연해서 눈이 부시다 못해 마음까지 부셨습니다.백의민족이 떠오르며 저릿했습니다. 이사하느라고 분주했던 전날까지도 봉오리로 있어 잠...

권천학 문학서재 항아리에서 나온 아버지들

6월이 갑니다. 호국보훈의 달이면서 단오(端午), Happy Fathers Day(아버지의 날)이 있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저의 <KMS(K문화사랑방)>에서 6월 마지막 시간에 그런 주제들 다루었고, 그중에서 오늘은 항아리에서 나온 아버지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오늘의 현실을 비춰볼 수 있는 민담(民譚)으로 꾸며봤습니다.게티이미지뱅크.한 농부가 밭을 매다가 괭이 끝에 뭔가 부딪쳐 소리를 내는 물건이 있어서 조심스레 캐보았습니다. 뜻밖에도 땅속에 커다란 항아리가 묻혀있었습니다. 그 항아리를 집으로 가져와서 잘 씻어...

권천학 문학서재 위험한 초여름의 숲

야, 네 엄마, 아직 안 왔냐?헛간에서 재소쿠리를 들고나오던 아버지가 묻는다.고추 따러 밭에 갔는데요.아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한다.벌써 저녁밥 할 때가 되어 가는데, 이 여편네가 왜 안 오는 거야...귀담아들을 리 없는 아들인 줄 알면서 들으라는 듯,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며 재를 듬뿍 퍼 담은 재소쿠리를 뒤꼍 텃밭으로 가는 아버지.잠시 후, 뒤꼍을 돌아 나온 아버지는 빈 재소쿠리를 헛간에 두고 나오는 아버지는, 뭔가 짚이듯,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옷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며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쪽...

권천학 문학서재 우주과학과 진학안내

며칠 전, 손자와 함께 오랜만의 외출을 했습니다. 한인여성회의 우주과학 세미나와 입학 안내 행사였습니다. 제가 점찍은 것은 우주과학이라는 단어였고, 입학 안내라고 하니까, 요즘 12학년인 손자가 막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여러 가지 모색을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했습니다.저는 평소과학에 관심이 많은 데다 특히 우주과학에 관한 관심도 높아서 늘 그런 쪽에 귀를 기울여왔습니다. 제가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그런 분야에 관한 공부의 기회가 별로 없었고 저 스스로가 다른 공부에 치어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세상을 살면...

권천학 문학서재 나, 길들이기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맥마이클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맥마이클 미술관은 가끔 가족 나들이를 하는 곳입니다만, 오늘의 나의 행장이 약간 달랐습니다. 평소에 메지 않던 배낭을 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차에 타고 있던 가족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는 듯했습니다.오늘부터 외출할 땐 배낭을 메고 다니기로 작정했지~ 하고 묻지도 않는 대답을 했습니다.평소에 가방이나 물건을 들고 다니는 일을 매우 싫어해서 외출할 때는 항상 맨몸으로 다녔습니다. 당연히 들고 다녀야 하는것처럼 여겼던 핸드백도 젊어 한때였을 뿐, 오히려 배낭으로 바꿔 무겁게 ...

권천학 문학서재 런던의 택시 운전사

뇌 건강과 치매 예방을 위해서 공부합시다!얼마 전, 뒤늦은 봄눈이 내린 아침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히자 모처럼 하얀 세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눈이 적어서 겨울맛이 덜 난다고 아쉬워하며 벌써 스며드는 봄기운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여서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예년의 겨울에 비하여 눈이 적었던 토론토의 올겨울, 왠지 겨울맛이 적은 것 같은 아쉬움 속에 성급하게 전해져오는 고국의 이른 봄소식에 이번 겨울은 그냥 가는가보다 하는 터여서, 눈이 하얗게 쌓인 창밖의 눈이 그래도 겨울티를 내는구나 했는데, 불쑥, 떠오른 것이...

권천학 문학서재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지난 칼럼 애플레이션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란 말을 언급했으니, 이번엔 그 스크루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해야 하겠기에 이어서 이 글을 후속으로 쓴다.애플리케이션이란 말은 나를 옛날의 경제학 강의실로 끌고 갔지만 스크루플레이션은 스크루가 경제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놀라움과 함께, 오래 전의 경제학 강의실로 나를 끌고 갔다. .스크루플레이션이란 말은 경제 공부를 했던 강의실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라서 검색해 볼 수밖에 없었다.게티이미지뱅크.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screw)와 물가 ...

권천학 문학서재 개기일식(皆旣日蝕)의 깨우침 중에서

개기일식이 가까워지면서 KMS(K문화사랑방)의 회원들도 정보와 사진들을 공유했다. 할리팩스에서 살고 있는 한 회원 부부는 개기일식의 시간에 맞춰 뉴브런즈윅으로 관찰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다녀온 후 줌으로 진행되는 KMS(K문화사랑방)의 토론 시간에 감동적인 소감을 들려주기도 했다.나 역시, 모든 식구가 각자 바쁜 일정 때문에 떠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대신 베란다에 랩탑과 몇 개의 전자 기기들을 설치해 놓고 검은 안경들을 쓴 채, 일식(日蝕)을 중개하는 NASA의 방송화면을 열어 놓고, 관심사와 정보들을 나누면서 토론토의 하늘을 ...

권천학 문학서재 애플레이션(Applation)

지금 한국에선 고물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과일값 인상이 물가 인상을 주도하는 중심이 되고, 사과가 단연 주연급 스타가 된 모양새를 빚고 있다. 물가(物價)는 당연히 경제 안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물가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중의 하나로 각국이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애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나와 쓴웃음을 짓게 한다.애플레이션이란 사과(apple)+인플레이션(inflation)에서 나온 신조어이다. 인플레이션은 누...

권천학 문학서재 진단학회(震檀學會)와 진단시(震檀詩)

봄! 삼일절! 3월 들어 첫날, 의미 깊은 책 한 권을 받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이었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金壽卿)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발레 그림 시리즈 중의 Dancers Rehearsing(무용수 리허설)이 프린트된 카드가 책갈피에 끼어있었다. 그 카드에 적힌 예의 바른 글줄에서 출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정성과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의 사회학과 교수인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가 일본의 경도(京都)인 문서원(人文書院)에서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