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수의 들은 풍월 느즈막에 핀, 겨울 국화 즐기기

두 해 전에 아내의 친구가 정원에 심어 보라고, 뿌리째 있는 소국화 20여 송이를 주었다. 봄에 심었으나, 아쉽게도 그 해 가을 한국에 머물어 핀 꽃을 보질 못했다. 이듬해 돌아와 보니, 제법 새끼를 쳐서 송이들이 무성해졌다.하지만,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와도 꽃은 피지 않았다. 아내는 아침마다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임신을 기대하듯 국화의 눈치를 살핀다. 꽃봉오리를 맺은 지 벌써 2주가 지났는데도 꽃필 기미가 없어, 여보, 이 국화는 무슨 색이었어?하고 물었더니 엷은 분홍색이었던가? 한다. 몇 송이 안됐는데 저렇게 많이 늘었네했더...

황현수의 들은 풍월 ‘국내 동포에게 드림’

을사년(乙巳年) 첫 일요일,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이것들을 언제 다 치우지…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서재에 있는 책의 8할은 이민 올 때 가져온 것이고, 그중 5할은 아직 읽어 보지도 못한 책들이다. 여기에는 아내가 시집오면서 가져온 책도 있다. 그 틈에 <일정하 동아일보 압수(押收) 사설집>이라는 책이 보였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어쩌다 자기가 이 책을 갖게 된 것인지 모른다고 한다.도산 안창호는 독립운동으로 4 차례의 감옥 생활 끝에 얻은 병이 악화되어 1939년에 만 59세의 나이로...

황현수의 들은 풍월 그날이 그날인데, 그리 유난 떨 일 없다

새해가 될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만, 좀 쓸데없는 일이지 싶다. 돌이켜 보면 내가 세운 계획은 거의 지키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올 초에도 운동도 하고 영어 공부도 좀 해야지하며 다짐했지만, 몇 주도 못돼 포기했다. 매년 되풀이하는 짓을 올해부터는 멈출까 한다.행복경제학에서는 소비를 줄이지 않고 행복하려면 욕망을 줄이면 된다고 한다. 반대로 소비를 늘이면 욕망은 채워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 돈을 더 쓰면 욕망이 채워져 행복지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가 늘어난다고 행복해진다는 이론에는 좀 동의하기 어렵다. 얼마만...

황현수의 들은 풍월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고국은 긴 겨울의 시작이 될 것 같다. 기적적으로 비상계엄은 5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앞으로 정국은 더 짙어진 안개 속이다. 그 밤에 국회로 달려간 열혈 시민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비상계엄 속에서 성난 국민과 대치하며 큰 충돌 없이 상황을 마무리한 군인과 경찰들에게도 감사한다.이번 상황은 SNS를 통해 모두 다 생중계돼 이곳 토론토 교포들도 다 지켜볼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하며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령을 복종할 수밖에 없는 조직에서 생각하고, ...

황현수의 들은 풍월 짜장면과 ‘흑백 요리사’

넷플리스의 <흑백요리사>라는 요리 프로그램이 요즘 핫 하다. 2011년에 CJ그룹에서 올리브라는 요리 전문 채널이 만들려고 했을 때, 그런 걸 누가 보냐?며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쿡방에 대한 인기는 점점 빠르게 늘어난다. 그 뒤 <마스터 셰프>, <한식대첩>,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삼시 세끼>, <수요 미식회> 등 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덕분에 그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백종원, 이연복, 최현석, 안성재, 심영순 등의 ...

황현수의 들은 풍월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자살하는 꽃, ‘능소화’

고국에 불어 닥친 의대 열풍은 과하다 못해 눈살을 찌푸릴 정도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 의대반까지 있다고 한다. 의사는 물론 오랫동안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토록 과한 열풍이 부는 것은 기이하다. 그냥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돈 때문이라는 이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박완서 소설 &lt;아주 오래된 농담&gt;을 보면 의사에 대한 질투가 묻어 있다. 의사인 주인공 심영빈은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동창, 유현금을 좋아한다. 영빈의 장래 희망은 의사다. 어느 날 현금이 분홍빛 혀를 쏙 내밀며, 돈...

황현수의 들은 풍월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

오늘처럼 새벽 공기가 서늘할 때는 이부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잠은 벌써 달아났는데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뜸을 들이다가, 오래 전 이맘때쯤이 떠올랐다. 1999년경, 고국에서 봉급쟁이 할 때다. 직장은 여의도, 집이 일산신도시 &lt;밤가시마을&gt;이었다. 운전 때문에 퇴근 후, 혼자 홀짝거리기 위해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집에서 걸어 한 6분 거리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도 별반 없이 시멘트벽에 테이블 5개, 10평정도 크기의 작은 가게였다. 40대 초반이던 주인 부부는 원래 초등학교 선생을 ...

황현수의 들은 풍월 뭔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뮤지컬 &lt;물랑루즈!(Moulin Rouge!)&gt; 공연이 11월 중순에 토론토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린다는 기사를 보고, 코미디언 이주일이 출연했던 극장식 레스토랑, 무랑루즈가 떠올랐다. 1980년대 초에 TV 광고를 할 정도로 대단했던 곳으로 종로 2가, 화신백화점과 YMCA 사이의 뒷골목에 있었다.이 무랑루즈를 이주일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안병균이라는 기업인이 운영했다. 그는 중국집과 일식집 등의 요식업을 하다가 1970년대 중반에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초원의 집, 홀리데인인 서울 등의 유흥업장을 ...

황현수의 들은 풍월 '혜경궁 홍씨'가 '순조를 위해 쓴, <한중록>

솔직히 내 역사 상식의 대부분은 TV 역사 드라마에서 배웠다고 할 정도로 부족하고 보잘것없다. 그렇다 보니,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으면서 그동안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혜경궁 홍씨에 대한 것이다.정조(이서진)가 주인공이었던, 2007년에 제작된 MBC 드라마 &lt;이산&gt;에 혜경궁 홍씨가 나올 때 마다, 혜경궁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지?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 있었지만, 그 외에도 운영궁, 연희궁,...

황현수의 들은 풍월 큰 하늘의 문, <대한문(大漢門)>

서울 덕수궁 옆에 &lt;진주회관&gt;라는 콩국수 맛집이 있다. 고국에 가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하나가 콩국수다. 이 식당은 1962년에 개업해 지금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lt;진주회관&gt;이 유명해진 것은 삼성가의 단골집으로 알려지면서라고 한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이 많이 찾았고, 이재용 부회장도 포장단골 이란다. 이 콩국수 맛의 비밀은 식재료라고 하지만, 사실은 콩을 가는 믹서기라는 설도 있다. 미국항공우주국 NASA에서 사용하는 믹서기를 사용해 콩과 땅콩, 깨 등의 재료를 갈아 분말 형태로 사용해서다. 이 믹서...

황현수의 들은 풍월 ‘아침이슬의 어머니는 산파였다.

고국의 어머니들은 어디서 언제 배우셨는지, 아기들을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그런 자장가 중에 타박네라는 노래가 있다.타복타복 타복네야 네 어디에 울며 가노/ 내 어머니 몸 둔 곳에 젖 먹으러 울고 간다/ 산 높아서 못 간단다 물 깊어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고 물 깊으면 헤엄쳐 가지/ 범 무서워 못 간단다 귀신 있어 못 간단다/ 범 있으면 숨어 가고 귀신 오면 빌며 가지이 노래는 1970년대 초에 가수 서유석이 불러 유명해졌지만, 그 이전에 포크 가수 양병집이 발굴해 처음 불렀다. 그 뒤에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

황현수의 들은 풍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밴프(Banff)’

재스퍼(Jasper)의 셋째 날, 아침 7시부터 서둘러 밴프(Banff)로 이동하며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빙하(Columbia Icefield Glacier)가 보이는 건너편 산(Wilcox Viewpoint)을 올랐다. 주차장에서 3시간 정도 올라가면, 설상차를 타고 올라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언덕이 나온다. 빙하는 수만 년에 걸쳐 쌓인 눈이 녹아 물이 되어 얼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여 중력을 받아 압축된다. 이것들이 반복되며 두께를 키워 나간 것이 빙하다. 처음 이곳의 빙하는 무려 900m였는데, 지구 온난화로 점...

황현수의 들은 풍월 재스퍼(Jasper)에서 ‘금강산’엿보기

7월 초에 토론토 &lt;아리랑 산악회&gt; 멤버 14명과 함께 로키 여행을 다녀왔다. 6박 7일 동안의 여행이라 하지만, 사실 산행이라 하는 것이 맞다. 가고 오는 날을 제외하면 5일 동안, 다섯 군데의 산을 올랐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을 빌면 평생 오를 산을 일주일 만에 올랐네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걸었다. 하지만, 등산 초보인 우리 부부는 정상을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했다. 아쉽게도 말이다.캐네디언 로키마운틴 파크(Canadian Rocky Mountain National Park)에는 총 4개의 국립공원과 3개의 주립...

황현수의 들은 풍월 ‘세노야’의 작곡가, 김광희

지금은 청바지가 대중화되었지만,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청바지 가격이 만만찮아 아무나 입을 수도 없었다. 멋 좀 내는 청년들은 멀쩡한 청바지를 빨아 색을 빼, 헌 청바지를 만들어 입기도 했다. 이 청바지가 여성의 바지 차림에 변화를 주게 된다. 나팔바지라 불린 판탈롱과 청바지가 청년바람을 타고 유행했지만, 아직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시대였다. 특히 청바지는 어른들이 보기에 단정한 옷매무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다 청바지는 남녀가 공통인 유니섹스 스타일이다.바지가 모두 유니섹스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전까지의...

황현수의 들은 풍월 오타와 <연방 의사당> ‘노랑말채나무’

퀘벡에서 몬트리올 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아침 식사도 할 겸, 재래시장인 &lt;장딸롱 마켓(Jean Talon Market)&gt;부터 찾았다. 몬트리올의 북쪽 이탈리아 지구에 있는 이 마켓은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먹음직스러운 알록달록한 과일과 채소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각종 허브와 꽃, 나무 모종 등을 파는 상점과 길거리 음식이 손님들을 유혹했다. 이 마켓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원산지와 가격 때문이다. 대부분 퀘벡 주에서 생산된 것으로 유통 과정을 대폭 줄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단다.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