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영어는 권력이다
이용우 | 언론인 (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ug 31 2022 06:59 AM
한인사회 지도자들 영어실력 좀 길러야 스피치 자신 없으면 리더 나서지 말아야
캐나다 한인사회 최대규모라 할 수 있는 노스욕 한인대축제(구 한가위축제)가 대성황리에 치러졌다.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3년 만에 재개되니 더 반갑고 활기에 차 보였다. 방문객도 인산인해로 많았고 음식도 푸짐했다.
한인사회가 주최한 축제인데도 외국인들이 더 많이 행사장을 찾았고, 바야흐로 한인축제가 주류사회와 더불어 성장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의 하일라이트라 할 외줄타기 공연은 수많은 관람객들의 환호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만, 모든 행사가 그렇듯 옥의 티(a fly in the ointment)는 있게 마련. 먼저 한식당들의 참여가 저조해 한국의 고유음식 맛을 기대하고 왔던 외국인들에게 아쉬움을 샀다. 음식부스는 중국식당이 점령한 듯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지만 실속은 적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주말 오후에 있은 공식개막식(opening ceremony)은 이전부터 많이 지적돼왔듯 또다시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관객이 입추의 여지없이 스탠드를 꽉 메운 가운데 열린 개막식에서 무대 단상에 나란히 앉은 소위 VIP란 분들의 스피치가 시작됐다.
모두 7명이 영어스피치에 나섰고 그 중 5명이 한인 지도자들이었다. 그런데 한인연사들은 대체로 사전에 열심히 스피치 연습을 한 흔적은 보였지만 듣는 청중의 입장에선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누구는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고 누구는 즉석연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발음과 어색한 문법은 그렇다 치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본인 스스로 파악이나 하고 발언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긴장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감안을 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어설픈 스피치도 그렇지만 발언시간도 너무 길어 전체 분위기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 유창하고 능숙하게 영어연설을 할 한인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듬직하고 자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듬거리는 한인들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온주 법무차관(Solicitor General)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듯, 속사포 같은 속도로 (원어민)스피치를 하는데 한인지도자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자신감과 박력있는 톤으로 행사장 분위기를 띄웠다. 솔직히 말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경우와 같이 현지 정치인이나 주류사회 인사들이 한인행사에 참석해 연설할 경우 한인들은 왠지 왜소해보이고 발언의 설득력도 떨어진다. 정말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가.
한인들이 현지인들에 비해 뒤지는게 무언가? 딱 하나, 바로 영어다. 모든 능력이 앞서도 언어가 달리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민사회는 우리끼리만 모여 사는 소공동체가 아니며 현지인들과 어울려야 스케일도 커지고 당당하게 캐나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죄송하지만 감히 제언해본다. 소위 한인단체 지도자로 나설 분들은 상당한 영어실력이 있는 분들이 나서주기 바란다. 본인 스스로 어느정도 영어 스피치에 자신있고 주류사회 인사들과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없는 분들이 단체장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한인사회가 현지인들로부터 대우를 받고 위상도 올라갈 수 있다.
생각해보라. 리더란 사람이 의사전달도 불분명하고 연설도 제대로 못한다면 현지사회로부터 올바른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면전에선 만인평등한듯 친절하게 대할지 모르지만 돌아서면 우습게 여길 것이 뻔하다.
우리같은 일반동포들도 당연히 영어실력 배양에 힘써야겠지만, 특히 리더가 되고자 하는 분들은 우선 영어실력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자중자애하고 나서지 말기 바란다. 영어권에서 자란 2세들이 나서주면 좋겠지만 그들은 본격적으로 주류사회로 파고 들어가야 하니 한인단체장을 맡기기는 어렵다.
일반 한인동포들도 허구한 날 골프에만 매달리지 말고 영어공부 좀 하자. 언제까지 물과 기름처럼 살아갈 것인가.
이용우(언론인)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