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같은 형과 형수에게 나의 장래를 의논하기 위해 그렇게 찾았을 때는 관심조차도 없더니, 가까스로 한 결정에 축하는커녕 엉뚱한 감정을 앞세워 애꿎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나는 괘씸했다. 필요로 했을 때는 그렇게 자신들의 감정에 사로잡혀 외눈 한 번 주지 않더니 이제 와, 다 정해놓은 이제 와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불쑥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그러기에 진작 화해하고 동생의 장래에도 관심 좀 두지 싶은 원망이랄까? 그러기에 형이 집에 좀 계셨으면 좋았잖아요, 형하고 의논하려고 제가 얼마나... 관둬...
형이 골프클럽이나 티미, 그리고 자신의 벤츠를 만지고 손질을 하는 것이 이미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지만, 형수와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후부터는 모든 신경을 오직 그것들에게만 두는 것 같아 그 모습도 거슬린다.닦을수록 더 반짝이며 차가운 기운을 드러내는 골프클럽 때문인지 내 마음속에서도 금속보다 날카로운 반감이 생기는 것 같다. 비록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왜 그랬어야 했는지에 대한 관심의 시선을 한 번만이라도 형수에게 보낸다면 이 집안이, 두 사람의 관계가 이토록 냉랭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문득, 형이 수족처럼 여기는 벤츠가...
왜, 할 말 있나? 형이 손과 눈길은 티미에게 주고 있으면서도 기척으로 이상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 같았다. 형은 형수의 말은 여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상무가 뭔가를 말하려 입을 열려다 도로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리고 명심해, 생각보다 뉴욕이란 바닥, 좁다는 거. 형은 여전히 눈길은 주지 않은 채, 그러나 차갑게 내뱉었다. 아주 잠깐 뭔가를 말하려 하던 이상무가 이제는 방법이 없겠다는 듯 내리뜬 눈을 다시 한번 질끈 감으며 다문 입술에다 힘을 주었다. 형수는 형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
색소폰 음률 속에서도 인기척을 감지했던지 이상무가 형수의 목에 두른 팔부터 얼른 뽑아냈다. 순간적으로 반응한 그의 눈빛이 깨 포대를 갉다가 진돗개를 발견한 생쥐의 그것 같았다. 그의 본능의 촉이 쥐구멍이라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상무가 급히 팔을 뽑아도 형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기어코! 뜻밖의 전경에 어리둥절해하는 형보다 오히려 내 눈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기어코 일을 만들고 마는 형수 때문에 가슴은 벌렁대고 머릿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쥐새끼 같은 자식! 내가 이상무에게 두었던 시선을 끌어당겨 옆의 형을 바라보았...
그건 세금 보고를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민데, 실은 내가 술 상무 시절의 그 눈치로 때려잡은 것이 아니라, 당신 형수란 사람이 스스로 털어놓은 거요. 정신이 아뜩했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손을 쓸 수 있는 지경은 이미 진작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정말 형은 집안에다 고양이인 줄 알고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다.마치 먼저 술에 취해버린 듯 쇼크로 내 정신이 아뜩할 때, 이상무의 눈빛은 교묘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아마도 한때의 그 술 상무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딴 욕심 없어요, 상생하자는 거지. 사장님도 살고 나도 사는. ...
아무리 사납고 영리한 진돗개를 세 마리나 풀어놓아도 공장 안에는 식품 포대를 갉아 구멍을 내는 생쥐들이 설치고 그 진돗개들이 으르렁대도 생쥐들은 약 올리듯 저 빠져나갈 구멍은 두고 있었다. 그러나 동서남북을 날아다녀야 하는 형은 집안에 심각한 구멍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나는 그것이 갑갑했다. 구멍을 만드는 생쥐는커녕 이상무란 사람을 그의 능력과 함께 철저하게 믿었다. 한때 형이 몸담았었던 회사를 위해 펼쳤던 그 능력을 이제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해 마음껏 펼칠 수 있음은 이상무라는, 젊었던 한때의 자신과 같...
형이 참기름 냄새도 돈 냄새도 좋아한 줄은 형수도.... 그만두세요. 그런 의미 아니란 건 삼촌이 더 잘 알잖아요? 술기운에 어눌한 것 같아도 형수의 말투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말꼬리를 잘려버린 나는 더 이상 합당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형수가 다시 잔을 들며 시큰둥하니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죠, 지금까지는. 돈? 돈은 왜 벌죠? 형수가 대들 듯 다시 말했다. 돈을 왜 벌다니, 그 이유도 모른 채 형수는 몸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도록 일한 것인가? 형수는 대기업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다 본...
구태여 형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말에나 찾아와 기껏 몇 시간씩 서성이다가 가는 내 몸에서도 참기름 냄새는 배어 이튿날 학교에 가면 놀림 받을 때가 있었다. 무슨 냄새냐며, 가끔 친구들이 놀릴 때면, 내가 만든 향수 좀 뿌렸다며 농담으로 넘기곤 하는데, 자신들의 몸에서는 더 역겨운 냄새를 풍기기도 하는 그들의 예민한 후각에 나는 언제나 혀를 내두르곤 했다. 나도 그랬는데,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형수에게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왜, 가시가 되고 상처가 되도록 했을까? 내가 알기로 참기름 냄새는...
이제 공장 안에는 세 마리의 진돗개만 있을 뿐이다.최신식 보안장치를 했음에도 형과 형수가 개, 그것도 진돗개를 세 마리나 공장에다 둔 것은 쥐 때문이다. 수입한 깨와 온갖 식품을 취급하는 형의 공장 안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있어 그런지 쥐가 끓었다. 쥐들은 깨 포대에다 구멍을 뚫는가 하면 밀가루와 캘리포니아 산 쌀 포대를 뚫기도 했다. 아무리 약을 놓고 덫을 놓아도 감당을 할 수 없자 형은 진돗개를 얻어다 두었다. 낮에는 묶여있는 세 마리의 사나운 개를 모두가 퇴근하는 밤이면 공장 안에다 풀어놓는데 개들이 쥐를 쫓는 역할을 ...
털 날아 못 살겠다 티미, 저리 가지 못해! 공장 뜰에서 형과 장난을 치고 있던 진돗개 티미를 향해 형수가 바락 고함을 질렀다. 배를 깔고 앉아 있던 두 마리의 다른 진돗개가 티미보다 먼저 벌떡 일어섰다. 온전치 못한 몸을 몇 번 버둥대며 겨우 일어선 티미는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티미의 반응은 언제나 느리다. 앙칼진 형수의 목소리만큼이나 사납게 미간을 찌푸리던 형이 묶여있던 티미의 목 끈을 벗기더니 공장 한 쪽의 차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른 두 마리의 진돗개도 형의 뒤를 따랐다. 티미를 끌고 가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수...
여자관계가 복잡하던 전 남편과 내가 헤어지고 난 후, 남자라면 모두 짐승처럼 보여 바로 바라보고 싶지도 않은 채 몇 년은 잘 지냈다. 구태여 모진 마음 먹지 않더라도 아이와 함께 고모처럼 혼자 깨끗이 살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것은 참 막막한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냥 뭉뚱그려 심정이 막막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던 그때 문득, 나를 심히 부끄럽고도 실망하게 한 고모가 한순간 떠올랐다. 그때 고모도 바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솟구치던 막막함과...
고모는 이해하실 줄 알았어요. 가까이서 날 보고도 네가 날 모르듯, 나도 널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나의 재혼을 당신 삶의 방식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던 고모는, 어차피 선택하고 말 나의 새로운 길에 끝까지 인색하셨다. 혼자만의 삶을 오래, 먼저 경험한 고모로부터 나는 어쩌면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혼을 이해했듯 재혼 또한 누구보다 축하해 주시리라 기대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고, 고모의 이해를 받지 못한 나는 재혼 후에는 친정을 찾듯 그렇게 고모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끝까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던 고...
고모가 위독하다는 오빠 전화를 받은 그 순간, 나는 왜 씨름판의 그 장면을 떠올렸을까? 난데없이 떠오른 그 씨름판에서 장정 허벅지의 샅바를 잡은 사람은, 고모가 아닌 바로 나였다. 목덜미까지 붉히며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고모는, 정갈한 요 위에 반듯이 누워 계셨다. 핏기 잃은 손은 머리맡에 드리워진 수액과 연결되어 있고, 숱 많던 검은 머리칼은 짧은 백발로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일 겪는 줄 알았다. 이제는 한숨 돌렸는지, 오빠가 눈매와 같은, 선한 미소를 띠었다. 한 번도 아버지를 뵌 적 없는 오빠가 벽에 걸린 사진 속...
유리구두가 내 삶 속에 들어온 것은 첫사랑 그녀와 내가 신데렐라를 번갈아 읽으며 그것을 소꿉놀이에 끌어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때 유리구두는, 그녀와 내가 소꿉놀이에서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일처럼 허구이면서,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 대해 구체적인 책임감을 느끼게 된, 실현할 목표이기도 했다. 내가 신겨준 자신의 헌 신발을 왕자가 신겨준 유리구두인 듯 황홀하게 바라보던 그녀에게 진짜 유리구두를 신기고 말겠다는 각오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유리구두의 시작은 날 위한 의미가 아니라 첫사랑 그녀를 위한 것이었는...
유리구두는 왜 여태 유리구두일까요? 뜬금없는 질문에 커피잔을 든 채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보았다. 요술 요정의 마법으로 유리구두로 변한 신데렐라의 낡은 구두가 여태 유리구두로 회자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느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였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 아니면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 같은 여자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구두에 홀린 아이의 그것 같았다. 궁금하지 않아요? 선보는 자리에서 그것이 왜 궁금하겠느냐고 일축하려는데, 어렸을 적 읽은 이야기 한 부분이 얼핏 스쳤다, 호박이 황금마차로, 두 마리의 생쥐가 백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