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길 유격대 진정한 애국자란 이런 분 아닌가

주위에 사람들이 있을 때만 기도하는 사람. 하루에도 몇 번이나 국민의례, 우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 운운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한국 정치인들을 사이비로 본다. 아무리 선서하고 충성을 맹세해도 낯뜨거운 추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주홍길 전 해상 유격대장이 모처럼 정장차림을 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이런 분들을 꾸러미로 묶더라도 토론토의 주홍길 전 유격대원(95) 한 사람이 보인 진정한 애국심에는훨씬 못 미칠 것이다. 그는 본보를 통한 유격대 실화 연재가 끝난 이달 초 이렇게 말했다. 모든 공은 내 몫이 아니라 ...

주홍길 유격대 해상대장으로 적지 잠입작전 수행

◆미군 게릴라부대가2005년 고무보트를 타고 적지 잠입 침투 훈련을하고 있다. 주홍길씨의 영도 유격대도 이런 보트를 타고 북한 해역에서 작전, 인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키고 군수물자 수송을 방해하는데 기여했다. ◆6.25 당시 주홍길씨가 활약했던 송전반도 일대.가련하고 한 많은 옥이의 영혼을 영흥만(함경남도)의 자유의 섬 사도에 묻고 부산으로 향하는 수송선 위에 몸을 실었다. 뜨거운 눈물이 동해 바다에 쏟아졌다.그러나 감정에만 안주할 수는 없었다. 북녘 땅 어딘가에 목숨을 내려놓은 수많은 동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옥이는 내가 더 큰...

주홍길 유격대 목선을 타고 4명이 탈출하던 중

◆6.25 때 북한에 침투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유격대원으로 활약한 토론토 교민 주홍길씨.희미한 전등이 고독하다는 듯 마루 밑 손뼘만한 땅굴 안을 처량하게 밝혔다. 그 불빛 아래서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비장한 심정이 가슴을 눌렀다. 나는 23살이 될 때까지 효도는커녕 늘 짐만 지어드린 점, 동생에게는 형 노릇 대신 늘 짐과 고생만 준 점을 사과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유서에 떨어졌다. 나는 머리칼과 손톱을 잘라 봉지에 넣고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 나는 반드시 살아서 남으로 내려갑니다. 내게 나쁜 소식이 전해지면 이...

주홍길 유격대 중장리 전투서 대승...적 220명 사살

◆6.25 당시 북한군은 함경북도 활기봉(지도에서 빨간색부분)의 유격부대를 토벌하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중장리 전투1951년9월에 접어들었을 때 인민군은 함경북도 활기봉 유격부대를 본격 토벌, 후환을 뿌리 뽑기로작전을 세웠다. 마치 나치독일이 서방 연합군에대처하기 위해서 동쪽의 러시아를 먼저 잠재워야 한다고 생각한 전략과 같다.부산 영도 유격부대 본부는 9월16일 3차 보충대 21명, 다음날에는 4차 35명을 활기봉에 낙하시켜 그들의 공격에 대비했다.활기봉은 함북 갑산, 명천, 성진군의 중앙에 있는 높은 산이다. 첩첩산중의 깊은 산...

주홍길 유격대 3명의 대원이 카빈총 1자루에 의지

총숨김 -- 총 숨긴 곳장지공사 - 진지 구축공사공동묘지부회동 - 공동묘지서 만난 장소무기를 찾으려 나들이 --- 칼빈 총 1자루를 찾기 위해 다녀온 루트.◆6.25 당시 북한에 침투했던 주홍길씨에게 카빈 소총 1정이든든한 힘이 됐다.북한군에게 계속 쫓기는3명의유격대원은 조병육 동지가 원광능 산속에 숨겨둔카빈(Calbine)총을 찾기 위해 한밤중 용감하게나섰다. 손에 든무기는 없지만 동지 2명이 같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우리가 택한 길은 워낙 산세가 험해사람들은 얼씬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중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물방덕...

주홍길 유격대 "옥이가 돌아왔다, 꿈이냐 생시냐"

◆6.25 당시 유격대원으로 활약한 주홍길(토론토)씨.한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어느 날 오후였다.집 밖에서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와 대화하는 소리였다. 여자는 동생 이름까지 대며 나를 찾았다. 나는 직감으로 옥이가 온 줄 알았다. 혈관의 피가 솟구쳤다. 옥이가 오다니, 옥이가!나는 밖의 안전상황을 살피지도 않고 마루 뚜껑을 열어젖히고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옥이가 맞았다.주선생님, 그간 무사하셨는지요? 옥이는 내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감회가 서린듯 주루루 눈물을 흘렸다. 나도 감정에 북받쳐 어떻게, 잘 있었오? 겨우...

주홍길 유격대 철로길에서 경비원에게 발각되다

◆6.25 피난민들이 구호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내가 숨은 문평군 교외에서 고향 천내리까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60리 거리였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피해서 산길이나 논길로 걸어야 하니 100리 길은 걸어야 할 것이다. 대단히 먼 거리다. 좋다. 걸어보자. 나는 결심하고 밖으로 나섰다. 2개월 전에는 그들에게 체포되어 걷던 길이니 세월만 달라졌을 뿐이다. 운명의 장난인가, 행운인가. 나는 생각이 헷갈리면서 요상스런 길위에 있었다.나는 처음 체포되었을 때 천내리 내무서 - 문평군 내무서 - 원산시 강원도 정치보위부로 ...

주홍길 유격대 19살 옥이의 시중을 받다

◆아기는 부모를 모두 잃었는지국군이 손을 잡아주고 있다. 오른쪽에는 보따리를 싸서 지게에 지고 피난길에 나선 주민.처녀의 아버지는 행상으로 살았다. 그는 먼 지방을 다녀서 집에는 딸 옥이만 남았고 옥이는 이웃집 잔일을 거들어주면서 지냈다. 아무래도 숨어지내는 사람을 뒷바라지 해주기에는 옥이가 나을 것 같다고 해변가 집주인은 설명했다.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양가 집 규수 같은 정숙한 분위기가 있었다.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얼굴이 고우면 어떻고 좀 떨어지면 어떤가. 나는 오랫만에 보는 여성 앞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주홍길 유격대 가족 부양맡은 동생 홍선이를 만나다

◆6.25 당시 국군의 전투 모습.사랑하는 동생이 나 때문에 잡혔구나.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동생은 뒤숭숭한 고향 천내리를 떠나 군 소재지 문평 보건소에서 일했다. 길이나 공공장소를 소독, 전염병을 예방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다.◆6.25 때 유격대원으로 활약한 주홍길(토론토)씨.하루는 내무서원들이 느닷없이 몰려와 열심히 일하는 그를 체포했다. 내가 남한 공작대원으로 침투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들은 동생이 나와 내통할 것을 의심한 것이다.◆6.25 때 주홍길씨가 월남한 후동생 홍선(사진)...

주홍길 유격대 또 검문 당했으나 거름웅덩이가 살려줘

◆6.25를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이 모자를 손에 쥐고 중공군을 격려하고 있다. 그는 전쟁으로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하고 말짱 헛수고였다.원산을 무사히 나온 후 덕원 근처까지 갔는데 거기서 또 검문에 걸렸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던가. 신물이 났다. 오기도 생겼다. 인민군은 증서를 요구했고 나는 증서를 찾는 척 주머니를 뒤지다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잡혀서 죽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따발총 소리가 귀를 때렸다. 나는 날쌔게 숲속으로 들어가 달리다가 급한 김에 웅덩이로 파고든다는 것이 하필이면 거름 웅덩이에 빠졌다. 인분이 ...

주홍길 유격대 깜깜한 밤을 역이용 숲속으로 몸 날려

◆6.25 당시 유격대원으로 활약한 주홍길씨가 인민군에게 붙잡힐 뻔한 상황을 묘사한 그림. 친척집에 있던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인민군을 아슬아슬하게 따돌렸다.평양까지 죽음의 행진을 하던 나는 유엔군 폭격을 피해 야밤에만 행군하는 그들의 전략을 역이용, 깜깜한 밤, 숲이 울창한 산길이 나오자 손목과 팔꿈치의 포승줄을 조용히 풀고 대담하게 탈출했다. 인생 두 번째의 탈출이었으나 호송원들은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기 때문에 추격병은 없었다.나는 숲속을 번개처럼 달려 단숨에 원산역 부근에 도착했다. 달리면서 생각한대로 시내에 들어가 광석동...

주홍길 유격대 "어차피 죽을 몸 비밀을 끝까지 지키자" 작심

◆주홍길 선생(95)의 지난 7월 모습 - 거주하시는 토론토 아파트에서. 큰 코가 장군감이다. 그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 지능, 추종을 불허하는 배짱 덕이다. ◆유격대 백골단원들. 왼쪽 대장이 기관단총을 들었고 대원들은 인민군 복장에 인민군 소총으로 무장했다.함경남도 도청소재지 원산 감옥에 갇힌 나는 감방안에서 박씨라는 청년을 만났다. 그도 영흥만 앞바다 섬에서 국군 해병대 상륙을 위해서 준비작업하다가 육지 쪽 적정을 탐지하기 위해 상륙 작전 중 체포됐다. 뜻을 함께 한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주홍길 유격대 유격대원들 제1차 북한 상륙, 잠입시도

◆주홍길씨가 6.25 당시 북한침투 작전을 벌인 함경남도 영흥만 송전반도.1951년 5월8일, 우리 영도 Y부대 유격대는 미군함정을 타고 부산 영도기지를 떠나 맑고 투명한 동해안을 거슬러 북진했다. 3.8선을 넘어 함경남도 원산근교 영흥만의 사도(島)에 도착했다.대원 12명은 무사히 상륙해서 바닷가 가까운 곳에 민가 두 채를 빌렸다. 원래 본토는 적지이지만 주변 섬들은 인민군의 손이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유격대원들이 잠시 지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6.25 당시 유격대원으로 활약한 주홍길(토론토)씨.우리는 1주일 간 인민군과의 전...

주홍길 유격대 60명 해상침투부대 방호동 작전서 대승 

◆625 당시 영도기지 훈련지휘 중이던 주홍길씨.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하고 노래 불렀다.그런데 이젠 이 노래 자체를 잊어간다. 6.25동란 73주년을 금주말 맞아도 그렇다. 마치 1960년 4.19 학생민주혁명이 잊혀진지 오랜 것과 비슷하다.역사를 잊어버리는 민족은 장래가 없다라는 말은 유식을 나타내는 유행어처럼 사용되지만 실제로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가.유대인들이 나치에 대해서 하는 말,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자를 빌려야 하지 않을까.토론토나 캐나다의 6.25 참전용사들은 한 분 한 분 떠나시기 때...

주홍길 유격대 6.25 73주년 특집 (1)

제3의 생명과 Y부대의 송가(頌歌)는 같은 책으로 형태만 다를 뿐이다. 토론토 원로 주홍길 선생이 이 책을 쓴 것은 88년도, 35년전이다. Y 부대란 부산 영도 유격부대의 약칭이다. 그는 유격부대 중 해상침투대 60여명의 대장이었다.28년생, 올해 95세를 맞은 주 선생은 인생의 전반부를 철저한 반공에 바친 인물이다. 함경남도 문천 태생으로 8.15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팔에 완장찬 사람들이 늘고 공산주의 그림자가 짙어지자 46년12월 애국단을 조직, 반 공산화 운동을 시작한다. 당시 그는 원산중학을 갓졸업한 불과 19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