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부시던 햇빛과 꽃, 단풍과 열매의 붉은 빛은 어디 가고, 사방은 온통 잿빛이다.하늘이, 날씨가, 날씨에 휘둘리는 햇빛까지 한 덩어리다.차악 가라앉은 우울한 기운을 경계하는 이 동네 사람들은 그래서, 온갖 이벤트로 긴 겨울을 보낸다.12월 초, 하우스 투어로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이 동네의 로터리 클럽 주최로 해마다 시행되는 하우스 투어는 일종의 자선 행사로, 여름의 정원 투어처럼 아름답게 꾸민 몇몇 남의 집안을 돈 내고 구경하는 것이다.하우스 투어가 끝나니 지난 14일 토요일, 온 동네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져서 소리를 ...
최근에 우리나라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상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 지나가는 말로라도 들어봤음 직한 노벨상이란 이름, 그중에서도 한 사람의 정신적 작업의 산물인 소설로,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즈음이면 늘 시인 한 분과 소설가 몇 분이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하다던 분이 불미스러운 일로 관심에서 멀어진 이때, 정말로 그 엄청난 상을 받을 거란 예상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하지 ...
늦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 나는, 눈만 뜨면 걷기에 편한 신발 챙겨 신고 집 밖으로 나선다. 행여 잠 방해할까 고요한 시골 마을엔 해도 조심스럽게 뜬다.집을 나선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주로 온타리오호숫가다. 멀리 수평선 위에 섬처럼 뜬 토론토의 고층 건물과 씨엔 타워의 실루엣으로 나는 그날의 토론토 날씨를 짐작한다.아침의 고요를 깨트리는 것은, 새들이나 바람이다.나처럼 잠이 적은 새들은 호수 면에 닿을 듯, 또는 좀 더 높이서 끼룩끼룩 소리 내며 열 지어서 날고, 고요를 못 견디는 바람은 아직 잠결이던 호수를 흔들어 깨운다...
캐나다의 노벨상 작가 앨리스 먼로(1931∼2024)의 딸이계부로부터 성학대(9일자 3면)를 당했다고 주장한 기사를 접한 나이아가라의 한인작가 김외숙씨가 본보에 보내온 글을 소개합니다.노벨상 작가 앨리스 먼로. CP통신최근에,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캐나다의 노벨 수상 작가 엘리스 먼로의 딸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어떤 처신을 폭로한 기사였다.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던 딸이 아홉살 때 어머니의 집 방문 중, 의붓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에 반응한 어머니에 대한 폭로였다. 남편이 딸에게 몹쓸 짓을 가했음에도 그를 너무...
사노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어떤 일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없던 일이듯 잊을 수 있다면 좋을 일의기억은 때로 너무 집요하고 짓궂다. 지난 오월 중순부터 한 달간 서울엘 다녀왔다.서울에 간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내 아이 아버지의 산소를 개장하는 일이었다. 산소 개장은 서른다섯 해 전, 서른여덟 나이에 눈을 감은 아이 아버지의 묘를 새롭게 가족묘로 바꾸는 일로, 크다면 아주 큰 행사였다.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장례문화로 쓸 땅이 점점 좁아지...
그의 기억의 창고 문을 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기억을 잃어가던 그와 대화를 시도하면서부터였다. 소리로 발산되어야 할 무수한 언어들이 주인의 기억력 문제로 창고 속에서 묵음으로 갇혀있었다.내가 그 창고를 열지 않으면 그는 엄청난 용량의 기억이 든 창고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잊을 것이 분명했고, 그의 행적 중 많은 부분이 갇힌 채 질식하여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가 그 문을 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랄까, 희망을 느낀 것은 그가 오랜만에 보여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였다.낸시 누나는 마음이 여렸어. 베개 던지며 장난하다가도 가끔 울...
오늘, 4월 8일에 달이 햇빛을 가리는 현상, 개기일식이 있었다.이 엄청난 우주 쇼를 나이아가라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었고, 나는 집안에서 볼 수 있었다.나이아가라 시에서는,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올 것이라며, 그 많은 사람이 이 작은 도시에 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라든가, 교통체증, 응급 서비스와 휴대 전화 불통의 가능성, 등 다방면에 대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한다.언스플래쉬.몇 년 전 서울 방문 중, 인산인해의 광화문 집회 현장을 본 적 있는데, 그 인원보다 많을 일백만 명의 관광객이 하루...
-짧은 소설-그것은, 관계에 대한 내 최종의 생각이었다.더 많을 우리 앞의 시간을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삶에서 누린 눈부시던 시간이 결코 짧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터널 속에 있다는 사실이었다.그만하려고요. 그러나, 마주하고 이별을 말하는 것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어서 내 입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가 여상 하게 날 보았다. 나, 그만하려고요. 그가 알아듣지 못했다고 여긴 내가 한 번 더 그 말을 한 그때서야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그 눈은, 어떻게 그런 말을 ...
내 유년의 기억에는 양조장이 배경으로 있다. 사철 술 익는 발효실이 있고, 마른 목 축이고 컬컬한 마음 쓰다듬던, 막걸리를 빚던 집이었다. 내가 사는 이 동네,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Niagara On The Lake)에도 양조장이 많다, 바로 포도로 와인을 빚는 와이너리다. 이곳에는 포도 농장뿐 아니라 복숭아, 사과, 체리, 배 등의 여러 과실 농장도 많은데, 토양과 바다 같은 호수 영향을 받는 기후와 일조량 등이 포도 등 과실 농사에 알맞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복숭아 등의 농장이 포도 농장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난해 가을 그날, 나는 인사동 그곳에 갔다.제16회 민초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그곳, 수상자는 텍사스에 거주하시던 소설가이자 시인이신 손용상 선생님을 대신해 부인께서 대리 수상을 하신 자리였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서울을 방문 중이어서 참석할 수 있었다.주최 측인 민초 문학상 관계자와, 민초 이유식 선생님과 가족, 한국 문단의 여러 관계자와 다수의 작가가 참석한 자리였다. 그러니까 수상자는 편찮으신 손용상 선생님을 대신해 미국 텍사스에서 수상을 위해 부인께서 그 자리에 계셨고, 상을 주실 민초 이유식 선생님께서는 상을 주기 위해 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다.기독교적 인간애를 주창한 작가의 사상을 압축해 보여준 작품으로,인간은 내면에 든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란 메시지를 품고 있다.작가는 작품 속 에피소드에서,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의 질문을 던졌는데그중 두 질문의 답이, 인간 내면에 있는 사랑과 그 사랑으로 타인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이미 오래전에 읽어 기억에도 희미한 작품을 내가 새삼 떠올린 이유는, 경우는 달랐지만 나 또한 사정이 절박했을 때, 그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내 짝 힐스 목사가 몸...
캐나다에 온 지 올해로 스무 해가 된다.스무 해 동안 같은 동네, 같은 집에서 사는 동안 이웃은 많이 바뀌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세상을 뜨시기도 했고 이사를 오간 이웃도 많다. 대부분 대도시에서 열심히 일한 후, 아름답고 고요한 환경 속에서 노년을 누리기 위해 이사 오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게 새겨진 캐나다 사람에 대한 인상은 아주 정중하고 친절하다는 것인데, 둘 다 이웃이나 동네 주민들을 통해 느낀 인상이다. 작년 어느 때에 새 이웃이 이사 왔는데 외양이 중후하게 보이는 장년의 두 남자였다. 두 남자의 관계를 알 수 없던 ...
매해 기상이변의 현상을 매스컴을 통해 보고 들었지만 실감하지는 못했다.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어떠하다고 했어도, 기온이 높아져 더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시달린다고 했어도 내가 사는 동네에 이변이 없었으니 세상 어딘가 남의 일이란 생각이 솔직히 없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미욱하니 올여름, 지난 7월부터 한 주에 서너 번씩 집중적으로 쏟아지던 폭우를 경험하며, 비 없는 무더위, 숨이 턱턱 막혀야 할 여름에 시도 때도 없이 퍼붓던 비로마침내 내 집의 지하에 물이 스며들면서야 기상이변이 내 일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비,...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교육과 관련된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교사의 죽음, 대학교수인 야당 혁신 위원장의 설화, 장애 자녀를 둔 웹툰 작가의 교사에 대한 처신 등, 개별적인 사안이지만 셋 다 교육과 관련이 있는 일이다.서이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물론, 투표권을 두고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일대일로 표결해야 하냐는 아들의 말에 엄마로서, 교육자로서 왜 그게 되게 합리적이지 않고 맞지 않는 말인지를 알아듣게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되게 합리적이라 말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 그리고 자폐 자녀를 둔 웹...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은 창조와 창작의 사전적인 간단한 의미이다.(위키 백과, 옥스퍼드 백과 참조) 실은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지만, 우리 의식 속에 있는 두 단어, 창조와 창작의 의미의 차이는 꽤 크다. 특정 종교를 두고 있는 사람에게 창조는, 신의 천지창조의 의미가 될 것이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아무리 새로 만드는 것,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드는 것이라 할지라도 둘은 서로 다른 조건의 생성의 환경을 두고 시작한다. 그러니까 창조가 애초에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뭔가가 존재하도록 하신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