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숙의 문학카페 난해한 관계

카톡 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카톡을 확인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은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의 일상일 것이다. 나도 다르지 않아서 눈 뜨면 손이 먼저 휴대전화로 가고 아마도 하루 시간 중 내 손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것이 휴대전화일 것이다. 오늘, 서울서 온 카톡의 한 내용이 유난히 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한 유명 시인의 자전 에세이를 읽고 쓴 글로, 유명 시인은 내 모교의 교수이셨다. 유명한 분일수록 자신의 삶을 그대로 다 드러내는 일에 용기가 필요할 것이고 독자의 호기심 또한 높을 것인데 그분이 그러함에도 드러내신 이유는 ...

김외숙의 문학카페 연인 만나듯

더위에 약한 나는 긴 여름이 늘 부담스럽다. 여름을 맞기도 전에 어서 벗어날 궁리부터 하는데 아무리 궁리해봐야 다 겪지 않고는 결코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런데 올여름만큼은 어서 가라고 재촉할 수 없다. 재촉은커녕 가을이 더디게 오도록 여름을 붙잡아 앉히고 싶은 심정이다. 돌아서려는 연인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은 이 얄궂은 심정의 이유는 이 여름이 바로 내 인생 육십 대의 마지막 여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가는 세월의 자락을 잡고 애달파 한 적이 있었던가? 마침내 시간을 금쪽같이 여길 줄 알게 되었으니, 이것 하나...

김외숙의 문학카페 어느 날의 일화(逸話)

우편물을 가지러 나간 그가 현관문 앞에서 날 불렀다, 외숙, 나와 봐! 하고.왜?컴퓨터 앞에서 한창 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긴 내가 내심 귀찮아하며 물었더니 새가 있어. 라는 것이었다.새가 뭐 한 두마린가, 하며 발딱 일어서지 않고 미적댔다. 정말 새가 어디 한두 마린가? 뜰에 새 모이통이 두 개나 있고, 새들은 제집인 듯 날아오고, 나는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을 깬다.그는 여태 새를 보고 있는지 날 불러놓고 고요하기에 이번엔 내가 궁금해 보던 드라마를 정지시켜놓고 나갔다, 새, 첨 보나? 하면서.봐라, 저 새. 아무래도 병든 것 같아....

김외숙의 문학카페 발효의 시간

최근에 속성으로 막걸리를 만들 기회가 있었다. 막걸리 만드는데 필요한 준비된 재료를 물과 섞어 24시간 기다리기만 하면 술이 되는, 초간편 막걸리 만들기 방법이었다.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24시간 만에 술이 된다는 거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24시간이라는 그 숫자는 좀 미심쩍었다. 막걸리는 발효 술이고 발효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술이 익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 궁금증이었다.믿음이 가지 않던 이유는 막걸리에 대해서라면 나도 문외한은 아니기 때문이었다.내 인생의 첫 기억은 양조장에서부터였다. 유년을 양조장...

김외숙의 문학카페 지금, 동거 중

동거란 말은 한 집에 누구와 함께 산다는 의미다.나는 요즘 동거 중이다, 서울서 온 아들 식구와. 지난 해 12월 중순부터 올 한 해 동안 아들 내외와 두 아이들과의 동거다.아들내외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데, 법이 정한 연령의 자녀를 둔 부모는 한 해 동안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해 지난 12월 중순에 서울서 왔다.스무 해 쯤 전에 내가 처음 이 땅에 왔을 때 아들과의 안부의 통로는 주로 국제 전화카드를 이용한 통화나 이 메일이 전부였다. 그 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안부를 주고받는 방법도 진화하여 요즘은 카톡으...

김외숙의 문학카페 먼 훗날에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이 세상 사람들은 같은 이유로 참 힘들었다. 11월에 출간한 장편소설 <엘 콘도르> 퇴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코로나와 백신 사이를 오가며 나도 꽤 우울하게 지냈을 것이다.초고를 마치고 나면 나는 한동안 작품을 덮어두는데 손에서 작품이 떠나있을 동안 손과 눈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다시 보고 싶을 때까지 작품은 내 시선에서 놓여나게 되는 것이다. 늘 작품을 쥐고 있다가 다 놓고 나니 손이 심심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 하나를 시도했는데 바로 청국장 만드는 것...

김외숙의 문학카페 짧은 소설 집에 가다

집에가다 그날,내가왜집을나섰는지에대한구체적인기억은분명하지않다.하고많은갈곳을두고장볼일도없으면서도그혼잡한경동시장통에다발을들여놓은것으로보아내속이뭔가로진창같았나보다,그래서그것에휘둘리고있었나보다,하고짐작만할뿐이다.경동시장을걸으며웬만큼마음을다스려놓고,그래놓고기어코그진창의기억속으로걸어간것은내기억에의하면분명그수족관때문이었다.시장을나와집으로가는지하철을탈요량으로대로를따라걷는데바로길옆,활어횟집이란간판아래에놓여있던쌀뒤주만하던그수족관.이제는헤엄도버겁다는듯배를깔고바닥에누운,손바닥보다큰물고기들과잔챙이들이흐릿한물속을어지럽게유영하던그...

김외숙의 문학카페 그것이 유감이다

요즘한국서날아오는몇몇소식들이연거푸충격을준다.이름도요상한천화동인,화천대유에오징어게임같은것이다.이것의공통분모는천문학적숫자의돈이다.하나는상한냄새가풀풀진동하는비리,다른하나는네가죽어야내가산다,곧네가죽어야내가그돈을가질수있다,라는비정한스토리인데다르다면하나는현실에서일어난일이요,다른하나는허구일것이다.아니허구인지실제의일인지는모르겠지만그냥허구라믿고싶고그래야한다.작품이면에숨겨진주제는분명따로있겠지만표면적으로는게임에진모든사람은죽고한사람만이겨그큰돈을갖는다는무시무시한이야기이기때문이다.돈에있어서백만이란숫자가내가체감할수있던가장큰숫자였을때가있었다.그뒤돈의가치가달라지...

김외숙의 문학카페 그 밤의 해프닝

밴프에 사는 큰아들 내외가 온다고 한 것은 지난 초봄이었다.4월 중으로 오겠다고 해서 3월부터 나와 내 짝은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들 내외 오면 우리 여행 가자. 우리 집 큰아들 내외가 온다는데 토론토에 사는 여류 두 분이 난데없이 여행 가자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아들 내외와 아버지가 오붓하게 시간 보내게 하고 나는 한 사나흘 휴가를 하라는 것이었다.토론토의 그분들은, 연세 많은 짝과 사는 내가 자유도 없고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여긴다. 사실 나는 구속된 것이 아니어서 비록 함께이기는 하지만 다닐 곳 다 다니고, 작...

김외숙의 문학카페 그 문장 (짧은 소설)

그 문장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문자를 줄이고 이모티콘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둘 사이의 관계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던 균열의 의미였겠지만 나는 인식하지 못했다. 설령 인식했다 할지라도 아무런 다툼 없이도 사람 관계에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그와 나는 만난 적이 없다. 만날 가능성도 없었다.그것은 아득한, 너무나 아득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곳인가 싶도록 먼 그와 나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그와 나의 만남은 문자로만 가능했다.당신을 사랑해요.어느 날 그로부터 이...

김외숙의 문학카페 꽃과 시인

내가 조금 할 줄 아는 것 중에 오랜 연습 끝에 얻은 솜씨가 몇 있는데 머리 깎는 일은 그 중 하나다.Niagara On The Lake에서 토론토까지 가 몇 번 머리 손질을 했었는데 왕복 4시간 여 걸리는 거리, 기다리는 시간, 그러니까 머리가 길 때마다 장거리를 오가려니 시간도 아깝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어서 집에서 조금씩 자르기 시작한 것이 어언 열여덟 해 째다. 내 손으로 잘랐으니 모양이 오죽할까마는 머리 좀 더 잘 자른다고 해서 더 고와보일 나이도 아니어서 대충하고 사는 편이다.머리 깎기에 웬만큼 익숙해진 나는 어느 날부...

김외숙의 문학카페 우리가 시간을 묻는 이유

며칠 전 서울에 사는 동생이 전화를 했다.통화 중에 동생이 언니야, 그 영화, 언니는 안 보는 것이 낫겠더라. 하고 말했는데 그것은 내가 이미 그 며칠 전에 본, The Father이란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였다. 동생이 그 영화를 보내 놓고 다시 전화해 안 보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한 것은 점점 기억을잃어가고 있는 내 짝을 의식한, 그래서 힘들지도 모를 나를 더 힘들게 할까 봐서였다.앤서니 홉킨스는 그 영화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잘 해내 큰 상을 받았는데 나는 내 짝, 힐스 목사를 생각하며 그 영화를 봤다. 사람이 평생 ...

김외숙의 문학카페 말(言)을 묻다

유난히 마음이 개운치 않은 날이 있다.말을 많이 한 날이다.하고자 한 말의 핵심은 단어 하나일 수도 있는데 말에다 말들을 얹은 날이다.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될 일에 목소리까지 높인 날이다.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후엔 그래서 늘 한 사나흘 뼈저린 후회를 한다.그래서 기도 중의 하나가 말이 많다 싶을 때는 입을 좀 다물게 해 주소서.인데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도 스스로 자제를 못하니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지난 한 해 동안 사람들은 타의 또는 자의적으로 사회생활을 절제해야 했다. 우선 강제로활동 반경을 좁혀놓고 사람 간의 왕래...

김외숙의 문학카페 몰라도 된단다

손자와 손녀는 오학년이 되고 이학년이 되었다.가까이 산다면 서로 나눌 것이 너무나 많은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차단당하거나 생략하며 해를 넘겼다. 이래서 못 만나고 저래서 건너뛰다가 나중에 사람 노릇하며 살 뭔가가 남기나 할까 생각하노라면 참 씁쓸하다.이제 아홉 살이 된 손녀는 위의 송곳니가 빠진 채인데 그래도 내 눈엔 예쁘고 사랑스럽다. 입학식부터 온라인으로 시작해 한 해 동안 온라인 수업을 받아 온 손녀는 손끝이 야물어서 뜨개질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려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고 가끔 자랑을 해서 아, 다행이다, 할매를 닮지 않아서...

김외숙의 문학카페 프러포즈

지인이 밸런타인데이라고 했다.밸런타인데이에 마음 설렐 나이도 아닌 나는 오히려 모처럼 맑고 화사한 햇살에 끌려 집을 나섰다.한참을 걷고 있는데 하얀 경비행기 하나가 낮게 천천히 내 머리 위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행기 꼬리에 내 눈으로도 읽을 수 있도록 크게 글을 새긴 긴 사각 플래카드가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비행기가 연을 날리는 것 같았다.우리 동네 Niagara On The Lake 약간 외곽에는 작은 비행장이 있다. 토론토에서 이 동네를 찾는 대부분의 차량은 바로 그 비행장을 왼쪽에다 두고 우회전해 일직선으로 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